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환경부 산하기관장 임명과정에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개입 정황을 포착했다는 SBS 보도에 청와대가 정상적인 업무절차라고 밝혔다.

환경부가 산하기관장의 사표제출현황을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보고한 문건을 확보했다는 것과 관련해 청와대는 이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 않은채 이렇게 밝혔다.

문제는 환경부가 산하기관장의 사표제출 및 후임 임명과정을 청와대와 협의하는 것을 어디까지 정상적 업무라 볼 것인지에 있다. 또한 보고만 받고 끝냈는지, 그만두게 하도록 종용했는지 등도 더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인사수석실 개입 의혹은 SBS의 첫 보도로 알려졌다. SBS는 19일 저녁 8뉴스 ‘靑 인사수석실서 보고 받은 정황…지시여부 수사’(온라인 제목 : ‘[단독] ‘환경부 블랙리스트’ 靑 인사수석실 개입 정황 포착’)에서 “환경부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됐던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사표를 내라고 강요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그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환경부가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을 검찰이 확보해 그 경위를 캐고 있다”고 보도했다.

SBS는 환경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했다며 자유한국당이 검찰에 고발장을 냈으나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민정수석실이 아닌 인사수석실에서 해당 내용을 보고받은 정황을 포착했다고 방송했다. 이 방송사는 “지난달 14일 환경부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내부 문건을 확인한 결과 환경부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표제출 현황 등을 인사수석실에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을 확보한 것”이라며 “검찰은 인사수석실이 해당 내용을 단순히 보고만 받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내용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도 잇달아 상세히 보도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환경부가 인사수석실의 오더를 받았다고 썼다. 동아는 20일자 1면 ‘“블랙리스트, 청인사수석실 오더 받았다”’에서 “검찰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환경부 관계자로부터 ‘청와대 인사수석실 ‘오더’(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수사 중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고 썼다.

▲ SBS가 2019년 2월19일 저녁 방송한 8뉴스. 사진=SBS뉴스영상 갈무리
▲ SBS가 2019년 2월19일 저녁 방송한 8뉴스. 사진=SBS뉴스영상 갈무리
조선일보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1면 ‘“환경부 블랙리스트, 청 인사수석실에 보고”’에서 “검찰이 환경부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표 제출 현황 등을 담은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진술을 환경부 직원들로부터 확보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며 “이 사건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단서가 처음으로 나온 것”이라고 썼다.

한국일보는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인사수석실 산하 균형인사비서관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을 썼다. 한국은 8면 머리기사 ‘김은경, 블랙리스트 개입 정황…문정부 ‘직권남용 1호 장관’ 되나’에서 “실제 검찰은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인사수석실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된 사실도 확인했다”며 “청와대 관계자는 ‘리스트가 인사수석실 산하 균형인사비서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산하 기관장 인사는 대통령 권한이라 청와대와 부처간 협의는 지극히 정상적인 업무 절차’라 해명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사실관계를 부인하지 않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9일 저녁 SBS의 인사수석실 개입 정황 보도가 나온 직후 청와대출입기자 단체 SNS메신저를 통해 “장관은 ‘국정철학’의 실현을 위해 산하 기관 인사, 업무 등 경영 전체에 대한 포괄적 관리·감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며 “따라서 환경부의 일부 산하 기관에 대한 감사는 적법한 감독권 행사이며, 산하 공공기관 관리·감독 차원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는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해 온 ‘체크리스트’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산하기관장 사표제출현황이 보고된 것과 관련해 김 대변인은 “특히 산하 기관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있는 만큼 부처와 청와대의 협의는 지극히 정상적인 업무절차”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의 설명이 성립하려면 환경부의 감사가 위법하지 않고 타당하게 이뤄져야 하며, 환경부에서 임기가 보장된 임원들에게 부당하게 사표제출을 요구한 일이 없어야 가능하다.

청와대와 협의한 것이 지극히 정상적 업무절차라고 한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청와대가 사표제출 및 후임 임명과정을 모두 보고받고 특정인의 하차와 새 인선을 하는데 지시했을 경우 청와대가 배후로 지목될 우려도 있다. 인사과정을 논의할 권한이 있다해도 임기보장의 문제나 감독권 문제, 후임인선 선발 절차의 준수 여부 문제 등에 반하는 행위가 없어야 김 대변인이 말한 ‘정상적 업무절차’에 포함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특정인의 사표 종용에도 개입했는지도 관건이다. 조선일보는 “부처 산하기관 임원 현황은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보고되는 사안”이라며 “검찰은 인사수석실이 단순히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현황만 보고받은 게 아니라 전 정권 때 임명된 임원들에게 사표를 종용하는 과정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김현민 전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가 “검찰 조사에서 본 환경부 문건에는 나에 대해 ‘사표를 쓰지 않으면 개인 비위로 고발 조치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신문은 ‘표적 감사가 없었다’고 했던 일부 환경부 직원들은 검찰이 이 문건들을 제시하자 “사표를 받기 위해 감사를 벌였다”고 진술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019년 2월20일자 1면
▲ 동아일보 2019년 2월20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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