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가 화두입니다. 가짜뉴스, 혐오표현 등이 논란이 될 때마다 언론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지만 정작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 논의는 찾기 힘듭니다. 미디어오늘은 ‘넥스트 미디어리터러시’ 기획을 통해 현장을 들여다보고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대안적 교육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 목차

학교 뉴스 리터러시 교육의 현황과 과제
②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 초등학교
③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중학교
④ 유튜브 리터러시 어떻게 할 것인가
⑤ 유튜브 리터러시 교·강사 인터뷰
⑥ 알고리즘 리터러시와 기업의 역할
⑦ 언론과 미디어 리터러시
⑧ 시민사회와 미디어 리터러시
⑨ 노인과 디지털 리터러시
⑩ 한국 미디어 교육의 과제


“성인 절반 ‘초등학생도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

화면에 황당한 기사 하나가 떴다. “우리나라 성인들 절반은 초등학생도 교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성장기 아이들은 1년마다 새 옷을 사는데 그 비용이 연간 100만원에 달했다. 선생님 연합회장 이철수씨는 학생들이 교복을 입지 않아 교권붕괴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교복판매점 연합회장 박철수씨는 초등학생들이 입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지만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혀왔다.”

“선생님이 만든 가짜뉴스야. 이 뉴스에 누구의 목소리가 빠져있지?” 교사가 말을 건네자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일어나자”는 말과 함께 손을 든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교사가 손짓을 할 때마다 차례대로 한마디씩 했다. 당사자인 초등학생들의 목소리가 없다는 답이 많았다. 질문이 이어진다. “그러면 이런 뉴스는 왜 문제일까?” “잘못된 정보로 (사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들의 의견만 믿게 될 거 같아요.” “초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 부산 주감초등학교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사진=금준경 기자.
▲ 부산 주감초등학교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사진=금준경 기자.

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이 기자라면 꼭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야겠군. 의심해보자. 왜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각자가 생각한 답을 말한다. “초등학생들이 예의가 없는 게 너무 싫었던 거 같습니다.” “자세히 안 알아보고 그냥 빨리 저런 글을 적은 거 같습니다.” 언론 환경을 돌아보게 하는 ‘뼈 때리는’ 지적이다.

2018년 12월10일 오후 부산 주감초등학교 5학년 2반 교실. 시간표는 ‘국어 시간’이라고 돼 있지만 평범한 국어 수업이 아니었다. 이성철 교사의 ‘뉴스 리터러시 교육’으로 이날 수업 주제는 ‘빠진 목소리 찾기’다.

‘몸 풀기’가 끝나고 아이들이 한 신문을 펼쳤다. “프랑스 눈과 귀는 마크롱으로 향한다”란 제목의 기사를 소리 내 읽었다. ‘지역신문 발전을 위한 조례’에 따라 부산시에서 제공하는 지역신문이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들에게 ‘유류비’ ‘마크롱’ ‘노란 조끼’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았다. “유류비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졌는데 처음에는 폭력적이지 않았어요.” “노란조끼 입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유물들을 부쉈어요.” “이 사람들은 대통령을 새로 뽑으려고 해요.” 박태민 학생은 “노란조끼 시위 기사를 일주일 넘게 봤어요. 신문 나올 때마다 보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하나의 이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란 조끼 시위 소식을 꾸준히 추적해 교육했다.

기사 분석의 첫 단계는 사진 파악하기다. 흐린 날씨에 시위 인파가 모인 사진이다. 폭죽도 보인다. 아이들은 이 사진을 보고 ‘어지러운’ ‘화나는’ ‘불안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거친 시위 현장을 담은 사진에 “점점 더 폭력적으로 되는 거 같다”는 우려가 많았다. 이성철 교사는 사진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사진만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가 없어.”

▲ 부산 주감초등학교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태블릿 PC를 활용해 기사에 나오지 않은 목소리를 찾아 기록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부산 주감초등학교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태블릿 PC를 활용해 기사에 나오지 않은 목소리를 찾아 기록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부산 주감초등학교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태블릿 PC를 활용해 기사에 나오지 않은 정보를 찾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부산 주감초등학교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태블릿 PC를 활용해 기사에 나오지 않은 정보를 찾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이 기사에 나온 목소리부터 얘기해보자.” 이 교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이 이어졌다. “프랑스 총리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마크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 대변인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전문가가 나옵니다.” 기사가 목소리를 기울인 취재원이 누구인지 윤곽이 잡힌다.

“그러면 어떤 목소리가 빠져있지?” “(시위대가 파괴한) 유물을 만든 사람의 목소리가 없어요”라는 답이 나오자 이 교사가 미소를 지었다. “음, 그 분들은 다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잠시 적막이 흐르고 다른 답을 고민하던 아이들은 하나 둘씩 답을 쏟아냈다. 강도현 학생은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목소리가 없어요”라고 했고, 배동현 학생은 “피해 받은 사람들 목소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찰, 프랑스 주변 국가의 목소리가 없다는 답이 이어졌다.

수업은 빠진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각자 지급받은 태블릿 PC를 활용해 빠진 목소리를 직접 찾아낸다. 학생들은 네이버, 유튜브 등에서 ‘노란 조끼’ 키워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너는 마크롱을 찾아. 내가 시민들 목소리를 찾아볼게.” 이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정보를 검색하는 데 익숙했다. 이성철 교사는 “페이스북에 직접 들어가 프랑스 시위대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며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과 이해에 능한 이 아이들을 ‘신인류’라고 표현했다.

정보 탐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란 조끼를 소재로 한 대화가 이어졌다. “장갑차를 열대나 넘게 배치했대”라는 말이 이목을 끌었다. 아이들은 장갑차에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찬영 학생은 “그래도 개선문에 낙서를 하고 조각상에 불 지르는 건 난폭하다”며 과격한 시위 양상을 지적했다.

▲ 부산 주감초등학교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태블릿 PC를 활용해 뉴스의 빠진 목소리를 찾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부산 주감초등학교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태블릿 PC를 활용해 뉴스의 빠진 목소리를 찾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잘 찾았네요.” 이 교사가 둘러보기 시작했다. 배동현 학생은 빠진 목소리를 뉴스핌 기사에서 찾았다. 다니엘 벤셉트라는 시위 참가자였다. 그는 자신들의 존재를 정부가 주목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강도현 학생은 YTN 기사에서 모니에라는 시민의 목소리를 찾아 읽었다. “우리는 정부를 위한 소와 같습니다. 이건 정상이 아닙니다!” 김찬영 학생은 프랑스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인들을 찾았고 박태민 학생은 부산일보 기사와는 관점이 다른 전문가를 찾았다. “어, 여기서 보면 오히려 과격한 모습이 줄었다고 하는데요?” 같은 현장이지만 상반되는 시선의 기사도 있었다.

혼자 찾는 것만으로는 본질을 파악하기 힘들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활동은 서로의 생각을 살펴보는 ‘생각산책’이다. 모둠별로 전지에 쓴 ‘빠진 목소리’를 서로 살펴보고 피드백하는 시간이다. “새로운 사람 잘 찾았어” “출처를 안 썼어” “트럼프가 왜 나와?” 등의 댓글이 보였다.

신문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을 만나 물었다. 김동혁 학생은 “이 긴 글을 왜 읽나 싶었는데 방송과 다르게 한 번 더 볼 수 있고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김찬영 학생은 “엄마가 신문을 구독해줘서 처음에는 짜증을 냈는데 뉴스를 읽는 실력이 늘어난 것 같다”고 자평했다. 교육 하나로 뉴스를 읽는 수준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아이들은 뉴스는 의도를 갖고 제작되고 있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뉴스는 반은 믿을 수 있는데 반은 기자 생각이 담겨 있어요.” 박태민 학생이 생각하는 ‘뉴스’다.

※ 현장 섭외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신문? 이슈 추적하는 뉴스 읽기 필요”
[인터뷰] 이성철 주감초 교사

-미디어교육 교과가 없는데 어떤 식으로 수업하나.
“아침활동 시간과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뉴스 리터러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교과에 응용해 재구성한다. 국어 교과에서 글을 요약하는 활동이 있는데, 뉴스를 읽고 요약하는 활동을 하는 식이다.

-미디어 교육에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대학 다닐 때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로 근무했다. 여기서 퍼블릭 엑세스, 신문 모니터링 활동을 했고, 미디어 교육팀장으로도 근무했다. 학교에 온 다음에는 2015년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교육 전국대회’에 참가하면서 기존에 해온 활동과 연계한 교육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디어 교육을 시작했다.

▲ 이성철 주감초등학교 교사. 학생들과 함께 뉴스를 분석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이성철 주감초등학교 교사. 학생들과 함께 뉴스를 분석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실제로 교육 해보니 어떤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뉴스를 찾아보면서 학생들이 특정 이슈에 대해 깊이 있게 사고하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능력이 많이 늘었다. 특히 지역신문을 꾸준히 읽으면서 지역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지역에서 살아갈 시민으로서도 의미가 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방식은 어떻게 정립하게 됐나.
“미디어 교육, 특히 뉴스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적절한 수업 사례나 모델이 완벽하게 짜여 있지는 않다. 그동안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배웠던 비판적 뉴스 읽기 활동에 기초해 연구를 많이 한다. 실제로 수업을 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처음 이런 수업을 하시는 분들은 더더욱 힘들 것이다. 수업 모델이 확립되거나 연구를 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수업 때 가장 힘든 점은.
“아이들 수준에 맞으면서도 비판적인 생각을 할 만한 기사를 찾는 일이 많이 어렵다. 뉴스라는 텍스트는 상당히 많은 배경지식과 어휘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에게는 어려움이 있다.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 기사는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었고, 처음 이슈가 발생했을 때부터 꾸준히 뉴스를 추적하면서 읽게 해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하기 쉬웠다.”

-뉴미디어 환경이 친숙한 아이들에게 종이신문은 안 어울리는 교재라는 생각도 든다.
“부산시에서 지역신문을 제공해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드미디어 활용 수업을 비판하는 분도 있고, 저도 공감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올드미디어인지 뉴미디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매체를 사용하느냐’보다 ‘어떤 능력을 길러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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