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가 노조를 만든 건 2000년 1월25일이었다. 당시 최저임금은 시급 1600원, 주6일 노동자 월급으로 환산하면 36만1600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30만원대 초반 월급을 받았다. 이들이 원래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을 받은 건 아니다. 이들은 1995년까지 국립 서울대 정규직이었다. 서울대는 구조조정 명목으로 시설관리 노동자를 용역으로 바꿨다. 서울대는 2000년 시설관리 예산 28억원을 확보하고도 가장 낮은 23억원을 제시한 D업체를 선정했다. 서울대는 기획재정부가 시키는대로 최저낙찰제에 충실해 예산 5억원을 절약했다.

반면 용역이 된 300여 서울대 시설노동자는 5년간 1인당 월 20만원씩 월급이 줄었다. 결국 이들은 2000년 4월19일 파업에 들어갔다. 당시 노조위원장 윤아무개씨는 65세였다. 민주노총 산하 최고령 노조였다. 평생 노조는 빨갱이들이나 한다고 굳게 믿었던 이들이 노조 만들고 파업한 이유는 단순했다. 열심히 직장 다니면 해마다 단돈 만원이라도 올라야 하는데 해마다 줄었으니.

2000년 노조는 대학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서울대는 사용자가 아니라며 피했다. 멀리 광주에 사는 D업체 사장이 달려와 “교섭할 권한은 있지만 임금 등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고 했다. 2000년 4월19일 서울대 본관 앞 파업출정식 때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달려와 “학우들이 인생을 걸고 공부중인데 여기서 집회를 하시면 안된다”고 했다.

19년이 지난 2019년 2월8일에도 서울대 총학생회는 “파업권을 존중한다”면서도 “도서관을 파업 대상 시설에서 제외해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강산이 두 번 변했는데도 제자리다. 이후 학생회가 밤샘토론 끝에 노조와 연대하고, 파업은 12일 노사합의로 끝났지만 씁쓸하다.

학생들 탓만 할 수 없다. 정규교육에서 노동자 권리를 배워본 적이 없거나, 시험용으로나 익혔을 대학생이 자기 피해를 감수해가며 파업을 지지하기는 어렵다.

노조법상 쟁의행위는 ‘사용자의 정상적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다. 그런데 공공서비스 파업 때는 서비스 이용하는 소비자에게도 피해가 간다. 이때 소비자는 선택해야 한다. 책임을 사용자에게 물을지 아니면 파업노동자에게 물을지.

그런데 보수언론은 늘 파업노동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파업노동자는 사용자가 아닌 정부와 언론과 싸움에서 기진맥진한다.

서울대만 그런 게 아니다. B대학 총학생회는 대놓고 “민주노총은 학교에서 나가라”고 외쳤고, C여대는 파업 노동자가 붙인 현수막을 손수 떼내버렸다. 심지어 E대학에선 청소노동자 파업이 예상되자 학생회를 동원해 ‘수업권 침해’에 항의한다는 학교측 대책문건도 발견됐다.

▲ 지난 2월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한 학생이 학내 기계·전기 노조 파업 관련 서울대 총학생회의 입장서를 읽고 있다. 이날 총학은 “쟁의의 장기화를 막고 학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조와 연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노조는 “오세정 총장이 노동조합 측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며 오후 열리는 교섭을 앞두고 난방 업무를 재개했다. ⓒ 연합뉴스
▲ 지난 2월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한 학생이 학내 기계·전기 노조 파업 관련 서울대 총학생회의 입장서를 읽고 있다. 이날 총학은 “쟁의의 장기화를 막고 학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조와 연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노조는 “오세정 총장이 노동조합 측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며 오후 열리는 교섭을 앞두고 난방 업무를 재개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령의 청소노동자가 어려운 싸움을 버티고 이기는데 학생들 힘이 컸다. 19년전 서울대 학생들은 대책위를 만들어 몇달간 청소노동자를 도왔고, 심지어 징계를 감수하며 본관 점거농성의 길을 열었던 학생도 있었다. 몇달간 대책위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노동자를 도왔던 그들이 없었다면 투쟁가를 외우기도 힘들어 하루종일 ‘소양강 처녀’만 불렀던 늙은 노동자들은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파업의 책임을 학교로 돌린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나섰던 학생도 많았다. 앞서 말한 B대학에서도 학생회에 맞서 농성장을 지켜던 학생들이 있었고, C여대 학보사는 1면을 ‘백지’ 발행하면서 학생 여론을 호도하는 총학생회와 학교에 항의했다. 이들은 단순히 ‘똑똑한 소비자’를 넘어선 그 이상이었다. 한국언론이 똑똑한 소비자라도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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