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데이터 경제 활성화’ 기조에 발맞춰 활용 가능한 개인 정보를 재분류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취지의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대다수 법안들이 정보 자체만으로는 개인 식별이 어려운 ‘가명 정보’ 활용 방안을 담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보호 장치 없이 개인정보가 오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개인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와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포함하는 정보로 규정된다.

현재 발의돼 있는 개인정보 관련 법안들은 개인정보 개념체계를 ‘개인정보’, ‘가명정보’, ‘익명정보’로 분류하며 가명정보를 학문·연구 내지는 상업적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이 대다수다. 가명정보란 그 자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가명처리’한 정보로, 다른 정보와 결합할 경우 개인 식별이 가능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익명정보와 다르다.

정부 예시를 참고하면 개인정보 원본은 홍길동, 1967년 1월3일 출생, 010-0000-0000, 국회의원, 서울시 종로구 효자동, 예금 평균 잔액 4900만원 등 그 자체로 개인식별이 가능한 정보들이다. 가명정보는 이 가운데 일부 정보는 삭제하거나 암호화하는 ‘가명처리’를 한 뒤 ‘서울시 종로구’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의 예금 평균 잔액을 활용하는 식이다. 암호화한 정보를 알거나 다른 정보와 결합할 경우 복원이 가능하다. 익명정보는 다른 정보와 결합해서도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정보를 의미한다.

▲ ⓒ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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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는 지난해 5월 활동결과보고서를 내고 가명정보 개념을 신설할 경우 정보주체 동의 없이 가명 정보를 목적 외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입법권고했다. 공익을 위한 기록 보존이나, 학술 연구, 통계 목적의 경우 가명정보를 수집한 최초 목적 외의 이용 또는 제3자 제공이 가능화하도록 입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발의된 일부 법안들은 가명정보 활용 범주가 넓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세정 바른미래당 의원안과 이진복 자유한국당 의원안 등은 ‘통계작성, 시장조사’ 등 목적이 포함됐다. 가장 최근 발의된 윤상직 한국당 의원의 경우 가명정보를 사실상 제한 없이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냈다.

정부안 역시 기업들이 고객의 가명정보를 판매·공유할 수 있는 문을 열어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행정위원회 위원장인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부안은 동의 없는 가명정보 활용 범주를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으로 명시했다. 그런데 법안 제안 이유에는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 개발 등 산업적 목적을 포함하는 과학적 연구, 시장조사 등 상업적 목적의 통계작성’ 등 목적으로도 가명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돼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작성된 연구용역보고서에도 ‘과학적 연구’ 목적에 대한 우려가 담겼다. “유럽에서는 연구 공동체와 데이터 거버넌스 체제가 오래 형성돼왔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라는 개념의 의미가 명확할 수 있으나, 그러한 환경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이 개념이 어떻게 활용, 혹은 남용될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 범위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사단법인 참세상이 수행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정보인권 보호를 위한 실태조사’ 연구에는 문화사회연구소, 정보인권연구소, 참세상연구소 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위치정보법 등으로 나뉜 개인정보 보호법제, 행정안전부·방송통신위원회·금융위원회·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으로 분산된 감독권한 등을 정리해 개인정보 보호체계를 효율화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보고서는 △시스템 투명성 보장 △설계단계에서부터 정보인권 보호 △개인정보 수집·처리 전 과정에서의 정보주체 권리 보장 등 방향으로 개인정보 보호법제가 개선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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