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자 측이 호의적인 기사를 부탁하며 기자에게 금품을 건넨 정황이 포착됐다. 금품을 받은 기자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7일 중소기업 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한 김아무개 후보자의 비서실장 A씨는 김 후보자 인터뷰를 마친 B기자에게 종이가방 하나를 건넸다.

종이가방 안에는 김아무개 후보자의 기업에서 만든 수십만원 상당의 손목시계와 함께 봉투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봉투 안에는 5만원 권 지폐 10장이 있었다. B기자는 종이가방 속 물건을 단순한 기념품으로 알았다가 열어보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회사와 상의한 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서울시선관위는 김 후보자 비서실장 A씨가 종이가방을 B기자에게 건넬 때 ‘기사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B기자는 당시 금품을 준 현장에 김 후보자도 있었다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 후보자는 이를 부인했다.

▲ 김 후보자 측 비서실장이 기자에게 건넨 금품 및 선물.
▲ 김 후보자 측 비서실장이 기자에게 건넨 금품 및 선물.
지난 2015년 부정청탁법이 통과된 이후 기자에게 직접 금품을 주고 기사를 청탁한 사례는 보기 드물다. 출입처를 관리하거나 호의적인 기사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촌지를 건넸던 과거 관행이 2019년 중소기업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재현된 것이다.

중소기업 중앙회장 선거관리위원회는 김아무개 후보자를 구두로 자체 조사했다. 서울시선관위에 신고된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는 맞는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선거 관련 규정의 맹점 탓에 김 후보자의 자격 박탈 여부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기순 중소기업 중앙회장 선거관리위원장은 “공직자 선거 관리 규정을 도입하면 선거 당사자와 종사원, 가족들이 일정 금액 이상의 금품을 거래하면 처벌과 동시에 자격 상실 제재를 받는다. 하지만 중앙회장 선거 규정엔 당사자 이외에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며 “임원선거 관리 규정으로 선거를 하되 운영은 중선관위에 위탁을 요청한 상황이어서 부적절한 내용이 드러나도 당사자가 후보 등록이나 사퇴에 대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없다. 주변에서 선거에 도움을 받는 행위는 사법 처리를 받을 수 있지만 후보자가 (선거와) 관계가 없다고 해버리는 순간 처리할 수 없는 맹점이 있어 공직자 선거 관리 규정에 준하는 절차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 측은 선거법 위반과 관련 없는 상황이라고 반박한다. 김 후보자의 비서실장인 A씨가 자발적으로 영업 마케팅 차원에서 B기자에게 선물과 금품을 건넸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설립 30주년을 맞아 마케팅 차원에서 시계를 준 것이고 금품의 경우 지시나 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게 김 후보자 쪽 입장이다. 후보자 자격 박탈이 될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B기자에게 ‘기사를 잘 써달라’고 한 발언도 간접적으로 기업 홍보를 부탁한 것으로 선거와 관련 없는 내용이라는 게 김 후보자 측의 주장이다.

김 후보자는 통화에서 “비서실장이 금품을 건넸다는 것은 저는 모르는 내용이다. 제가 고발 당한 것도 아니고 (금품을 건네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라며 “인터뷰가 끝나고 문 앞에서 기자에게 인사하고 만 게 전부다. 선관위가 조사했다면 저도 같이 고발해야 하는데 왜 저를 고발 안했겠나”라고 해명했다.

B기자 이외에도 다른 기자가 김 후보자 측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가 퀵 배달을 통해 돌려준 정황도 나왔다. 이에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관위는 간접으로 해당 내용 신고는 받았지만 직접 정황 증거를 제출한 사람이 없어 현재로선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오늘과 접촉한 복수의 기자들은 김 후보자 쪽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뒤 문제가 될 게 뻔해 퀵 배송을 보내 반납한 사례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출입기자단이 소속 기자들에게 상품권을 선물한 것도 선거를 앞두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4일 중소기업벤처부와 중소기업 중앙회 출입기자단은 설을 맞이해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기자단 회원 44개 매체 기자들에게 10만원 온누리 상품권을 받아가라고 공지했다. 부정청탁법 통과 이후 출입처에서 법 위반 소지가 없도록 가액을 결정해 선물을 주고 있지만 기자단이 유가증권을 주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출입기자단 관계자는 기자단 회원 매체별로 한 달에 6만원씩 운영비를 걷었지만 돈이 남아 간사단 회의를 거쳐 전통시장을 살리는 취지에 따라 기자단 소속 매체 기자들에게 상품권을 나눠주는 것으로 협의해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기자단이 자체로 낸 비용으로 마련했기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기자단 관계자는 김 후보자의 비서실장이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에게 금품을 줘 고발 당한 것에 대해 “선거법 위반 문제 같은 것은 법의 판단에 따라야 하는 것이기에 기자단 입장을 내는 것을 섣부르다”면서 “다만 출입기자 입장에서 출입처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과열 혼탁 지적을 받는 것에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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