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1일 월요일 오후 4시.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5·18민중항쟁구속자회,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 등 시민단체 대표단 14명이 들어섰다. 그들이 손에 든 팻말에는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광주를 모욕하지 말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전두환은 영웅’,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전’ 등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의 발언에 이들은 “피 흘려 민주화를 일궈낸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현대사를 폄훼하고 민주화의 주역인 국민을 우롱하고 모독하는 범죄적 망언”이라 말했다.

이들이 읽은 성명서에는 “자유한국당은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백승주, 이완영 의원을 제명하라”, “사법부는 범법자 지만원을 당장 구속 수사하라”, “5·18민주화운동을 헌법전문에 삽입하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조속히 출범하라’는 요구사항이 적혀 있었다.

대표단은 카메라 셔터 불빛과 기자들에 둘러싸인 채 자유한국당 당대표실로 이동했다. 문 앞에 멈춰선 이들은 “한나라당(현재 자유한국당) 대표 나오라 해!”, “우리가 괴물이냐!”고 외쳤다. 하지만 책임있는 자들 중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면회 신청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국회 관계자들과 잠시 실랑이가 오고간 뒤 이들은 1층 로비에서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을 제명하라!” 구호를 세 번 외친 뒤 발길을 돌렸다.

▲ 2월11일 국회 앞 5.18 관련 단체 인사들의 기자회견 모습. ⓒ이소현 대학생 기자
▲ 2월11일 국회 앞 5.18 관련 단체 인사들의 기자회견 모습. ⓒ이소현 대학생 기자
이날 오후 5시. 국회 정문에는 파란 천막이 차려졌다. 5·18 당시 처절했던 시위현장을 실감케 하는 사진 50여 장이 그 옆에 펼쳐졌다. 몇몇 5·18 유가족들은 사진을 높게 치켜들고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지금도 이름 없는 무명 열사들은 망월동 묘지에 묻혀 있다”, “동료를 잃고 형제를 잃고서도 폭도라며 인간 이하 취급을 받았다”며 소리쳤다. 사진을 천천히 살피던 이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5·18 잔학사가 담긴 사진들은 그들의 아픈 역사를 증명했다.

사진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된 부상자 얼굴과 아버지 죽음을 앞에서 지켜보는 아이, 군인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시민들 모습이 담겼다. 이들은 천막 안에서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해가 넘어갈 때까지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월요일이 지났다.

2월12일.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앞에 하얀 천막이 설치됐다. 이곳은 5·18 단체에게 ‘숙소’ 같은 곳이다. 20여명의 회원이 이곳에서 잠을 자고 오전·오후 교대로 옮겨가며 국회 앞 농성장을 지켰다. 이들은 국회 인근의 세면장과 식당을 오갔다. 오전 8시부터 농성장에 나온 시민대표 5명은 찾아오는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기자들을 향해서는 “오늘도 나와 주셔서 고맙다”고 말했다.

▲ 국회 앞에 설치된 하얀 천막. ⓒ이소현 대학생 기자
▲ 국회 앞에 설치된 하얀 천막. ⓒ이소현 대학생 기자
이날은 민주평화당 자원봉사위원회 측에서 매트와 따뜻한 음료 등을 지원했다. 낮 12시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천막농성장을 방문했다. 손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범법자나 다름없는 지만원 씨를 주제 강연자로 내세운 건 자유한국당의 위상과 관련되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자유한국당은 5·18 민중항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공식적인 입장을 당론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손 의원이 다녀간 이후 발길이 뜸해진 천막 안에서, 5·18 단체 회원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막말 3인방’의 제명과 5·18역사왜곡방지특별법 제정, 지만원 구속 등 모든 요구가 관철되기까지 ‘장기전’이 될 것 같다며 무기한 농성을 예고했다.

2월13일. 광주 시민 225여 명이 상경한 이날 국회는 ‘막말 3인방’을 규탄하라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그러나 국회 한편에서는 태극기를 든 극우 성향 단체 사람들이 광주 시민들을 향해 “나이가 그만큼 들었으면 나잇값 해라”, “빨갱이 새끼들 쪽팔리지 않냐”는 등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삿대질했다. 김진태 의원을 지지한다고 밝힌 100여 명의 시위대는 무단으로 국회에 침입해 본청 앞에 드러누워 난동을 부렸다.

이날 5·18 관련 단체 대표단 10여 명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실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원내대표실을 순서대로 찾았다. 대표단과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면담이 예정된 오후 2시10분. 발 디딜 틈 없는 위원장실에 대표단이 굳은 표정으로 입장했다. 김병준 위원장은 대표단 한명 한명과 손을 잡으며 “이런 자리에서 뵙게 돼 송구스럽다”며 재차 사과했다.

대표단은 김 위원장에게 5·18 망언 당사자인 3명 의원의 출당과 제명, 한국판 홀로코스트 법 제정 등 자세한 요구사항을 전달했지만 25분간 진행된 회의에서 구체적인 답변은 듣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출당 및 제명 요구에 대해 “쉽게 대답할 사안이 아니다”, “요구사항들이 100% 원하는 방향대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송구스럽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2월13일 국회 앞 자유한국당 규탄 기자회견 모습. ⓒ이소현 대학생 기자
▲ 2월13일 국회 앞 자유한국당 규탄 기자회견 모습. ⓒ이소현 대학생 기자
그의 소극적인 태도에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김후식 회장은 “방금 요구한 사안이 모두 이뤄지지 않을 시 모든 광주 시민들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경고했다. 5월어머니집 정현애 회장은 “40년 동안 가족들을 잃고, 자식들을 잃은 어머니들은 지금까지 단 1초도 편히 시간 보낸 적이 없다”면서 이번 망언에 대해 “또다시 칼을 꽂고 피눈물 나게 하는 행위”라며 오열했다.

2월14일. 자유한국당이 이종명 의원만 당에서 제명하고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해선 전당대회에 출마한 후보자 신분을 보장한다는 당규를 들어 징계유예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천막에 들려왔다. 5·18 단체 회원 4명은 강추위 속 국회 앞 천막 농성장에 씁쓸히 앉아 있었다.

국회 앞 농성장에는 지난 밤 사이 누군가 몰래 잠입해서 정체 모를 액체를 뿌리고 간 흔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풍기는 악취에 회원들은 한참 고생했다. 이들 옆에는 극우 성향 보수단체가 “김진태·김순례 의원을 지지한다”며 소음을 유발했다. 적막해진 국회 앞 농성장, 억울한 이들 앞에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진태, 김순례 의원의 들뜬 목소리만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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