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건설지역 주민 560명과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상대로 제기한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취소청구소송에서 1심법원이 건설허가과정의 위법성은 인정했지만 건설은 허가하는 이례적 판결을 냈다. 원안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김정중)는 지난 14일 선고공판에서 결격사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이 건설승인 과정에 참여했고, 방사선 환경영향평가 중대사고 고시를 누락해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공사 중지는 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법 규정에 따라 ‘사정판결’을 선고했다. 위법이지만 취소하는 게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다면 말 그대로 사정상 처분은 취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모습. ⓒ연합뉴스
▲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모습. ⓒ연합뉴스
앞서 그린피스를 비롯한 원고측은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를 두고 △단층조사에 활성 단층 확인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보강된 핵발전소 중대사고 대비 설계와 사고관리 계획 법률 개정을 신고리 5·6호기에만 배제토록 규정했고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30km로 확대됐지만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주민의견 수렴을 하지 않았고 △법상 핵발전소 부지 내 인구밀도 기준을 3.17배나 초과했고 △중대사고 발생 시 주민 대피 피난 시뮬레이션을 법률 개정 전인 10km의 인구로만 한정해 30km 내에 사는 380만명의 피난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아 원자력안전법을 어겼고 △건설 승인을 결정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중 한국수력원자력 업무에 관여하거나 원자력연구원의 과제를 수탁한 결격 사유가 있는 위원 2인이 포함됐고 △건설부지 지하 50m에 단층으로 의심되는 파쇄대가 1.5km 이상 존재함에도 규정을 어기고 시추조사를 하지 않은 점 등이 위법하다며 건설취소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건설을 중단할 경우 예상손실이 1조원인 반면 위법사유는 보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울산시 울주군에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는 2017년 공사가 중단됐으나 공론화위원회 결정으로 건설이 재개되며 2024년 준공을 앞두고 있다. 

피고측이었던 원안위는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줄곧 핵발전소 가동을 주장해온 매일경제신문은 15일자 지면에서 “신고리 5·6호기 위기모면”이란 제목의 기사로 “(재판부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보도했다.

▲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반핵 활동가들이 법원의 1심 판결에 항의하는 모습. ⓒ그린피스
▲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반핵 활동가들이 법원의 1심 판결에 항의하는 모습. ⓒ그린피스
그러나 원고측 탈핵법률가모임 소속 김영희 변호사는 “재판부가 피고측에서 소송비용을 전부 부담하게 했다. 보통 패소한 쪽에서 재판비용을 낸다”며 “사실상 원고 승소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건설 허가과정의 위법성이 인정된 것은 역사적이지만 다른 명백한 위법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판결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변호사는 “1643년 울산지역에 매우 큰 지진이 발생한 역사기록도 존재하는데 법원이 역사지진은 모호하다며 크게 문제 삼지 않은 것도 부당하다”고 했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원고측은 항소 뜻을 밝혔다.

녹색당 탈핵특별위원회는 15일 논평에서 “술은 마셨지만 직업을 잃을 우려 때문에 음주운전으로 처벌하지는 않겠다라는 식의 우리 사회 고질적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낸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국민의 생명에 대한 안전보다 건설업체의 돈벌이를 우선으로 한 사법부의 판단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김영희 변호사는 “독일의 경우 100% 건설한 원전도 가동을 안 한 경우도 있다. (건설 중단) 손실이 1조원이라고 했지만 안전이 지켜지지 않아 사고가 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린피스 장마리 캠페이너는 “사법부 판단이 법으로 규정된 최소한의 책무마저 관례적으로 등한시해 온 원안위에 경종을 울리는 대신 오히려 힘을 실어준 격”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