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연구가 논란이다. 조선일보는 지상파 라디오가 편향됐다고 연일 보도하며 그 근거로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연구를 인용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발주처가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로 드러났다. 연구를 담당한 윤석민 교수는 엄정하고 독립적인 연구가 이뤄졌다며 모든 연구 데이터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곱씹어보면 윤석민 교수의 해명과 다른 차원의 문제가 남는다. 조선일보는 보수성향 학자에게 연구를 발주했고, 그 결과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종합편성채널을 겸영해 지상파와 경쟁관계다. 그동안 조선일보가 정책적으로 종편을 대변하고 지상파를 비난한 경우는 수 없이 많다. 이 발주가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근거로 쓰일지는 불을 보 듯 뻔했다. 

연구 과정에 조선일보가 개입하지 않았고 내용이 설득력 있고 논리가 탄탄했다면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연구가 조선일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한 ‘권위 있는 근거’로 기획됐고, 실제로 쓰였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 불행히도 처음부터 이 연구는 도구였다.

▲ 지난 11일 조선일보 보도.
▲ 지난 11일 조선일보 보도.

[관련기사: 편향성 논란 서울대 보고서 발주처는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비단 조선일보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론 관련 학회가 학술대회를 할 때마다 대형 포털, 통신사, 방송사의 후원이 넘쳐난다. 그들이 후원하는 연구는 대체로 자신들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구 결과가 자신들의 매체를 위한 규제 또는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근거’로 쓰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번 연구와 보도에 반발하는 지상파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앞두고 공영방송 역시 ‘거대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간광고 금지 등 규제를 완화하는 제도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7년 4월 KBS 기사다. 4차 산업혁명과 중간광고를 연결시킨 이 연구를 다룬 기사에 담기지 않은 사실이 있다. 이 연구는 KBS가 후원했다.

세미나 현장에서 이 연구를 한 학자는 KBS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기사에 썼더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KBS측에서 실제 그런 발언이 있었는지 내게 연락해 물었고, 이후 그 교수가 미디어오늘에 연락해 기사 수정을 요청했다.  돈을 준 쪽에서 무엇을 바라고 연구를 맡겼는지 잘 드러나는 사례다.

그나마 실체가 파악이 되면 다행이지만 진짜 무서운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합산규제, 인수합병 등 유료방송 경쟁에서 통신사들이 학자들을 포섭하려고 뛰어다니고 언론에 보도된 몇몇 교수들의 연구, 기고 글이 특정 업체의 작품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2016년 한국언론학회가 유료방송 규제 개선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그런데 발제가 SK 비난에 가까워 의문스러웠다. 토론회 도중 발제자의 발제문 파일 작성자명이 LG유플러스 CR전략실 정책개발팀 소속 조아무개 부장 명의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발제자는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았다. 이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의 발언은 전문가 견해로 소개되고 인용되면서 독자들을 현혹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오늘 읽은 기사가 인용한 연구보고서가 이런 식일지 모른다. 

논란 때마다 비판적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소신 있는 학자 몇몇이 언론에 멘트하는 정도로 그치곤 한다. 그마저도 이름을 가린 채 익명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저널리즘학의 원칙을 바탕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대책을 논의해온 학계의 펜을 스스로에게 들이댔으면 한다. 자신들이 만든 연구가 어떻게 언론을 거쳐 독자들을 현혹시키는가. 후원과 발주가 연구 내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발주받은 연구를 어떻게 명시하고, 독립성 확보를 위해 원칙을 어떻게 세우고,  문제가 드러나면 어떻게 대응하고, 독립된 연구를 위해 재정적 여건을 어떻게 마련하는 것이 건강한가. 이 문제를 다룬 세미나가 열리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