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은 그냥 돈 버는 병원이 아니다. 수익을 외부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의사나 비영리법인이 병원을 세우고 번 돈을 병원에 재투자하는 게 비영리병원이라면, 영리병원은 부동산과 주식과 같이 투자자가 자산을 불리고 배당 이익을 챙기는 수단이 될 수 있다. 47개 병상에서 외국인만 대상으로, 피부미용 등 한정된 진료만 한다는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의료영리화 ‘판도라의 상자’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싸고 언론이 제기한 의혹은 수두룩하다. 시행사 녹지그룹은 의료사업 경험이 전혀 없는 부동산 투자기업이다. 내국인 우회투자 의혹도 인다. 이같은 조례 위반 의혹에도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5년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병원이 ‘안종범 수첩’에 VIP(박근혜) 지시사항으로 언급된 뒤 일이다. 녹지 측은 공공병원으로 인수를 검토해달라고 제주도에 요청했으나 도는 응답하지 않고 개원 허가했다. 제주도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압도적 비율로 결정한 ‘개원 불허’ 권고를 뒤집었다.

▲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에서 열린 제주 영리병원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촉구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하고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지난 11일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에서 열린 제주 영리병원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촉구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하고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영리병원과 관련해 보도할 핵심으로 ‘뱀파이어 효과’를 꼽는다. 한 영리병원 설립이 주변 비영리병원의 경영방식과 의료체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모든 의혹을 보도해야 하지만 왜 보수언론과 경제지가 이 조그만 병원에 매달리는지 뒤집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규남 국민건강보험노조 조직쟁의실장은 “한 번 트인 물꼬로 공공의료체계가 한꺼번에 얽혀 들어간다는 점이 영리병원의 폐단”이라고 했다. 이를 중심으로 기존 언론 보도를 살펴봤다.

영리병원은 어떻게 비영리병원 위협 불러오나

영리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의료비를 자율로 정한다. 비영리병원이 국민건강보험을 의무로 받고 의료수가를 건강보험공단과 협상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뱀파이어 효과의 발단이다.

영리병원이 돈을 벌려면 부유층에 고가의 진료를 제공할 확률이 높다. 영리병원 이용자가 늘면, 보험료 납부와 건강보험 의무가입제에 문제 제기하는 목소리는 높아진다. 만에 하나 보험료 납부액이 많은 부유층이 의무가입제에서 빠져나가면 건강보험 재정이 준다. 보장성도 부실해진다.

여기서 민영의료보험이 틈새를 파고든다. 보험사들이 저가 상품을 제시하면 점점 많은 사람들이 민영보험과 영리병원을 택하게 된다. 이는 결국 기존 비영리병원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게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의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전진한 정책부장은 “병원협회의 자체설문조사에 따르면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개인병원의 약 70~8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 원희룡 제주도지사. 사진=노컷뉴스
▲ 원희룡 제주도지사. 사진=노컷뉴스

다만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녹지국제병원 개원에 조건을 붙였다. 내국인 진료를 제한했다. 개원이 공공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조치도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상위법에 관련 조항이 없고, 현행 의료법은 오히려 병원이 환자 진료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명시해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 녹지국제병원 측은 이미 이에 불복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의료서비스 자체의 특성도 대기업이 영리병원에 목메는 이유로 꼽힌다. 의료분야는 사업자(의사)와 고객(환자) 사이 정보의 비대칭이 극단적이다. 수익 대비 인건비 비중도 높다. 여기에 의료비를 마음대로 책정하는 영리병원 특성이 합쳐지면 의료계는 ‘무한 돈벌이 영역’이 된다. 병원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잉진료를 하거나, 의료 인력을 무리하게 줄일 가능성이 높다. 의료서비스 질은 낮아진다.

1. “투자개방형 병원” 용어는 본질 흐리기

보수언론은 영리병원이 아닌 ‘투자개방형 병원’이 정확한 용어라며 이 호칭을 사용한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매일경제와 한국경제 등이다. 대표적으로 한국경제와 중앙일보는 원 지사가 녹지병원을 허가한 뒤 이틀 간 각각 “동네 의원부터 대규모 병원까지 영리 추구하지 않는 곳이 있던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투자개방형 병원이 “정식 용어”이자 “정확한 용어”라고 주장했다.

▲ 지난해 12월7일 중앙일보 사설
▲ 지난해 12월7일 중앙일보 사설

‘영리병원’은 국내외뿐 아니라 국제기구에서 사용하는 정식 용어다. OECD는 영리병원(For-profit hospital, 직역하면 영리 목적 병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언론에서 일부 ‘투자자 소유 병원(Investor-owned hospital)’이란 표현을 쓰나, 투자개방형 병원이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신조어는 영리병원의 목적이 ‘재산상 이익’에 있다는 본질을 흐린다.

2. ‘의료 선진화’라면서… ‘선진국’ 공공병원 비중은 함구

일부 언론은 의료 ‘영리화’ 대신 ‘선진화’로 표현하자고도 한다. 영리병원 도입한 국가들을 들며 “우리도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선진국을 따라 의료서비스 질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제와 중앙일보 등은 지난해 12월 6일과 7일 개원 허가 소식을 전하며 “독일과 프랑스의 투자개방형 의료기관은 전체 병의원의 20%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OECD 주요 회원국 중 일본·네덜란드를 제외하곤 모두 투자개방형 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영국·스웨덴처럼 사회주의 의료에 가까운 국가에도 공공병원과 투자병원이 공존한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도 6일 “미국, 독일, 싱가포르 등 주요국은 민간 영리병원을 허용해 의료산업 발전, 경제 활성화 등을 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신문들은 이들 나라의 공공병원 비중이 한국에 비해 10배가 넘는 사실은 전하지 않았다.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국내 공공병원 비중이 최하위(5.8%)다. OECD 평균치는 73.3%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한국처럼 국공립병원이 5%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영리병원을 도입하면 의료 상업화를 막을 방도가 없다”고 말한다.

또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OECD 국가들은 사실상 무상의료를 실시한다. 독일은 소득의 2%가 넘는 의료비를 정부가 부담한다. 프랑스·스웨덴·네덜란드·호주 등은 20만~50만원 수준의 연간 의료비 상한액을 둬 이를 넘으면 정부가 부담한다.

▲ 지난해 12월6일 조선일보 8면 갈무리
▲ 지난해 12월6일 조선일보 8면 갈무리

3. 우회투자 의혹 등 절차 문제는 눈감아

앞서 언급한 신문들은 병원이 개원 절차과 관련해 휘말린 논란에 입을 다물었다. 시민사회는 지난 15일 녹지그룹의 사업 자격과 정부‧지자체의 사업 및 개원 허가를 둘러싼 의혹을 제기하며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를 출범했다. 범국민본부는 최근 정진엽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다수 언론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다.

▲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지난 11일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에 녹지국제병원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지난 11일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에 녹지국제병원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범국민본부는 지난 11일 삭발 결의대회를 연 뒤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철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 녹지국제병원 승인을 철회하고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한다. 녹지국제병원의 개원 시한은 다음달 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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