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이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통신사를 중심으로 망중립성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 유럽의 전자통신규제기구(BEREC) 의장으로서 망중립성 규제 제정에 참여한 프로도 소렌슨 노르웨이 통신위원회 수석자문은 망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이용자는 물론 통신사에도 이익이 된다고 강조했다.

프로도 소렌슨 수석자문은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호텔에서 미디어오늘 등 4개 매체와 인터뷰했다.

망중립성은 통신망을 가진 사업자가 이용자와 사업자들을 평등하게 접속하게 하는 등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 EU에서는 2015년 망중립성 법안이 통과됐고 2016년 가이드라인으로 제정됐다. EU는 현재 통신사 등 인터넷 제공 사업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들이 실제 망중립성을 지키고 있는지 검증하는 시스템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 의장으로서 망중립성 규제 제정에 참여한 프로도 소렌슨 노르웨이 통신위원회 수석자문. 사진=금준경 기자.
▲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 의장으로서 망중립성 규제 제정에 참여한 프로도 소렌슨 노르웨이 통신위원회 수석자문. 사진=금준경 기자.

국내에서는 통신사들이 망중립성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렌슨씨는 “망 중립성은 이용자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권리를 망 사업자가 아닌 이용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망중립성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제정 이전 유럽도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ISP 사업자들은 기술 발전으로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된 인터넷 전화를 차단하거나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식으로  망을 차별적으로 제공했다. 그에 따르면 망중립성 규제 도입 후에는 ISP 사업자들이 망 차별이 아닌 서비스와 기술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국내의 경우 통신사들이 포털 등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들에게 망 사용료 명목으로 많은 비용을 받고 있고 해외 기업에도 같은 수준의 대가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데이터를 발생시킨 사업자가 돈을 내게 하는 상호접속고시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소렌슨씨는 통신사 등 ISP 사업자들이 과연 손해를 보며 장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ISP 사업자들은 과거 유선 전화 통신사 역할을 해온 곳들이다. 콘텐츠 산업 시대가 되고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보기 위해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사업 측면에서 기회가 있었기에 인터넷 사업자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그는 “망중립성을 통해 차별하지 않으면 사업자들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고, 그 결과 이용자가 늘어 통신사에도 이익이 된다”고 설명했다.

망중립성과 유사한 제로레이팅은 어떨까. 제로레이팅은 이용자들이 통신사의 자회사 또는 통신사와 제휴를 맺은 콘텐츠 사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데이터 요금을 감면하는 방식이다. SK텔레콤 이용자들은 인터넷 쇼핑몰인 ‘11번가’ 쇼핑을 하는 동안 나온 데이터 요금을 내지 않도록 하는 사례가 있었다.

소렌슨씨는 “유럽도 마찬가지”라며 “망 중립성 규제 이전에는 인터넷 전화를 차단하는 등 기술적으로 차별했다면, 이제는 경제적 혜택을 주는 차별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다만 제로레이팅은 허용 여부를 정하는 게 아니라 사례별로 파악해 이용자의 권리가 침해되면 규제 당국이 나선다”고 설명했다.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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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망중립성 규제 제정 과정에도 살펴볼 대목이 있다. 소렌슨씨는 “EU에서 규제를 만들 때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망중립성의 경우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법 제정 논의를 헸다. 규제 당국이 이해관계자를 만나고, 공공자문도 받고,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의 소통을 했다. 이후 가이드라인 제정 때는 이용자 50만명의 의견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관련 논의를 하고 있지만 관련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정부와 전문가들만의 논의에 그치고 있다. 정작 중요한 이용자는 배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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