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을 모독한 자유한국당 의원들 제명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이런 왜곡·날조 행위를 처벌할 법적 가능성을 논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헌법·형법·법사회학 학자들은 현행법상 단순히 ‘역사 부정’만으론 처벌이 어렵지만, 현존하는 피해자들 존엄성을 침해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고립시키는 발언·행위를 제한할 필요성엔 공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망언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재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등이 발제와 토론을 맡았다. 5·18 단체 회원과 홍영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 10여명도 참석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5·18 왜곡 발언과 관련해 ‘한국판 홀로코스트법’ 제정을 주장한다. 우리 형법엔 ‘대중선동죄’ 규정이 없고,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는 5·18 왜곡 처벌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4당은 ‘역사부정죄’ 차원에서 5·18 왜곡 금지법 제정을 주장한다. 역사부정죄는 반인륜 범죄 등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부인·왜곡하는 것을 뜻한다.

독일은 2차 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찬양·부인·경시하는 행위를 ‘대중선동죄’로 규정(독일형법 제130조 3항과 4항)하고 있다. 2007년 유럽이사회는 회원국에 종교·인종적 혐오 선동 처벌을 요구하는 결의·협약을 채택했고, 오스트리아·벨기에·체코·프랑스·독일 등 유럽 18개국과 이스라엘 등에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 부정을 처벌하는 법 또는 법 조항이 있다.

▲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5.18 망언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5.18 망언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홍성수 교수는 “‘진실 부정을 다 처벌할 것인가’라는 데엔 부정적”이라며 “실제 생존 피해자들 문제나 인간 존엄의 침해  등이 소수자 차별이나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집중해 역사부정죄의 정당성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피해의 ‘현재성’이 아닌 ‘정해진 역사’ 부정만을 처벌 근거로 삼은 발의안들은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우려다.

홍 교수는 ‘5·18 모독’은 역사부정죄를 적용할 요건은 갖췄다고 봤다. 그는 “5·18 유공자들이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고통 받는 여러 실증 자료가 제시돼 왔다”며 “뿌리 깊은 지역감정, 호남차별과 연관되고, (피해자들에) 차별과 혐오가 현재진행형이라서 다른 역사 왜곡과 다르다”고 했다. 이어 “표적대상인 특정 인구집단이 현재에도 얼마나 차별받는지, 보호를 위한 특별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충분히 입증되고,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특정 발언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희 교수는 5·18 왜곡이 피해자 인격침해와 명예훼손에 그치지 않고, 5·18과 관련한 목소리를 박탈하기에 처벌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5·18 왜곡은 단순한 역사 부정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을 위해 5·18을 동원하는 우파 포퓰리즘의 전형적 사례”라고 말했다. 예컨대 5·18에 ‘북한군’이나 ‘괴물집단’이라는 표현을 적용하고 이들이 ‘세금을 축낸다’는 주장은 동성애자를 이단으로 규정해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며 공포를 야기하거나, 난민들에게 무슬림이라는 경계를 만들어 그들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주장과 같다.

한 교수는 “5·18과 관련된 사람에게 나는 ‘5·18 관련자다’ 또는 ‘5·18을 지지한다’고 함부로 말 못하게 하는 것은, 자기정체성을 부정하게 만들고 그들 인격을 박탈하는 존엄성 침해의 대표적 사례다. 우리 사회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빨갱이’라는 말만으로 공격받고 목소리가 박탈된다”며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보편적 원칙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라는 점에서 처벌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국회에는 2005년 8월 ‘일제강점하 민족차별 옹호행위자 처벌법안’을 시작으로 일본 식민지배 옹호행위 법안 3건, 반인륜범죄 및 민주화운동 부정 법안 1건, 5·18광주민주화운동 부인 행위 관련 7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밖에 국가유공자 관련 일부 개정안에도 역사부정죄 성격을 지닌 법안이 일부 발의된 바 있다.

김재윤 교수는 일부 5·18 부정 처벌 법안들 한계를 지적했다. 가장 최근 발의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안은 비방·사실 왜곡·날조 등의 행위를 처벌한다고 규정했는데 △다른 사람의 권리·이익을 침해하지 않아도 행위자를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고 △비방·왜곡·날조 처벌 시 표현과 언론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위법성 조각사유 고려가 없는 점 등이 지적됐다.

법학자들은 한편 5·18 모독 처벌 논의가 형사처벌 차원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재윤 교수는 “법적 제재 못지않게 자율적 규제, 즉 역사적 폄훼 발언하면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징계절차가 필요하다. 회사에서도 모욕 행위를 하면 사내 규율에 의해 직장생활 어려울 것”이라며 “기본 전제로 자율 규제를 강화하고 안 되면 형법적 제재를 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도 “5·18 형사처벌은 하나의 대처방법이다. 여러 자율규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형사처벌 가능성이 논의될 때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그는 “법적 처벌 논의만 지속되면 왜곡행위를 한 분들은 교묘하게 도망갈 것이다. 예로 위법성 조각사유를 두면 (왜곡발언을) 학문이라 주장할 것이라서, 5·18 역사부정 만큼은 사회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발언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할지, 왜곡 표현에 일정한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행하지 않는 자를 처벌할지, 면밀한 사회공학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손쉬운 말로 ‘토론에 맡기자’는 말이 있는데 반박하고 싶다. 북한군이 광주에 갔다는 말은 직관적으로 거짓말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이라 믿어버린다. (대안 제시 없이) 토론으로 바꾸자는 건 무책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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