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독려에 나선 ‘규제샌드박스’(규제특례) 지정을 통한 규제혁신과 관련해 의료단체 등에서 이번에 선정된 사업에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지난 11일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회를 열어 4가지 사업에 규제특례(규제샌드박스)를 지정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이 사업 가운데엔 DTC 유전체 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가 포함돼 있다. 이 서비스는 ㈜마크로젠이라는 업체가 개인 유전체 분석을 통해 사전에 질병 발병 가능성을 인지하고 예방하는 서비스를 하도록 실증특례를 신청했다.

산업부는 ‘유전체 분석’을 두고 “개인의 유전체를 분석해 질환의 발병 확률을 통계적 방법을 통해 예측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업부는 유전체분석이 “의사의 진단‧처방과 같은 의료행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전체 분석 대상 질환 등을 보면 모두 중증 질환이다. 마크로젠이 신청한 15개 질환 가운데 규제특례심의회의 심의에서 통과된 질환은 모두 13개로, △관상동맥질환, 심방세동, 고혈압, 2형당뇨병, 뇌졸중, 골관절염 등 만성질환이 6개 △전립선암, 대장암, 위암, 폐암, 간암 등 호발암 5개 △황반변성, 파킨슨병 등 노인성질환 2개이다.

산업부는 이번 심의 통과를 두고 보건복지부와 논의한 결과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여 질병예방 및 의료기술 수준 향상 등을 위해 부여된 것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송도) 거주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2년간 제한된 범위에서 연구목적으로 진행되는 실증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에서 실증계획의 구체적 내용을 검토한 후 사업을 추진한다고도 했다. 산업부는 마크로젠이 한국인터넷진흥원으로부터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관련 인증을 획득하고 있는 만큼, 개인정보보호도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과 처방만 없을 뿐 유전체를 통해 일종의 질환의 통계적인 검사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지적이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보건연합)은 성명을 내어 “노령인구 대부분을 포괄하는 범위의 중대질병을 포함했다는 점에서 이 유전체분석 영리 건강증진서비스 사업 허용은 건강관리부분 전체를 영리화한 것”이라며 “유전체분석이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건강관리 영역을 의료행위에서 제외해 사기업에서 돈을 받고 하는 서비스로 만듦으로서 아예 국가의 책임부분에서 의료부분을 제외한 명백한 의료민영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유전체 분석 대상의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 우려로 제기되고 있다. 보건연합은 “확대된 유전체 분석 대상이 의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아직 연구대상이거나 기껏해야 임상시험대상인 유전제분석을, 의학적 판단을 하기 힘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팔겠다는 것을 허용하는 행위 이상이 아니다. 국민건강을 대상으로 위험한 ‘장난질’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건연합은 “자원의 낭비일 뿐 아니라, 국민건강에 해를 끼친다”며 “전세계 어디에서도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되는 유전체분석을 13가지나 허용하고 이에 근거한 사기업의 돈벌이 서비스까지 허용한 것은 그 자체로 국민건강에 중대한 해악”이라고 강조했다. 보건연합은 “근거 없는 의료사기 행위를 혁신 운운하며 국가가 허용해준 멍청한 짓”이라며 “이런 공포마케팅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이를 제공하는 상업적 유전자업체와 건강관리서비스기업들일 뿐 국민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더구나 이른바 ‘문재인케어’에도 반한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문재인케어는 모든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비급여 전면금지가 핵심이나 이번 조치는 아예 건강관리서비스를 비급여항목으로 해서 사기업의 이윤행위를 보장해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강화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이다.

이에 따라 보건연합은 △의료민영화조치 유전자분석 건강증진 서비스 실증특례 철회하고 △박근혜 적폐 계승법인 '규제샌드박스' 5법을 폐기하며 △산업자원통상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은 퇴진하라고 촉구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민주노총도 이날 논평을 내어 “박근혜 정부와 자유한국당이 밀어붙인 규제프리존 법안을 공공성을 침해하는 법안이라고 반대했던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규제혁신법’을 시행해 신기술로 포장한 사업이 심의에 통과되면 각종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보호장치들을 일거에 해제할 수 있도록 허용해버렸다”고 평가했다.

이번 마크로젠의 유전체 분석 규제샌드박스 지정을 두고 민주노총은 “의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유전체 분석 분야를 국민 상대로 한 장사수단으로 만들어 유전자업체와 건강관리서비스기업 배를 불릴 수 있게 됐다”며 “선별적 규제혁신이 아닌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입지특례와 규제특례를 통해 규제개혁 방아쇠를 민간에 넘겨,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마크로젠이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 관련 인증을 획득하고 있다는 산업부 주장을 두고 민주노총은 “규제 샌드박스에서는 비식별 조치를 한 경우 마음만 먹으면 개인정보를 이용하거나 삼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은 “아무리 급하고 궁금해도 감당 못할 상자 뚜껑은 함부로 열어보면 안 된다”며 “유전자분석 건강증진 서비스 실증특례 시행을 철회하고, 규제 샌드박스 관련법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비판을 두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정례 현안브리핑에서 “그 문제는 산업부에서 발표하면서 충분한 답변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샌드박스를 혁신의 실험장이라며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국민의 생명과 안전·건강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선 허용, 후 규제’의 원칙에 따라 마음껏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를 열어주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에 우려가 있으면 먼저 검증하고 살펴봐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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