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이 공개돼 언론이 사법농단 혐의의 심각성을 집중 조명했지만 조선일보 법조팀은 양 전 대법원장에 협조한 판사를 비난한 또다른 판사들을 겨냥했다.

12일 공개된 검찰 공소사실엔 양승태 전 대법원의 ‘판사 블랙리스트’ 가동 정황이 세세히 적혔다. ‘양승태 대법원’이 2013~2017년 매년 초 법원 인사를 앞두고 작성한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로, 법관 8명은 2012년부터 실제 부당하게 인사조치됐다.

▲ 지난달 11일 사법농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정문 앞에 나타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달 11일 사법농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정문 앞에 나타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 13일 경향신문 13면
▲ 13일 경향신문 13면
▲ 13일 경향신문 10면
▲ 13일 경향신문 10면
▲ 13일 세계일보 11면
▲ 13일 세계일보 11면

대학 학생회장 경력이 ‘양승태의 문제 법관’ 만들어

대학 학생회장 경력이 ‘물의법관’ 사유가 됐다. 13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간사였던 A판사는 대학 학생회장을 역임했다는 이유로 ‘사법행정에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판사들과 교류해 상당한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됐다. 2010년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의원의 국회 공무집행방해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B판사는 대법원 입장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2016년까지 문제 법관으로 분류됐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상고법원 도입, 법관 임용 시 국가정보원 신원조사 등을 비판한 C판사는 ‘사법행정 책임자들에 대해 냉소적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적혔다. 이밖에 2016년 가정법원 판사들 의견을 수렴해 부부 간 법률분쟁을 줄이는 방향의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을 추진한 D판사는 ‘사법행정에 부담주는 행위를 했다’며 물의야기 법관이 됐다.

‘물의야기 법관’에는 원래 성추행·음주운전 등 비위 전력 있는 판사가 포함됐다. 그런데 양 전 대법원장 취임 후엔 대법원 입장과 배치되는 판결을 내린 판사, 사법행정 방침을 비판하는 판사,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을 밝힌 판사 등이 포함돼 관리된 것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인사 불이익 지시도 내렸다고 봤다.

블랙리스트는 각급 법원장의 ‘인비 작성’ 협조로 가능했다. 서울신문은 “법원장들은 대법원장 신년 인사를 위해 대법원에 방문할 때 ‘인비’(人·인사비밀)라고 표시한 봉투에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행적을 보이거나 부담을 준 내용을 정리해 법원행정처장에게 직접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법원행정처는 이를 바탕으로 매년 ‘물의 야기 법관’ 자료를 만들었다.

협조한 고위 책임자 법관들은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질 것으로 보인다. 권순일 대법관, 차한성 전 대법관,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됐다. 경향신문은 “이들은 검찰이 이달 말 전·현직 법관을 추가로 재판에 넘길 때 기소 대상으로 우선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13일 상반된 조선일보(왼쪽) 및 중앙일보 기자칼럼
▲ 13일 상반된 조선일보(왼쪽) 및 중앙일보 기자칼럼

대다수 언론사가 이를 지적할 때 조선일보는 협조 법관들을 비난한 또다른 판사들을 겨냥했다. 조백건 조선일보 법조팀장은 ‘40.33점 판사’ 제목의 칼럼에서 13일 퇴임하는 울산지방법원장 글을 인용했다. 최 법원장은 그가 사법시험 2차 민법 과목에서 40.33점을 얻어 턱걸이로 붙었다 밝히며 ‘(후배 법관들이) 판사라는 직위 앞에 겸손했으면 좋겠다’ 적었다. 조 법조팀장은 “판사는 재판받는 사람의 생살여탈권을 쥔다. 이런 판사가 교만해지면 재판 당사자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고 사법 신뢰가 무너진다는 뜻일 것”이라며 “일부 판사는 판사 전용 익명 게시판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 행정처에서 근무한 동료 판사들을 향해 ‘적폐 종자 따까리’ ‘쓰레기’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나만 정의'라는 교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 비판했다.

중앙일보 기자는 이와 다르게 “윗선 지시에 판결문을 수정하고 구속영장 기밀을 보고했던 평판사들까지 모두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태인 사회팀 기자는 ‘잘나가고 싶었던 판사님들에게’ 칼럼에서 “윗선에 모든 책임을 묻기에는 그들의 공소장에 등장하는 판사들의 이름이 너무 많다. 이들의 도움이 없이 양승태 대법원은 없었다”며 “국회의원 재판 청탁을 전달한 국회 파견판사, ‘막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청탁을 일선 판사에게 전달한 법원장, 대법원을 비판하고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냈던 판사들에게 인사 조치를 한 부장판사” 등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고 썼다.

▲ 13일 한국일보
▲ 13일 한국일보
▲ 13일 서울신문
▲ 13일 서울신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기업의 강제징용 소송을 두고 “외교부보다 더 적극 움직였다”는 평도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국내 비난여론을 의식해 소송 전원합의체 회부 추진에 소극적으로 임한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했단 것이다. 수사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은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에도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은 박남천(52·26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맡는다. 연루된 법관들에 대한 추가 징계도 시사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2일 내부통신망을 통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기소된 것을 사과하면서 협조한 법관들을 추가 징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취임 후 이날까지 사법농단과 관련해 사과한 건 이번이 여섯 번째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르면 다음 주 연루된 현직 판사 탄핵소추 명단을 공개할 방침이다. 동아일보는 5~6명 수준으로 최소화한 명단을 다음주 공개한 직후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예정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법사위원 말을 전했다. 동아는 이민걸·임성근·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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