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미오픽’은 미디어오늘이 소개하고 싶은 기사를 쓰거나 방송한 언론인을 인터뷰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미디어오늘이 만난 언론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깁니다. 이주의 미오픽 3화 주인공은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의 함형건 팀장입니다. 

YTN은 보도 전문 채널이다. 보도 가운데서도 현장 속보와 스트레이트에 강하다. 과거 ‘대구지하철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숭례문 방화’ 같은 대형 사고를 신속하게 전하며 전문 채널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지금은 너나없이 속보 경쟁에 뛰어든다. 모두가 휴대전화를 들고 미디어를 자처하는 시대다. 또 다른 전략과 무기가 필요하다.

YTN은 어떤 무기를 갖고 있을까. 눈에 띄는 건 데이터저널리즘이었다. 두각을 나타낸 기자가 있다. 함형건 YTN 기자다.

 

▲ 함형건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팀장이 12일 오전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함형건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팀장이 12일 오전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그는 인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전폭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 데이터저널리즘을 갈고 닦았다. 2016년 민간인 지뢰 피해 실태를 파헤친 ‘지뢰 피해 지도’ 기획 보도, 2017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소규모 난개발에 의한 매장 문화재 훼손 문제를 꺼낸 ‘매장문화재 SOS 지도 연속 보도’ 등은 각종 기자상을 휩쓴 수작이다.

 

지난해 9월부터 연속 보도한 YTN 데이터저널리즘 리포트 ‘사라진 방화’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보도는 방화 의심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국내 화재 조사 체계 문제점을 심층으로 파헤쳤다. 지난 10여년의 국내 화재 데이터 40여만 건과 200회가 넘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소방 화재 현장 조사서와 경찰 내사 결과 보고서 등 문건을 입수·보도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보도에서 다음과 같이 문제의식을 밝혔다. “소방 통계에는 신뢰성이 의심될 정도로 방화가 줄어들고 있었다. 경찰은 미제 방화 의심 사건으로 남겨놓을 만한 사건도 내사종결 처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화재 감정 내역은 있어야 할 세부 통계가 거의 없었다. 통계가 없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진실도 묻히기 쉽다.”

방화 비율이 2%에 불과하다(소방)거나 방화범 검거율이 90%에 달한다(경찰)는 수치엔 허점이 많았다. 국내 화재 조사 체계 두 축인 ‘소방’과 ‘경찰’은 서로 목적과 이해가 달랐다. 공조 유인은 적었다. 낮은 포상과 부족한 전문성 등 화재 조사를 기피하게 되는 구조도 보도에서 지적됐다. 실존하는 방화가 수치상 사라지는 이유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만난 함 기자는 “사회부 기자 시절 화재 현장을 취재할 때 ‘일가족이 다 목숨을 잃을 상황이 아닌데 왜 그렇게 피해가 났을까’라는 의문을 갖곤 했다. 그러나 방송사 특성상 그날 리포트를 마무리하면 또 다른 현장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화재 현장에서 가졌던 의문은 다른 사건으로 침잠했고 이는 마음 속 부채 의식으로 남았다”면서 취재 동기를 설명했다.

 

▲ 지난해 9월부터 연속 보도한 YTN 데이터저널리즘 리포트 ‘사라진 방화’ 방송분. 보도는 방화 의심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국내 화재 조사 체계 문제점을 심층으로 파헤쳤다. 사진=YTN 유튜브 채널
▲ 지난해 9월부터 연속 보도한 YTN 데이터저널리즘 리포트 ‘사라진 방화’ 방송분. 보도는 방화 의심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국내 화재 조사 체계 문제점을 심층으로 파헤쳤다. 사진=YTN 유튜브 채널

그는 이번 탐사보도 성과에 “소수 인력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심층 보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매번 고민한다”며 “방화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비교적 화재 데이터는 풍성한 편이다. 또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컴퓨터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 기법을 활용해 여러 명이 해야 할 작업을 대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함 기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매년 발표하는 방화범 검거율은 20% 내외인데 반해 한국 경찰은 90%에 달한다. 왜 그럴까. 소방서가 방화를 의심해도 경찰이 수사하지 않거나 내사 단계에서 종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수사기관 규율이 무너진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라진 방화’ 기획 보도는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소방 자료(화재조사서)를 기반으로 사건에 접근한 뒤 다시 경찰 쪽에 관련 자료를 청구하거나 경찰 취재를 이어가는 식으로 탐사가 진행됐다. 

소방서에도 부실한 방화 조사를 자체적으로 감사하거나 검증하는 시스템이 미비했지만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경찰의 도덕적 해이가 보도에서 두드러졌다. “소방서에 근무하는 화재 조사관들이 화재조사서에서 탄화 흔적 등을 근거로 방화를 의심해도, 이후 경찰조사서나 국과수감정서 등에 방화 의심 정황이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전선이 녹아 끊어진 흔적인 ‘단락흔’에 대한 문제제기도 흥미롭다. 화재 현장에서 전선이 끊어진 흔적만 분석해 전기 문제로 불이 났는지 판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단락흔만 보고 합선 화재로 단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락흔이 화재 원인인지 아니면 결과인지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함 기자는 “단락흔이 화재 원인인지 결과인지 그 성격을 구분할 수 있느냐고 국과수에 질의했더니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왔다. 뿐만 아니라 국과수에서 방화 사건으로 판정한 사례가 몇 건인지 집계 자료를 요구했지만 자료 자체가 없었다. 방화 사건에 대한 기본적 분류가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함형건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팀장이 12일 오전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함형건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팀장이 12일 오전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보도는 일부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해 9월 YTN 보도 이후 당시 조종묵 소방청장과 민갑룡 경찰청장은 간담회에서 화재 조사 공조 강화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아직 원론 수준이다. 

 

함 기자는 “탐사보도로 변화를 일으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소방과 경찰의 기본 시스템과 함께 의식도 바뀌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수사권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당장 가시적 변화가 있진 않다”고 말했다.

데이터저널리즘을 꿈꾼다면 데이터와 저널리즘 가운데 무엇에 무게를 둬야 할까. 그는 ‘데이터 3, 저널리즘 7’이라고 말했다. 함 기자 역시도 2011~2012년 미국 연수를 통해 정보공개청구와 GIS 활용법, 컴퓨터 활용 보도(Computer-assisted Reporting, CAR) 등 데이터저널리즘 기술을 익혔지만 취재 기반이 된 것은 현장에서의 경험이었다. 

“지뢰 기획 보도나 난개발에 의한 문화재 훼손 문제 등 앞선 보도물도 국방부, 문화부 기자로서 갖고 있던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데이터와 현장은 알게 모르게 연결돼 있는 것 같달까. 현장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걸 풀고 싶은 욕구가 쌓여야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게 되는 면이 있다. 현장 경험이 없다고 데이터저널리즘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결국 ‘아날로그적 부딪힘’이 있어야 한다. 후배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전화 한 통 들고 취재원과 100번 정도 싸우면 윤곽이 나온다’는 농을 던지는데 아날로그적 요소는 필요하다.(웃음)”

 

▲ 지난해 9월부터 연속 보도한 YTN 데이터저널리즘 리포트 ‘사라진 방화’ 방송분. 보도는 방화 의심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국내 화재 조사 체계 문제점을 심층으로 파헤쳤다. 사진=YTN 유튜브 채널
▲ 지난해 9월부터 연속 보도한 YTN 데이터저널리즘 리포트 ‘사라진 방화’ 방송분. 보도는 방화 의심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국내 화재 조사 체계 문제점을 심층으로 파헤쳤다. 사진=YTN 유튜브 채널

현재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소수 정예다. 함 기자와 후배 이승배 기자, 자료 정리·분석을 담당하는 리서처(researcher) 신수민·최혜윤씨 등 총 4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YTN 보도본부 여력을 고려하면 대규모 탐사보도팀을 꾸리는 건 여러모로 힘에 부친다.

 

언론계 전체로 눈을 넓혀도 KBS나 SBS, 중앙일보 등 데이터저널리즘에 예산과 인력을 적극 투입하는 기성 언론은 일부다. 함 기자는 “데이터저널리즘 차원에서 갈수록 우려되는 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BBC는 지역 작은 언론사에 자신들의 탐사보도나 데이터저널리즘 노하우를 공유한다. 전국 데이터를 구하긴 쉽지 않지만 동네 시군구에 국한한 데이터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라도 불씨를 살리는 게 중요할 것”이라며 “YTN 역시 기존 콘텐츠와 데이터저널리즘 콘텐츠를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 각자 처한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양질의 보도를 할 수 있는지 저널리스트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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