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방송법 개정안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언들이 쏟아졌다.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열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독립성이라며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을 위해 고려해야 할 기준은 개방성과 다양성으로 지역대표, 분야별 대표 등을 구체적으로 법률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김동준 소장은 국회나 정부에서 이사회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소장의 주장은 지난 1996년 채택된 유럽평의회의 권고안에 따라 구성한 해외 공영방송사의 이사회 및 경영진의 사례를 두루 살펴보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유렵평의회 권고안은 공영방송의 프로그램 활동은 어떠한 형태의 검열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특히 공영방송 이사회의 지위에 대해 “개방적이고 다원화된 방식으로 임명”하고 “법에 규정된 예외에 대한 반대 조항이 있는 경우, 그들을 임명한 사람 이외에 그 어떤 기관이나 사람으로부터 지시를 받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 같은 유럽평의회 권고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회 전체 구성원을 의회가 직접 공모하거나 임명한 사례는 해외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의회의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직접 추천을 최소화해 제한적으로 적용하거나 제시된 후보자의 동의 또는 거부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있었다. 일본 NHK의 경우 전국 8개 광역권으로 나눈 지역 대표와 분야 대표를 선임하면 총리가 경영위원회(이사회) 후보자 명단을 중의원과 참의원에 제출하고 각각 과반수 동의를 얻어서 임명하는 식이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시 개방적이고 다원화된 방식으로 임명하는 방식의 일례로 영국 BBC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총 14명의 이사 중 5명의 비상임 이사는 정부에 의해 임명되는데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인선위원회가 공모를 통해 인선한 후 여왕이 임명하는 식이다. 민족권역 이사는 4개 권역 장관의 동의가 필요하고 나머지 비상임 이사 5명과 상임 이사 4명은 BBC 이사회 내 이사후보지명위원회가 선출한다. 지명위원회 위원장은 이사장이 맡는다.

김동준 소장은 “유럽평의회의 1996년 권고안은 정치적 간섭의 주체일 수 있는 각 회원국 정부의 장관들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결의했다는 점에서 국내 공영방송 관련 법안을 논의할 때 중요한 원칙으로 고려돼야 한다. 또한 이사 구성원의 전문성 영역을 세분화하여 명시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성과 구성원 및 구성 주체의 다원성 확보를 위한 세부 방침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사회 구성 시 3분의 1 이상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방식, 사장 선임에 있어 시민참여방식 등을 제안했다.

토론회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한계를 지적하는 주장도 나왔다.

정미정 강사(전북대학교)는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내용 중 여야 이사 추천 할당비율을 7대6으로 입법화한 것에 대해 “그동안의 비정상적이며 정치개입으로 지적되었던 관행을 입법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가칭)국민추천이사제를 도입해 이사 정원의 3분의 1 이상을 국민의견으로 수렴해 위원 전원 합의로 선임하겠다는 방송통신위원회 의견서에 대해서도 “정파적 갈등을 완화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국민대표성을 고려해 100명 이상의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정치 개입을 차단하자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의 발의안에 대해서는 “이사회의 구성이 여전히 방통위 추천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금과 유사한 이사회 구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만 “방송사와 방송사 구성원 및 방송학계 추천이 3분의 1 이상이 되도록 추천한다는 일종의 종립지대 조건이 있다. 이사회보다 사장의 선임과정에 국민참여를 특히 강조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발의된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시 시도지사협의회와 대한변협, 신문협회, 기자협회 등의 단체 추천을 받도록 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의 안과 지역, 성별, 연령을 고려해 위촉한 200명의 이사추천국민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를 공개면접하고 투표를 통해 이사를 선정하는 추혜선 정의당 의원의 안이 있다.

정미정 강사는 “공영방송의 이사진을 추천하는 권한을 국회에 주고 그 할당비율을 여당과 야당이 나누어 갖는 것은 공영방송에 그 만큼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며 “여당도, 야당도 그 어떠한 정치 정당의 개입을 배제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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