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의원들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돼 있다는 보수 인사의 주장이 나오면서 전 국민적 비난이 쏟아졌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도 일제히 자유한국당 입장을 물으면서 북한군 개입설을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11일자 “극단으로, 과거로 가는 한국당”이라는 칼럼에서 “한국당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영남에 대거 진출한 ‘동진(東進) 정책’에 맞서 내년 총선에선 자신들이 호남에 진출하는 ‘서진(西進)’을 벼르고 있다. 그러나 5·18과 관련해 이처럼 어정쩡한 태도를 계속 보인다면 ‘서진’은 고사하고 수도권 민심에도 악영향을 미쳐 제1 야당 자리나마 보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썼다. 자유한국당의 처지를 걱정하는 듯한 정치공학적 해석이지만 북한군 개입설에 선을 긋지 못하면 뭇매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 있다.

조선은 12일 사설에서도 “몇몇 한국당 의원들은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음모설을 들고 나와 국민을 아연하게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 등의 망언과 지도부의 어이없는 대처로 한국당은 역사적 사실도 망각하고, 국민 정서와도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정당이란 조롱까지 받고 있다. 이게 과연 제1 야당 공당의 모습인지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라고 썼다.

언론이 하나같이 북한군 개입설 주장의 ‘창구’가 돼버린 한국당을 비난했다. 하지만 과거 북한군 개입설을 확산시킨 일정 부분 책임은 언론에도 있다. 대표적인 언론이 조선미디어그룹의 월간조선이다.

북한군 개입설은 지만원씨가 보수 우파 인터넷 매체를 통해 북한 특수군 600명이 침투해 일으킨 전쟁이 5·18 이라고 거듭 주장한 내용이 확산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월간조선에서도 상세히 다뤘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초 5. 18 진실규명 여론이 일자 월간조선은 “탈북자와 보수성향 인사들이 제기한 ‘배후조종(북한군)에 의한 폭동설’을 불식시킬 수 있을까”라며 북한군 개입설을 다뤘다. “5·18 때 북한군 개입설, 사실일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전두환 회고록’에 적힌 북한군 개입 정황을 그대로 실었다. 해당 내용에 대해 5·18 단체와 유족들은 명예를 훼손했다며 회고록의 출판과 배포를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서 법원은 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월간조선은 이뿐 아니라 탈북 작가가 쓴 소설에서 주장했던 내용도 다뤘다. 5·18 당시 ‘통일전사’ 북한군이 100명이 활동하고 북에 돌아왔지만 북한 당국이 사살했다고 들은 ‘전언’을 실었다. 월간조선은 5·18 당시 ‘작전’에 참여했다는 탈북 군인들의 활동상을 담은 또 다른 소설도 언급했다. 소설은 “광주도청 지하실에 모인 청년들은 이번 광주폭동에 남파된 조선인민군 타격대 지휘관들이었다”라고 썼다. 월간조선은 지만원씨가 출판한 책인 ‘5·18 최종보고서’에 나온 북한 특수부대원 출신 김명국(가명)의 증언도 상세히 소개했다. 김명국은 채널A에 출연해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다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을 당한 인물이다.

▲ 8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현장. ⓒ정철운 기자
▲ 8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현장. ⓒ정철운 기자

북한군 개입설을 단순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허화평 전 대통령 정무수석의 발언을 통해 북한군 개입이 실제 존재한 의혹인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허화평은 월간조선 기자를 만나 “무기고 탈취와 교도소 습격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부퇴진’이나 ‘계엄해제’ 요구와 비교해 지나친 것이었다. 평범한 시민의 요구는 아닐 것이다.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 시민군 속에 숨어 있던 소수세력에 의해 선동된 것으로 군은 판단했다”고 말했다. 월간조선은 정보당국의 한 인사의 말이라며 “북한군이 아닌, 소규모 조직의 비정규 부대나 남한 내 활동하던 고정간첩의 개입 가능성까지 배제하긴 어렵다”고 전했다. 북한군 개입설 논란을 다룬 것을 뛰어넘어 사실상 북한군 개입설 의혹을 조장하는 보도를 한 셈이다.

언론이 5·18 진상규명을 다했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그 틈을 타 북한군 개입설이 비집고 나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를 놓고는 한 대학교수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은 37년 동안 진상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제는 실종자, 피해자의 추가 신고도 그친 지 오랜데 언제까지 상처를 파헤쳐야 할까? 이제는 더 이상 ‘한’의 포로가 되지 말고 치유와 화합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선우정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2017년 칼럼에서 “우리 사회는 사법·정치·역사 전 측면에서 5·18의 진실을 찾아내고 평가하기 위해 노력했다.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열정도 부족하지 않았고 비용도 아끼지 않았다”며 5·18 진상규명 특별법안이 불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언론이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충분하리만큼 이뤄졌고 사법적 단죄가 끝났기 때문에 과거 진실을 조명하는 것은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일련의 주장을 내놓았을 때 보수 수구 세력 안에서는 진상규명에 역행하는 북한군 개입설이 확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5·18 진상규명 내용으로 계엄군의 민간인 헬기 사격, 민간인 암매장, 사격에 이른 지휘체계 등 아직도 밝혀야할 사안이 산적해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지만원발 북한군 개입설은 지난 2011년부터 시작해 극우성향 인사를 통해 동조하고 확산되는 흐름이 있었다”면서 “이런 가운데 종합편성채널에서 보수층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아이템으로 북한군 개입설을 다뤄 문제가 됐고, 관련 인물을 패널로 출연시키면서 미디어를 통해 북한군 개입설이 확산된 사례가 왕왕 있었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지금 세명의 한국당 의원을 두고 언론의 논조는 망언을 하고 역사 왜곡이고 정치권의 성토가 쏟아진다는 식이지만 미디어의 제1금칙인 팩트를 가리는 역할을 고려하면 북한군 개입설이 왜 회자되고 있는지 이면을 파헤치고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분석했어야 했다”며 “언론이 팩트체크의 최전선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미디어라는 매개체 역할만 한 것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팟캐스트-유튜브와 정통미디어와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5·18 관련 가짜뉴스가 횡행해졌는데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 것에도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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