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핵발전소 4호기 운영허가안을 의결했다. 핵발전소 건설에는 논란이 많지만, 신고리 3·4호기는 건설과정에서 특히 논란이 많았다. 2008년 건설 허가를 받은 신고리 3·4호기는 완공을 앞둔 2013년, 인증서 위·변조 사건으로 인해 설치된 케이블을 모두 철거하고 재설치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겪었다. 당시 교체되었던 케이블 길이만 1000km가 넘었고,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2014년에는 신고리 3호기 보조건물에서 질소 누출사고가 일어나 노동자 3명이 질식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2015년에는 제어밸브를 납품했던 미국 GE社가 리콜을 통보해서 새 밸브를 제작하고 교체하기도 했다.

결국 신고리 3호기는 2015년 10월 운영허가를 받고, 2015년 12월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밀양 송전탑 문제가 한참 쟁점이던 2013년 당시, 정부는 신고리 3·4호기 가동을 위해 밀양 송전탑 건설이 시급하다고 밀양주민들을 압박했지만, 결국 핵산업계 내부 비리와 사업관리 부실로 공기가 지연된 것이다. 이후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도 순탄치 않았다. 냉각해수계통에서 구멍이 발견되고, 가압기 안전방출밸브에서는 누설이 발견되었다. 또한 UAE 핵발전소 1~4호기 콘크리트 격납건물에서 공극이 발견되어 신고리 3·4호기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어 최근까지 논란이 계속되었다.

▲ 울산 울주군에 있는 신고리 원전 3·4호기. ⓒ 연합뉴스
▲ 울산 울주군에 있는 신고리 원전 3·4호기. ⓒ 연합뉴스
이런 과정을 겪었던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가 설 연휴 하루 전날, 9명 정원의 원안위 위원 중 4명만 참석하여 결정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법률상 규정하고 있는 ‘재적위원 과반수’는 넘었을지 몰라도, 작년 말 국회에서 동의안에 제출된 원안위원 임명이 지연되고 있고, 일부 원안위원은 선출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운영허가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몇 가지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이후 보완하라는 ‘조건부 승인’ 형식까지 취해 핵발전소 안전보다 가동을 우선 고려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시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핵발전소 운영허가 심사는 이전과 다르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면 너무 심한 기대였을까? 문재인 정부의 핵발전소 정책은 흔히 ‘탈원전 정책’으로 표현된다. 신고리 5·6호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핵발전소 건설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표현 때문에 우리나라의 모든 핵발전소가 문 닫은 것으로 오해하는 국민이 많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정책으로 산업 생태계가 붕괴한다며 핵산업계와 보수 언론이 연일 보도를 이어가고 있으니, 이런 오해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지금의 계획대로라면 현 정부 임기동안 핵발전소는 계속 늘어난다. 신고리 4호기 이외에도 신울진(신한울) 1·2호기 운영허가 심사를 앞두고 있고, 신고리 5·6호기도 현재 건설하고 있다. 게다가 핵발전소 수출 세일즈를 한다고 대통령과 산업부 장관은 해외 출장을 계속 다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산업계는 탈원전 반대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탈핵진영이 현 정부의 정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도 아니다. 늘어나는 핵발전소를 환영하는 탈핵운동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지화하기로 한 영덕·삼척 핵발전소 후속 조치 또한 진행되지 않고 있다.

▲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찬핵·탈핵 양측 모두에서 비판받는 현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애초부터 갖고 있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죽도 밥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선 오해와 반발만 커질 뿐이다. 정부가 정말 ‘탈원전 정책’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이제는 그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이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과 내용으로 신규 핵발전소 운영허가를 늘려가는 것을 그만해야 한다. ‘탈원전 정책’을 선언한 정부답게 노후 핵발전소 조기폐쇄나 신규 핵발전소 건설 금지법 제정 같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과감하고 혁신적인 에너지정책 추진이 없다면, 문재인 정부는 찬핵·탈핵진영 모두에게 비판받는 최초의 정부가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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