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폄하한 자유한국당 세 의원들에 대해 징계안이 제출됐다. 문제 발언을 한 의원들은 유족들에게 상처 줄 의도가 없었다면서도, 국가보훈처가 비공개 원칙을 밝힌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거나 유공자 순수성을 거론하는 등 반성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한국당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 징계안을 제출했다. 징계안 접수엔 강병원 민주당 의원(원내대변인),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당대표 비서실장), 김정현 민주평화당 대변인, 김종철 정의당 원내대표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세 명의 한국당 의원들은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공동 주최해 이른바 ‘5·18 북한 배후설’ 주장으로 형사 처벌을 받았던 지만원씨 등을 초청했다. 5·18 단체들은 신성한 국회가 광주를 모독했다며 울분을 터뜨렸고, 지난 11일부터 국회 앞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 강병원, 바른미래당 채이배, 민주평화당 김정현, 정의당 김종철)이 12일 국회 의안과에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폄훼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 노컷뉴스
▲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 강병원, 바른미래당 채이배, 민주평화당 김정현, 정의당 김종철)이 12일 국회 의안과에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폄훼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 노컷뉴스

여야 4당은 한국당 의원들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은 이념과 정파를 떠나 대한민국이 그 역사적 성격을 규정한 민주화운동”이라며 “이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발언을 통해 국회의원의 품위를 심각하게 손상하고 국회의 명예와 권위를 실추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국민을 모욕하며, 나아가 대한민국 입법·사법·행정부가 공히 규정한 ‘5·18 민주화운동’ 성격을 부정함으로써 민주헌정체제의 판단 자체를 부정하는 위험한 행동을 했다”고 징계 이유를 밝혔다.

여야 4당 “국민 모욕, 민주헌정체제 판단 부정한 위험한 행동”

4당은 김순례 의원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군 개입 등으로 매도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민주유공자들을 모욕하는 망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공청회에서 “저희가 방심하며 정권을 놓친 사이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 세금을 축내고 있다”거나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역사적 진실을 파헤치지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보수우파의 가치를 지키는 의원들이 많이 노력하지 않고 게을렀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진태 의원과 이종명 의원 징계안에는 “신성한 국회에서 사법부로부터 단죄(실형)을 선고받은 지만원으로 하여금 ‘전두환은 영웅’, ‘5·18은 북한군이 주도한 게릴라전’, ‘5·18은 폭동’, ‘북한군 개입은 이미 증명된 사실’ 등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하며 민주헌정질서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도록 방조”했으며 “나아가 국회의원 스스로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발언 등을 통해 국회와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적시됐다.

4당은 특히 김진태 의원을 두고 4당은 “5·18 민주화운동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한 투쟁을 선동하는 등 망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공청회에 영상으로 보낸 축사에서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선 안 된다. 전당대회 나온 사람들이 5·18 문제만 나오면 꼬리를 내린다. 힘을 모아서 투쟁했으면 좋겠다”라고 주장했다.

4당은 이들 의원 3명이 ‘대한민국헌법’ 제7조, ‘국회법’ 제25조(품위유지 의무), ‘국회의원윤리강령’ 제1호, 제2호 및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 제2조(품위유지) 등을 위반해 국회의 명예와 권위를 심대하게 실추시켰다며 ‘국회법’ 제155조16호에 따라 엄중히 징계할 것을 요구했다.

문제는 징계 실현 가능성이다. 국회법 제155조는 의원이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을 때 윤리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의결로써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회 윤리위 제소는 의원 20명 이상의 동의로 가능하지만, 현역 의원 제명은 재적 의원 3분의2 이상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20대 국회 현원은 298석, 의석 수 113석을 보유한 한국당 의원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제명이 이뤄지기 어렵다.

▲ 8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현장. 행사를 비판하는 시민들과 행사 참가자들 간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 ⓒ정철운 기자
▲ 8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현장. 행사를 비판하는 시민들과 행사 참가자들 간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 ⓒ정철운 기자

한국당 “3인 당 윤리위원회 회부”…의원들은 반성 없는 사과

3인 의원들 발언을 ‘소수의견’ 정도로 표현했던 한국당은 하루만에 당 차원에서 책임을 묻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지난주 우리 당 일부 의원들이 주최한 ‘5·18 진상규명 공청회’ 문제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5·18 희생자 유가족과 광주 시민께 당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 말씀 드린다”며 “당 차원 조사 결과, 행사 발제 내용은 일반 역사 해석에서 있을 수 있는 ‘견해의 차이’ 수준을 넘어 입증된 사실에 대한 허위 주장인 것이 명백했다”고 말했다. 11일 “기본적으로 보수 정당 안에는 여러 스펙트럼과 견해차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반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김 위원장은 공청회가 민주화운동으로서의 5·18 성격을 폄훼했을 뿐 아니라 보수의 가치와 정신을 훼손했다며, 본인 역시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당 중앙윤리위원회 차원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보수 성향 언론인 조선일보에서도 이날 공청회 발언을 비판하는 한편 “당의 기강이 얼마나 바닥인지 이번에 다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이날 “김병준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으로 옹립된 이후 당내에서 위상이 확고했던 적이 없다”며 “자유한국당 성원 상당수가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수구세력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 의원들의 징계에는 필연적으로 거센 저항이 따를 것이다. 당 중앙윤리위원회가 이런 당내의 반발을 뚫고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결정이 과연 내릴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비판했다. 최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이 5.18을 진정으로 숭고한 민주화의 역사라고 여긴다면 여야 4당이 함께 추진하는 5.18모독 의원 제명에 당장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한 당사자들 입장은 진정성 있는 반성을 의심케 한다. 이종명 의원은 본인에 대한 징계안이 접수되기 직전 기자들에게 입장문을 보내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키고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는 매우 송구하다”면서도 “5·18과 관련된 두가지 큰 쟁점인 북한군 개입, 북한군 침투조작 사건에 대해 승복력 있는 검증, 그리고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5·18 유공자 명단 공개가 즉각 이뤄지면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사퇴 의사 없는 사퇴 입장문을 낸 것이다.

하루 먼저 사과문을 낸 김순례, 김진태 의원은 이른바 ‘가짜 유공자’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순례 의원은 “북한군개입설을 비롯한 각종 5.18관련 비하발언들은 자유한국당의 공식입장이 아닐뿐더러 본 의원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며 “‘허위 유공자’를 철저히 걸러내는 것이 ‘유공자’ 분들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 했다. 김진태 의원은 “공청회 참석자들의 발언은 주관적인 것이고, 향후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본인과 공청회 발언에 선을 긋는 한편, “‘진짜유공자’분들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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