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전 부서 직원들은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무더기 자료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전산상 데이터를 뽑고 취합해 다시 데이터로 조직하는 작업이다. 그야말로 비상이 걸린 셈인데 서울시교육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여야는 지난해 12월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 유아교육법,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의 중재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은 상임위원회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상정 60일 등 최대 330일이 지나면 본회의 표결이 가능하다. 여야 합의로 개정안 처리기간을 더 앞당길 수 있지만 유치원3법은 패스트트랙 지정 후 논의가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국가지원금과 학부모 분담금 회계의 단일화를 주장하지만, 한국당은 분리를 요구해 입장차가 여전하다.

패스트트랙 지정에 따라 오는 11월이면 유치원3법이 처리될 것으로 보이지만 여야가 합의하면 충분히 앞당길 수 있는데도 2월 임시국회 개회 여부까지 불투명해지면서 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지난해 박용진 민주당이 의원이 사립유치원 비리를 제기하면서 언론이 주목했던 유치원3법이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런 가운데 자유한국당 한 의원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와 대척점에 선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의도가 의심되는 무더기 자료를 청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교육청에 비상이 걸린 이유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실이 서울시교육청에 요구한 현황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의 유치원 감사자료 △유치원 감사부서 인원변동 현황 및 인적사항 △서울시교육청 유치원 관련 행사 및 연수(해외포함) 자료 일체 △서울시교육청이 보유한 차량 운행현황(배차직원, 배차현황,주유비사용내역 등 교육감차량포함 관련자료 일체) △서울시교육청 수행기사 시간외 수당 지급 상세내역 △서울시교육청 기부금 사용내역 △서울시교육청 수의계약 현황(건수, 금액, 업체명, 계약내용,수의계약사유 등 관련자료 일체) △서울시교육청 홍보 관련 자료일체(홍보유형, 홍보업체, 계약금액,홍보업체와의 계약서, 홍보물 등 관련자료일체) △서울시교육청 기자재 구입 현황(건수, 금액, 업체명, 물품명 등관련자료 일체) △서울시교육청 국내출장비 지급내역 및 출장비 지급규정 △기념품 구입현황(물품명, 금액, 활용처, 계약업체가 있는 경우 계약서 포함 관련자료 일체) △최근 5년간 서울시교육청 인력채용 현황 등이다.

김현아 의원은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유치원3법 개정안 논의에 참여하는 당사자라서 한유총의 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시교육청은 김 의원의 자료 요구 배경을 의심하고 있다.

▲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김현아 의원 페이스북
▲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김현아 의원 페이스북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31일 ‘한유총 실태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유총이 유치원3법 통과를 막으려고 특정 국회의원 후원을 알선한 정황을 포착했다면서 한유총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법인 설립허가 취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한유총 운명이 결정되고, 불법 후원금 정황이 드러나면 관련된 국회의원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한유총 회원 300명이 가입한 단체 채팅방에는 특정 의원의 후원계좌 정보를 올리고 후원 한도 10만원을 입금하자고 독력한 내용도 발견됐다. 교육청은 개인 후원금이라도 법인이 독려했다면 법인 관련 자금으로 볼 수 있고 불법 후원금 쪼개기에 해당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현아 의원은 같은 당 김한표, 곽상도, 전희경 의원과 함께 한유총의 로비대상이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유총 로비설에 휩싸인 김현아 의원이 한유총과 전쟁을 선포한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꼬투리를 잡으려고 무더기 자료를 청구했다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교육청은 김현아 의원실의 자료 요청에 현직 의원의 요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서도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고위 관계자는 “뭘 보겠다는 건지 파악이 안 될 정도로 황당하다. 예를 들어 최근 5년 동안의 홍보 관련 일체를 달라는데 요구 지점이 두루뭉술해 어디까지 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교육청의 일을 방해할 목적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료 요청 시점이 한유총 실태조사 발표하고 하루 뒤인 지난달 31일이고 오늘(8일)까지 완료해달라고 했다”며 “현역 의원의 요구에 여러 부서에서 자료를 취합하고 있지만 의도가 의심스럽다. 교육청 꼬투리 잡기 위해 전방위로 자료를 요청한 게 아닌가 싶다. 압박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아 의원이 요구한 자료 중 유치원 감사부서 인원변동 현황 및 인적사항은 특히 한유총 비리를 담당하는 직원들 개인정보에 해당할 수 있어 정보 공개가 논란이 될 수 있다.

김현아 의원실은 “국감자료와 비슷하게 일반적인 자료라고 보면 된다. 최근 5년간 자료를 요구한 것도 변동 추이를 보고자 하기 위함”이라며 “저희가 교육청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라거나 로비설에 휩싸여서 자료 요구를 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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