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기 문자’보다 부끄럽다. 그만큼 심각하다. 적나라하다. 장충기는 삼성그룹을 총괄하는 핵심인사였지만 박수환은 홍보대행사를 운영하던 일개 로비스트였다. 최근 뉴스타파를 통해 공개된 박수환의 휴대폰 문자파일 속에는 삼성 앞에서 비굴하고 초라했던 언론인들이 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녀취업·명품·의약품까지 건네받으며 기사거래는 기본에, 로비스트 한 마디에 기사삭제까지 이뤄지고 있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2015년 6월 이학영 당시 한국경제 편집국장이 박수환을 통해 자신의 딸이 한국GM 인턴에 채용되도록 청탁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국GM 인턴 합격자 발표 날이 2015년 6월11일이었는데 이 국장의 딸 이력서가 GM에 들어간 날은 6월16일 이후였다. 문자에는 ‘선 채용 후 면접’이란 표현도 있었다.

▲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송의달 당시 조선일보 산업부장 딸 역시 한국GM에 인턴으로 채용됐다. GM측이 송 부장 딸의 이력서를 박수환에게 요청한 시점 역시 원서 마감이 9일이나 지난 뒤였다. 당시 송의달 부장은 박수환을 통해 딸의 인턴근무 희망시기까지 지정해 한국GM에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 모두 채용청탁의혹을 부정했지만 증거는 명확해 보인다.

기자들이 직접 박수환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앞서 박수환은 기사 청탁 대가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에게 수천만 원대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지난해 2월 징역6월 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선고받은 인물로 현재 또 다른 건으로 수감 중이다. 박수환은 조선일보 주필 외에도 다른 간부들에게 각종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된 송의달 조선일보 산업부장은 파리바게트 등을 운영하는 국내 1위 제빵업체 SPC그룹으로부터 미국 왕복 항공권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송 부장 부녀의 항공권을 SPC그룹이 대신 구매해 박수환에게 전해줬다는 것. 왕복 티켓 비용은 최소 300만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항공권 구입 관련 문자들이 오가기 전인 2015년 4월, 조선일보에는 SPC그룹이 운영하는 파리바게뜨 홍보 기사가 실렸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기사가 나가기 전 SPC그룹 상무와 박수환 사이에 여러 문자가 오갔는데, 여기 보면 조선일보 측이 기사를 싣기 힘들다고 했는데 박수환 부탁을 받은 송 부장이 기사 강행을 결정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기사에 대한 대가성으로 미국 왕복 항공권이 오고갔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2014년 2월 당시 해외연수를 앞두고 있던 박은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사회부장 역시 박수환에게 금품을 받았다. 이후 박 부장은 박수환씨가 한 전시회의 소개 기사를 부탁하자 “내일 좋은 시간에 올리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강경희 조선일보 전 사회부장 역시 박수환에게 명품을 선물받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강 부장은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더 심각하다. 그는 박수환을 통해 의사 처방 없이는 구입이 불가능한 전문의약품을 제공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수환은 2013년 3월11일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에게 “사장실로 직접 보내드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문자를 보냈고 김 사장은 “헉, 이거 민망한데요”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박수환은 “전문의약품이라 처방전 없이는 못 구합니다. 선수끼리는 기밀성이 최우선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해당 의약품은 박수환의 홍보고객사였던 동아제약이 제조·판매하는 약이었는데 김 사장이 전문의약품을 받고 보름 뒤 동아일보는 ‘국내 1위에서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변신 하겠다’는 제목으로 동아제약 홍보 기사를 실었다. 김재호 사장측은 “제약회사의 약을 부적절하게 받은 바 없고 문자 내용 또한 아는 바 없다”고 해명했으나 해명보다 증거가 명확해 보인다.

로비스트 박수환에게 조선일보는 언론사라기보다 영업수단이었다

무엇보다 ‘1등 신문’을 자처해온 조선일보의 기사거래 정황은 낯이 뜨거울 정도다. 조선일보는 기자칼럼 지면을 이용해 박씨를 도운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9월 “크라운 베이커리와 군산 이성당의 차이점”이란 제목의 김영수 당시 조선경제i 대표 기명칼럼에선 파리바게트를 언급하며 정부의 프랜차이즈 빵집 규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수환은 회사 메일을 이용해 김영수 대표에게 칼럼 원고를 보냈고, 3주 뒤 김 대표는 SPC에 유리한 칼럼을 조선일보 지면에 실었다. SPC는 박수환의 고객사였다.

2014년 7월 조선일보에 게재된 김영수 대표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제목의 칼럼은 CJ 등 대기업 총수 구속으로 경제가 불황이니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는데, 역시 이 칼럼 뒤에도 박수환과 칼럼의 수혜자인 CJ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문자로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기업청탁원고를 ‘독자의견’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2014년 4월 실린 “한국형 전투기, 빨리 날 수 있게 해야”란 제목의 기고는 양아무개 전 국방대학 교수가 썼지만 기고의 배후엔 GE(제너럴일렉트릭사)가 있었다. 게재 5일 전 조아무개 GE 전무는 박수환에게 기고자 이름과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냈고 박수환은 이를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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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박수환이 요구하면 기사를 빼주거나 수정하기도 했다. 2013년 10월 송희영 주필과 박수환이 주고받은 문자의 한 대목은 이러했다.

“대우 빼라 했음다”(송희영)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박수환)

“사회면 톱을 일단 2단 크기로 줄였음다”(송희영)

뉴스타파는 “송 전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관련 기사를 빼도록 조선일보를 움직였고, 신문지면에서도 기사 크기를 축소하도록 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라며 “실제로 이 문자가 오고 간 다음날 조선일보에는 문자내용과 똑같이 대우조선해양 관련 기사가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박수환에게 조선일보는 언론사라기보다 고객사를 위한 영업수단이었다.

▲ 2016년 8월22일, 구속되기 전 박수환씨(가운데)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2016년 8월22일, 구속되기 전 박수환씨(가운데)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명백한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위반, 기성언론은 無보도 수준으로 일관

우리는 일반적으로 언론이 각종 부정청탁을 비롯해 사회 부조리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정작 언론사 간부들이 부정청탁을 받으며 지면을 대가로 금품을 받고 있는 반 저널리즘적인 행태가 이번 ‘박수환 문자’로 드러났다. 언론계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안을 지면에서 보도한 신문사는 뉴스타파가 보도를 시작한 1월28일부터 2월2일까지 단 한 곳도 없다. 온라인에서는 주요일간지 중 한겨레만 인용 보도했다.

특히 최근 손석희 JTBC대표이사 관련 보도량을 생각해보면 ‘박수환 문자’와 관련해 無보도에 가까운 보도량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손 사장 관련 의혹 보도가 설령 ‘관음증’ 비판을 받더라도 영향력 있는 언론인에게 필요한 도덕성 검증차원에서 공익성이 있다고 본다면, 처방전 없이는 구할 수 없는 의약품을 제공받은 명확한 정황증거가 있는 동아일보 대표이사의 사건은 왜 많은 기자들이 검증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앞서 뉴스타파 보도에 등장한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경제 등은 2016년 9월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 도입 당시 언론인이 법적용 대상에 포함되자 신문사 경영과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던 언론사들이다. 한국신문협회는 2016년 10대뉴스로 김영란법 도입을 거론하며 이 법을 “신문규제법안”으로 꼽았다. 돌이켜보면 이 법은 ‘기사거래규제법안’이었고, ‘뇌물과 향응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안이었던 셈이다. 이에 비춰봤을 때 대부분의 기성언론이 ‘박수환 문자’를 보도하지 않는 이유는 짐작가능하다. 박수환이 주고 받은 문자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남을 비판하고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입장에 있는 언론인들이 왜 공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투철한 직업의식과 자존심을 모르는 걸까. 무디어진 윤리의식으로 좋은 게 좋다 식의 자기 독선에 빠져 애써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면서 받는 금품과 향응 속에 언론인 스스로 자기비하의 길을 걷고 있다.” (1989년 1월20일자 기자협회보 우리의 주장 가운데)

30년 전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한 슬픈 현실이다. 앞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수년 전 김영란법 도입 당시 “직업적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각성이 이어질 때 김영란법은 성공할 수 있다”고 적었다. ‘박수환 문자’ 관련 보도량을 보면 많은 언론인들이 벌써 칼럼에 담겨있던 시대적 ‘절박함’을 잊어버린 것 같다.

뉴스타파 보도에 등장하는 언론인들은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2항 공정보도(우리는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 3항 품위유지(우리는 취재 보도의 과정에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거절한다)조항을 위반했다.

조선일보는 송희영 사태 이후 2017년 12월 노사 공동으로 조선일보 윤리규범을 만들었다. 당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단 ‘1등 신문’을 자부하는 조선일보부터 이번 보도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으로 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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