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의정활동으로 사익을 추구한 의혹이 줄줄이 제기된 가운데 ‘이해충돌 방지’ 법제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 가족·지인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을 공직자 이해충돌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뒤, 한국당 의원들의 이해충돌 정황까지 터져 나오면서 국면이 전환된 양상이다. 여야를 막론한 의원들이 이해충돌 방지법안 발의에 나섰지만, 한국당은 관련 논란들을 ‘물타기’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현행법상 공직자 이해충돌 금지 조항은 공직자윤리법(제2조2항)에 명시돼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고 추상적인 선언 수준이란 지적이 이어져 왔다. 앞서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초안에는 공직자 등 이해충돌방지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초안 심의 과정에서 19대 국회는 ‘적용 대상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위헌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해당 내용을 제외하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반쪽짜리’ 부정청탁금지법을 보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발빠르게 관련 개정안들을 발의했다. 신창현 의원은 30일 부정청탁금지법 이름을 ‘부정청탁·금품등 수수의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으로 바꾸고 공직자와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 수행 및 외부활동 금지, 위반 시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처벌규정 신설 등을 담은 부정청탁금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박영선 의원은 같은 날 국회의원 상임위원회 활동이나 예산안·법안 심사에서의 이해충돌 상황을 방지하는 취지의 공직자윤리법과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공무원이 바로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경우 3년 동안 기존 업무 관련 상임위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국회법 개정안은 상임위원이 본인이나 배우자, 친족 등과 관련된 예산안·법안 심사 시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같은 당 표창원 의원은 이날 국회의원 윤리규범을 법제화하고, 의정활동 감시 기구로 ‘국회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국회윤리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며 초안을 공개했다. 표 의원은 “국회윤리법 제정안 초안에 관한 어떠한 의견이라도 듣겠다”며 “리플, 멘션, 메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은 지난 1일 이른바 ‘손혜원 방지 2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상임위원이 직무 관련 영리행위나 사적 이익 추구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국회법 개정안’과, 본인이나 직계존·비속 내지 특수관계자 등이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위반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국정감사 또는 국정조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이다. 정동영 대표를 비롯해 민주평화당 의원 15명이 공동 발의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고(故) 노회찬 의원이 발의하려 했던 김영란법 개정안을 수정·보완해 조만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바른미래당은 채이배 의원이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손혜원 의원 의혹 제기에 가장 열을 올렸던 자유한국당은 유일하게 이해충돌 방지 법제화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당 의원들을 향한 이해충돌 의혹을 ‘물타기’로 규정했다. 표창원 의원이 ‘이익충돌 전수 조사’를 요구한 지난달 28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40년 전 유산으로 (부동산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가족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는 예결위 간사를, 각각 이해충돌로 몰아붙여 손혜원 의원 직권 남용을 두둔하고 있다”며 “권력형 비리를 물타기로 일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해충돌 의혹 당사자인 송언석 의원을 “깨끗한 물”이라 표현하며 두둔했다. 지난달 29일 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송언석 의원이 “손혜원 의원이 특검을 받는다면 저도 똑같이 특검을 받겠다”고 주장한 한편, 나 원내대표는 “깨끗한 물인 송언석 의원과 오염된 기름은 결코 안 섞일 것이고 그 본질은 국민들도 아실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한국당을 향해 ‘자당 의원 지키기’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정의당 상무위원회에서 “손혜원 의원 국정조사를 수용하면 이해충돌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한국당의 속셈은 무엇인가 사안의 성격이 같은데 누구는 국정조사고 누구는 전수조사”인가라며 “결국 수용이 불가능한 조건을 걸어 자당 소속의원을 지키겠다는 속내가 뻔하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떠들썩하게 전수조사하자는 변죽만 울리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해충돌 기준을 마련하고 법제화부터 해야 한다”며 “기준 마련을 위한 현황 조사는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당 의원들, 가족운영 대학 및 상가 특혜 노렸나

한국당 의원들의 이해충돌 의혹은 각각 가족과 연관된 사학, 상가 건물 등에 혜택이 될 수 있는 예산안이나 정책 등을 추진한 정황이 핵심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부산 사상) 의원은 친형이 총장으로 있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요구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이원회에서 장 의원은 교육부 차관에게 ‘역량강화대학’ 지원 강화 방안을 촉구했고, 이후 관련 예산이 4억원가량 늘었다. 지원 대상에는 장 의원 형 장제국씨가 총장인 동서대학교가 포함돼 있다. 장 의원은 언론에 전체 지방대학을 위한 일이었으며 개인적으로 동서대와 관련한 부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당 ‘손혜원랜드 게이트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소속 송언석 의원(경북 김천)은 본인이 ‘제2의 대전역’으로 만들겠다며 지원해 온 김천역 맞은편 4층짜리 상가 건물 지분을 본인과 부친 명의로 소유한 사실이 확인됐다. 송 의원은 과거 기획재정부 차관 시절부터 의원 재직 시기에 걸쳐 김천역 중심의 남부내륙철도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은 최근 예비타당성 면제 대사상으로 선정됐다. 송 의원은 해당 건물은 수십년 전부터 부친이 소유해왔다며 사익 추구 의혹을 부인했다.

이장우 의원(대전 동구)이 배우자 명의로 상가를 사들인 지역은 국비 투입 사업지로 선정됐다. 지난 2017년 4월 대전 동구 대전역 인근에 배우자 명의로 11억5000만원 상당의 지상 3층짜리 상가를 매입했는데 5개월 뒤 이 일대가 ‘대전역-옛 충남도청 중앙로 프로젝트’ 사업지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83억원에 이르는 해당 지역 예산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 측은 지역 낙후로 인한 예산 확보 차원이라며 이해충돌은 오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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