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방영된 JTBC 드라마 ‘미스함무라비’ 보조출연자들이 9개월 째 밀린 출연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가 미성년자인데다 출연 시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부모동의 없이 야간노동을 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4월12일 인천 부평구 예림학교에서 미스함무라비 촬영이 진행됐다. 6월5일 방영된 6회자 촬영분이었다. 주연들의 고교 시절 회상 씬으로 배우 고아라씨가 강당 무대에서 피아노 공연을 하는 것이 주였다. 객석을 채울 관객이 필요했다. 10~20대 보조출연자 76명이 자리를 채웠다.

근무시간은 13~16시간, 오전 11시나 오후 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했다. 통상 보조출연 기준으로 일당은 약 14만원이 나왔다. 그러나 76명 모두 4개월이 지날 때까지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이 중 최소 40여명은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체불된 것으로 확인됐다.

▲ 사진=JTBC
▲ 사진=JTBC

▲ 2018년 6월5일 방영된 JTBC 드라마 '미스함무라비' 갈무리. 이 장면에 출연한 보조출연자 상당수가 9개월이 지나도록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 2018년 6월5일 방영된 JTBC 드라마 '미스함무라비' 갈무리. 이 장면에 출연한 보조출연자 상당수가 9개월이 지나도록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상당수가 10대 미성년자였고 초등학생도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출연자 A씨는 “원래 밤 10시 전에 마친다 들었지만 새벽 3시30분에야 다들 집에 갈 수 있었다. 부모님들은 저녁부터 전화를 해 찾았고 한 아이는 전화가 계속 와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는 곳도 화성, 용인, 수원 등 경기도부터 원주, 양주, 청주 등 강원도·충청도까지 다양했다. 서울로 들어와 첫 차를 기다리거나 수만원에 달하는 택시비를 써야 했다.

이들은 출연료, 노동시간 등도 미리 전달받지 못했다. 근로계약서나 부모동의서도 쓰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만 15세 미만은 원칙적으로 근로자로 쓸 수 없고 만 18세 미만을 쓸 때도 부모동의서를 사업장에 갖춰야 한다. 특히 만 18세 미만을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사이 야간근로를 시킬 땐 명시적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부실한 아역 출연 중개업체의 문제이자 근로감독관의 수수방관 결과라 입을 모은다. 제때 출연료를 정산 못할 만큼 재무상태나 업무역량이 부실한 업체들이 하청에 재하청을 주면서 문제가 장기화됐단 지적이다.

이 사건 보조출연은 3·4차 협력업체가 모집했다. ‘방송사(JTBC)→외주제작사(스튜디오앤뉴)→1차 에이전시(엔터테인먼트 업체)→2차 에이전시→3차 에이전시’ 사슬에서 2·3차 에이전시가 맡은 것. 외주제작사가 보조출연 모집·관리만 떼어 내 1차 A업체에 맡기고, A업체는 다시 B업체에 외주를 준 식이다. 수수료는 각 10~30% 정도다.

그런데 A업체는 드라마가 끝난 7월 말까지도 B업체에 일체 출연료를 주지 않았다. 상황을 JTBC가 파악하자 A업체는 7월 말 약 1388만원을 B업체에 입금했다. B업체가 책정했던 1500만원보다 적었다. B업체엔 미스함무라비 전부터 A업체가 미지급한 다른 드라마 출연비가 밀려있었다. 상황을 아는 한 관계자는 “이전 체불부터 차례로 해결하고 나니 미스함무라비 출연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B업체는 정산 도중 8월에 폐업했다. B업체는 또 다른 법적 다툼에 휘말려 통장이 가압류돼 입·출금도 묶였다. 임금체불은 경영진이 사비를 들여서 해결할 수 있으나 경영진 간 불화 등 문제로 방치돼왔다.

▲ 대다수가 10대인 '4월12일 미스함무라비 촬영' 보조출연자들은 이날 새벽 3시 넘어서 귀가했다.
▲ 대다수가 10대인 '4월12일 미스함무라비 촬영' 보조출연자들은 이날 새벽 3시 넘어서 귀가했다.

보조출연자 36명은 지난해 9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접수했으나 조사 결과는 감감 무소식이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A업체는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지난 1월부터 홈페이지 공지를 걸고 출연료를 받지 못한 출연자들에게 연락을 달라며 수습에 나섰다. 책임소재를 두고 두 업체 입장은 갈린다. A업체는 “이미 B업체에 전액 지급했다. B업체 문제로 생긴 일이지만 도의적인 책임으로 수습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B업체는 이전부터 A업체로부터 충분한 출연료를 제때 받지 못했고, 미스함무라비 건도 전액을 받지 못했단 입장이다.

한 보조출연 에이전시 관계자는 “제작사가 제작비를 아끼려고 보조출연 전문업체가 아닌 곳에 맡기는 것도 문제다. 엔터테인먼트는 단역, 조연 말고 보조출연은 큰 도움이 안되니 다시 재하청을 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일부 엔터테인먼트는 미성년 보조출연 경우 아예 초등학생 3만원, 중학생 5만원, 고등학생 6만원 등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을 책정해 재하청을 준다”고 말했다.

제작사 스튜디오앤뉴 측은 “문제를 알게 된 후 A업체와 즉각 논의해 수습에 나섰다.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여겨 A업체가 지급능력이 없다면 우리라도 지급하려고 준비했다”며 “B업체에 재하청을 준 건 늦게 알았다. 제작사 쪽에서 세밀하게 확인했어야 했다. (미성년 야간근로도) 우리가 신경써야 할 부분으로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JTBC 관계자는 미성년자 야간근로와 관련 “가이드라인과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방송사로서 책임을 느낀다. 방송사가 같이 개입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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