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은 웃고, 시민은 울다

20년 넘게 전자신문에서 IT산업을 취재해온 이은용 기자는 ‘뉴스타파’로 옮겨 5년째 같은 영역을 취재하고 있다. 이은용 기자가 2011년 12월 첫 방송을 시작한 4개 종편을 파헤쳐 책 한 권을 상재한다.

‘종편 타파’란 가제가 붙은 이 책은 ‘종편 웃고 시민 울다’라는 부제를 달고 보름쯤 뒤 세상에 나온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5·18 때 북한군 개입 같은 오보·막말·편파로 시민들 귀를 어지럽힌 종편이 세상에 어떻게 나와, 어찌 컸는지 되돌아보려고 썼다”고 했다. 종편은 태생이 ‘한나라당 국회 날치기’여서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억지로 태어난 종편은 MB정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가 아기 품듯 보살펴 키웠다. 이런 지원 덕분에 종편은 7년만에 지상파 SBS를 누를 만한 덩치를 키웠다.

▲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뉴스타파
▲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뉴스타파

 

종편, 탄생·성장의 10년사 총정리

종합편성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줄여서 ‘종편’은 프로그램 공급자인데 KBS MBC, SBS처럼 보도·교양·오락을 다 다루기에 ‘종합편성’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2011년 12월 종편 넷이 첫 방송을 시작한 뒤로 7년이 흘렀다. 한두 종편은 군복 입고 태극기 든채 서울시청과 광화문을 누비는 분들의 귀엔 쏙쏙 박히되 근거가 흐릿한 방송으로 세상을 비튼다. 특히 1980년 5·18 광주항쟁 때 북한군이 광주에 내려왔다고 방송한 게 본보기. 공적 책임을 지는 방송이 아무렇게 혀를 놀려 시민을 울리고 있다.

숫자 ‘397’. 2017년말 기준으로 한국의 TV방송 채널 수다. 시청점유율이 0%인 채널도 22개나 있다. KBS 등 271개 방송사업자가 397개 TV방송을 전국 2100만 가구에 보낸다.

한국 TV 역사는 1961년 KBS, 1964년 TBC(동양방송), 1969년 MBC가 문을 열어 1991년까지 3개가 전부였다. 중간에 1980년 11월 TBC가 문 닫고 KBS2로 갈아탔지만 여전히 3개였다. 1991년 11월 EBS가 개국하고 한 달 뒤 SBS가 개국하면서 5개로 늘었다.

방송, 2000년대 이미 포화상태였지만 ‘풍요 속 빈곤’

1995년 48개 케이블(종합유선방송사업자, SO)과 24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가 생기면서 시청자 선택의 폭은 크게 늘었다. 여기에 2002년 130개 채널을 가진 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가 생겨 채널 수는 더욱 불었다.

2000년대 들어 방송 채널은 포화상태였다. 늘어난 채널 수와 달리 방송 프로그램은 늘 모자라 MBC ‘무한도전’이나 KBS ‘1박2일’ 같은 인기 프로그램은 여기저기서 다시 방송됐다. 채널 수에 걸맞는 프로그램을 생산하지 못해 볼 만한 프로는 물릴만큼 재방송 해대는 통에 시청자들은 풍요 속의 빈곤에 빠졌다.

이런 시기에 2008년 정권교체로 MB정부가 들어섰다. 대통령 형의 친구로 MB의 정치멘토였던 최시중은 첫 국가정보원장 하마평에 올랐다. 예상을 깨고 그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그만큼 MB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최시중의 방통위가 처음 한 건 정연주 KBS 사장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방통위원을 제편으로 갈아치웠다. 다음 목표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해 조중동 방송을 만들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009년 1월 방송법을 바꿔 규제를 느슨하게 하면 “생산유발효과 2조9000억원, 취업유발효과 2만1400명”을 낳는다고 군불을 지폈다. 6개월 뒤 2009년 7월22일 정부는 국회 미디어법 날치기로 뜻을 이뤘다. 그 끝은 ‘종편’허가였다.

방송채널이 포화 상태인데도 왜 종편을 밀어붙였을까. 저자는 ‘정치 잇속’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권은 자기 말, 잘 듣는 방송이 필요했다.

최시중 방통위원회가 2010년 12월31일 종편 넷을 선정했을 때 전문가 대부분은 한계에 봉착한 방송시장 때문에 종편 가운데 한 둘만 남고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실제 방송광고는 2011년 3조 7343억원에서 2017년 3조1650억원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종편은 모두 살아남았다. 이유는 뭘까·

종편, 최시중의 살뜰한 특혜 속에 급성장

종편이 시장논리와 무관하게 모두 살아남은 건 최시중 방통위원회의 살뜰한 종편 보살핌과 광고 이외의 정치적 변수, 즉 특혜 때문이다. 최시중은 2011년 6월3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종편이란 아기를 낳았는데 걸음마 할 때까지 보살펴야 한다”고 했다. 최시중은 먼저 종편에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KOBACO)를 거치지 않고 직접 광고영업을 하게 해줬다. 종편은 광고액의 13~16%에 달하는 수수료를 안 내도 됐다.

둘째, 종편을 의무송출채널로 정해줬다. 민영방송사를 공영방송처럼 우대해주는 보살핌이었다. 최근 이효성 방통위가 ‘종편 의무송출’을 없앨지 고민하지만, 이젠 특혜를 거둬도 사업자가 종편을 쉽게 빼긴 어려운 지경에 놓였다.

셋째, 15~20번 황금채널 배정이었다. 오랫동안 5~13번 지상파 채널에 익숙한 시청자는 바로 옆에 연결된 종편 채널을 쉽게 택한다. 채널 번호는 PP가 SO나 IPTV사업자와 의논해서 정할 일인데도 방통위는 살뜰하게 챙겼다.

넷째, 지상파는 전 방송시간의 80%를 국내에서 만든 프로그램으로 채워야 하는데 종편은 그 절반인 40%만 채워도 되도록 했다. 다섯째 지상파는 중간광고를 못하는데 종편은 가능토록 했다. 여섯째 종편은 4년 동안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을 한 푼도 안 내도 되도록 했다. 종편은 2016년에야 방발기금을 조금씩 내지만, 오랜기간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역방송보다 더 적은 비율만 낸다.

이것 말고도 종편 특혜는 더 있다. 경기도 고양의 방송지원센터 ‘빛마루’는 제작시설이 부족한 종편 JTBC의 사설 스튜디오로 전락했다. 2013년 12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5년 동안 빛마루 스튜디오 이용점유율은 JTBC가 38.55%를 차지해 1위였다. 2018년(1~11월)만 놓고보면 JTBC 이용점유율은 42.36%로 더 높다. 2013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4년간 빛마루 스튜디오 이용점유율은 JTBC 등 대기업이 70.7%를 차지했다. 애초 빛마루는 중소 PP와 독립 영상제작사를 위해 만들었는데 설립 취지와 정반대로 흘러갔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해 3월 설립 취지대로 중소 PP의 빛마루 이용 활성화 방안 마련을 지시했지만 나아진 건 없다. 빛마루 방송지원센터 짓는데 방통위 1104억원, 문체부 1172억원 등 모두 2276억원의 세금이 들어갔는데 JTBC 한 방송사의 스튜디오로 전락한 셈이다.

▲ 최성준 전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뉴스타파
▲ 최성준 전 방송통신위원장. 사진=뉴스타파

 

무능 또는 무책임한 방통위 핵심 공무원들

저자는 최시중 방통위 이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지금까지 방통위 공무원들의 줄 서기 문화도 비판했다. 종편 산파 역할을 했던 김준상 전 방송정책국장이 대구에서 고교를 나오고 최시중 전 위원장의 서울대 정치학과 후배였다. 방통위 방송정책국장과 방송기반국장 등 주요 보직자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사례도 지적했다. 동아일보가 수년째 채널A 지분을 방송법 상한 30%을 넘겨 소유하고, 종편미디어렙 소유지분을 대기업이나 소유하지 못할 기업까지 갖고 있는데도 방통위는 몰랐거나 묵인했다.

그 덕에 2017년말 기준 한국의 397개 TV채널 가운데 JTBC(9.453%)와 TV조선(8.886%) 시청점유율은 SBS(8.661%) 점유율보다 높아졌다. 종편은 개국 6년만에 지상파를 앞지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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