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했지만 유포는 계속됐습니다. 국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름 없는 추모제가  지난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촛불을 든 200여 명이 모였다. 불법촬영과 동영상 무단 유포로 피해당한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이 ‘죽음의 카르텔’을 무너뜨리겠다며 만든 자리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은 구조적으로 타살됐다. 

이날 추모제는 녹색당, 불꽃페미액션, 페미당 창당모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이 주관했다. 이들은 몰래 찍고 보고 유통하는 모든 가해자와 그들을 방관하는 사회구조를 ’죽음의 카르텔’이라 명명하며 이날 추모제를 진행했다.

▲ 30일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이름없는 추모제’. 사진=이소현 대학생 기자
▲ 30일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이름없는 추모제’. 사진=이소현 대학생 기자

살풀이춤으로 시작된 추모제에서는 여성 활동가들이 피해자 경험을 대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피해자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주최 측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하는 추모제여도 행여나 고인 분들께 누가 되면 안 되니까 많이 걱정하고 논의하면서 준비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추모제 현장에서는 사진 촬영을 원치 않는 참석자들에게 ‘No photo’라 적힌 초록색 스티커를 나눠 주기도 했다.

대독은 안소정 경기도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았다. 안 위원장은 “처음 웹하드에 퍼져 있는 영상을 보고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심리적 불안과 충격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피해자 사연으로 입을 열었다. 해당 피해자는 “사이버 수사팀에 신고해도 본인이 나온 영상물과 주소, 영상 유포자, 영상 내용까지 모두 캡처해서 자료로 제출하라 요구했다”면서 미흡한 법적 규제를 비판했다. 

유포 영상을 상업수단으로 이용하는 웹하드 업체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다수 업체는 삭제를 요구해도 “원천적 동영상 삭제는 자기들이 소개하는 필터링 업체를 통해서 하라”며 도리어 피해자들에게 거액의 비용처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포자에 대한 제재는 영구 정지나 강제 탈퇴가 아닌 ‘일주일 정도 업로드를 정지하는 것뿐’이었다.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은 이날 “한평생 국가가 여성에게 행했던 폭력을 책임지기 위해 활동하고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긴 시간 싸워 오신 김복동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라며 애도한 뒤 “국가폭력의 내용과 대응이 동일한 것은 시대를 이어 똑같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있다”면서 “국가는 피해자에게 ‘피해자스럽게’ 조용히 하라고 요구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날 주최측은 웹하드가 불법 콘텐츠를 유통하며 돈을 벌어들이는 동안 방송통신위원회가 범행을 방조했고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방통위가 웹하드를 현재까지 어떻게 관리 감독해왔는지 정리된 자료를 공개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별도 기구를 설치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요구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이날 추모제 마지막 순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법 촬영 피해자를 곁에서 지켜본 친구의 낭독이었다. “피해자 A가 죽은 날 방에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했다가 다시 살아보려고 되풀이한 흔적들이 있었다. 나는 A가 그 날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해 5월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죽임당하고 그날 마지막 숨이 끊어졌을 뿐이다….”

행사에서 발언자 대부분은 발언 도중 눈물을 보였고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해온 글을 차분히 낭독했다. 참여자들은 숙연한 모습으로 2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시위 현장에는 남성 참여자도 3분의 1가량 있었다. 추모제에는 참여자들이 가져온 꽃과 촛불, 추모 글이 적힌 종이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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