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20년째 동결된 임금 올려달라는 제화공이 민주노총 가입했다고 ‘민노총 생긴뒤 구두공장 줄폐업’이란 기사를 썼다. 동아일보는 31일 6면에 ‘민노총지부 생긴뒤 공임비 투쟁… 부담 못견딘 구두공장 줄폐업’이란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제화업체가 몰려 있는 성수동 현장을 찾아간 르포 기사 형식이었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공임비 인상은 지난해 4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제화업체 탠디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제화공들이 민노총 제화지부를 결성해 파업을 벌린게 계기가 됐다”며 민주노총에 화살을 돌렸다. 동아일보는 제화공들에게 주는 공임비의 급격한 인상해 지난해 12월28일 폐업한 구두 브랜드 미소페 하청업체 한 사장(64)을 만나 인터뷰했다. 동아일보는 하청업체 사장의 입을 빌어 “지난해부터 시작된 급격한 공임비 인상이 폐업의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급격한 공임비 인상의 배후엔 ‘민노총 제화지부’가 있다고 전했다.

▲ 31일자 동아일보 6면.
▲ 31일자 동아일보 6면.

또 동아일보는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제화공의 공임비를 올려 달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며 역시 기승전-최저임금 논리를 되풀이했다. 동아일보는 이런 이유로 성수동 일대엔 “2017년 400여 곳이던 제조공장이 1년새 250여 곳으로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흔히 ‘객공’으로 불리는 제화공은 특수고용직의 일종인 소사장제로 고용돼 있으며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편 동아일보는 “제화공은 오랜 기간 저임금 노동을 하며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공임비 인상을 비롯해 4대 보험, 퇴직금 지급 등 제화공의 권리가 보호받는 조치들이 이제라도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한 제화공의 얘기를 전했지만 이는 제목 어디에도 반영하지 않았다.

동아일보 보도 가운데 하청업체 대표들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사실 빼고는 대부분 제화업계의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 동아일보가 말하는 △급격한 공임 인상 △공임 인상 때문에 하청업체 폐업 속출 △제화공은 특수고용직이라 최저임금 적용 안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급격한 공임 인상은 제화 역사를 20년만 추적해도 말이 안 된다. IMF 구제금융 이전 90년대 중반 제화공의 한 켤레당 공임은 6000원이었다. IMF가 터지자 500원을 깎아 5500원인채로 20년간 그대로 유지돼 왔다. 물가와 임금인상 등을 고려하면 엄청난 삭감이었다. 지난해 제화공들은 ‘공임 3000원 인상’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낸 뒤 성수동 일대엔 1500원을 인상해 켤레당 7000원이 됐다. 결국 20년전 6000원에서 고작 1000원 오른 셈이다. 이마저 물가를 감안하면 동결이 맞다.

▲ 지난 2018년 5월31일자 한국일보.
▲ 지난 2018년 5월31일자 한국일보.

공임비 인상 때문에 하청업체 폐업이 속출한다는 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표면적 사실만 담았다. 제화공이 소사장제 형태의 특수고용직이 된 것도 150년 제화 역사에서 최근 20여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제화공은 가죽이 있는 구두 윗부분을 만드는 ‘갑피’와 굽을 만드는 ‘저부’로 나뉜다. 판매가 20만원인 수제화 한 결레를 만들면 갑피와 저부를 담당하는 제화공이 지난해까지 공임으로 5500원씩 받았다. 이들의 하루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시급 6100원 꼴로 지난해 최저임금 7530원을 밑돌았다. 공임이 7000원으로 올랐지만 여전히 올해 최저임금 8350원에 못 미친다.

하청업체 폐업은 구두 한 켤레를 놓고 메이저 제화회사가 가져가는 몫이 너무 많아서 생긴 일이지, 저임금 해소를 요구하는 제화공 탓이 아니다.

제화공이 최저임금 적용을 안 받는 특수고용직이란 주장은 과연 맞는 말일까. IMF 이전 제화공들은 제회업체나 하청업체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서울고등법원은 2017년 1월25일 탠디 하청 제화공 9명이 낸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이들이 비록 형식적으론 독립된 사업자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임금을 목적으로 탠디에 종속돼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각각 1152~4598만원씩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들이 개인사업자이지만 7~14년간 탠디와 일하면서 탠디가 지정한 공장에 나와 매일 출퇴근했고 제3자의 구두 작업을 한 적이 일절 없어 탠디와 근로제 관계의 계속성과 전속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해당 판결은 탠디도 받아들여 대법원 상고없이 확정됐다.

결국 제화공이 원래부터 개인사업자가 아니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탠디 하청 제화공들이 지난해 4~5월 파업에 들어갔을 때 잠시 여론이 반짝 제화공의 처지를 돌아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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