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가 김경수 경남도시자의 실형선고를 가리켜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댓글/추천 올리기에 대해 컴퓨터업무방해죄를 적용한 사례들이 있지만 내가 아는 한 모두 벌금형 정도였다”며 “재판이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부가 밝힌 ‘여론조작’ 프레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김경수 지사를 가리켜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등 국민이 직접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당 후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왜곡된 여론을 형성한 것이기에 위법성이 중대하다”며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죄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온라인상에서 마치 실제 이용자가 기사 댓글에 공감 클릭한 것처럼 허위 정보 등을 입력해서 포털사이트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고 온라인 상 투명정보 교환과 건전한 온라인 여론형성이라는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박경신 교수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네이버의 업무에 대한 손해가 정녕 징역2년 어치가 되는가. 네이버의 실명정책을 어겼다고 한들 그건 네이버의 비즈니스 모델일 뿐 국가가 개입해서 형사 처벌로 보호할 일인가”라고 되물은 뒤 “네이버가 각자 스스로 쓴 댓글을 통해 여론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도 네이버의 소망일 뿐 이용자들이 곧이곧대로 안 따라 주면 범죄가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30일 실형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된 모습. ⓒ연합뉴스
▲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30일 실형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된 모습. ⓒ연합뉴스
▲ 드루킹 김동원씨. ⓒ연합뉴스
▲ 드루킹 김동원씨. ⓒ연합뉴스
박 교수는 드루킹의 행동에도 “일일이 손으로 할 것을 자동화한 것뿐인데 이걸 갑자기 범죄로 몰아치는 것은 신뢰이익에 어긋난다. OECD국가 중 매크로 어뷰징을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가 있으면 제발 알려 달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번 사건이 국가정보원의 댓글조작과는 차원이 다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정원 사건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공무원은 종인데 종이 주인을 오도하려고 해서 범죄가 된 것이다”라고 지적한 뒤 “국민들이 합법적인 도구를 이용해서 열심히 의사표시를 한 걸 가지고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리로 박 교수는 드루킹측이 매크로를 활용한 것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박 교수는 “네이버게시판은 이용자들이 댓글을 달고 추천하라고 만들어놓았고 드루킹은 댓글을 달고 추천하는데 더 열심히 하려고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더니 업무방해죄로 처벌되고 있다. 애시 당초 알고리즘의 기능방식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므로 원래 컴퓨터업무방해죄의 입법목표였던 해킹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래도 건전한 여론형성을 방해한 것은 사실 아닐까. 이에 박 교수는 “네이버 댓글 양상이 언제부터 여론이 되었는가?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그냥 그건 여론이 되고 거기서 다른 사람이 안 쓰는 도구를 써서 주의를 끌면 여론훼손죄가 되는가? 미네르바 처벌과 비슷한 동어반복의 냄새가 난다”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던 미네르바 구속 사건을 언급하며 “미네르바가 팔로워들이 수십만 명이었고 이 수십만 명이 몰리는 걸 보고 여론을 호도한다며 난리쳐서 미네르바가 처벌을 당했다”고 주장한 뒤 “근대국가에서 여론훼손죄는 이정현씨가 최근 유죄판결을 받은 방송법 위반과 같은 것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매크로 어뷰징은 확성기 같은 것…크게 떠들었다고 형사처벌?

앞서 박 교수는 지난해 4월 시사인 기고글에서 “컴퓨터의 힘을 빌려 표현의 자유 행사를 자동화했다고 범죄가 된다면, 여론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익명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것 자체가 범죄”라며 드루킹의 형사처벌에도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박 교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어뷰징은 회의 시간에 확성기를 이용해 크게 떠들어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히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니, 나쁜 일은 맞다. 그런데 회의 시간에 큰 소리를 내거나 여러 사람이 말한 것처럼 했다고 형사처벌을 한다? 담벼락에 여러 사람이 낙서한 것처럼 글씨체, 분필 색깔, 낙관을 바꿔가며 낙서를 한다면 불법일까”라고 되물으며 과도한 형사처벌을 우려했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댓글실명제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익명에 의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2010년 ‘공익을 해하기 위해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는 허위사실유포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처벌 범위가 불명확해서였다. 이 같은 결정의 전제는 타인에게 명백한 해가 없는 말을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순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2011년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선거운동’을 전면 허용했다.

통계사이트 워드미터가 2017년 10월30일부터 2018년 4월23일(오전10시)까지 6개월 간 네이버 댓글 작성자와 작성 글을 분석한 결과 댓글 상위 작성자 100명이 단 댓글 수는 23만487건으로, 상위 100개 계정 당 평균 댓글 개수는 2304.8개였다. 같은 기간 계정 1개당 평균 댓글 수는 2.58개였다. 상위 100개 계정의 댓글 중 56.6%는 정치 기사에 집중됐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드루킹 사태 당시 네이버에 댓글을 다는 사람은 전체 계정의 0.9%에 불과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뉴스 댓글 운영 현황과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드루킹이 감옥에 있던 2018년 9월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 간 네이버 ‘댓글 많은 기사’ 1480건에 달린 총 179만1847개의 댓글을 전수 분석한 결과, 상위 작성자 ID의 작성 댓글 수는 7196개, 4901개, 4562개 순으로 나타났다. 드루킹이 감옥에 갔지만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장 많은 댓글을 단 ID love****의 경우 하루 평균 1028개의 댓글을 달았다. 한 사람이 수작업으로 이렇게 많은 댓글을 다는 게 가능할까. 이것은 사람의 문제인가 네이버의 문제인가. love****는 댓글을 많이 달며 자신의 주장을 과도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인가. 만약 아니라면, 자신의 주장을 확산시키기 위해 매크로라는 기술을 사용한 일반시민의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인가.

박 교수는 드루킹 사태와 관련해 “네이버가 매크로 프로그램 포착 기술을 개발하고 휴면 계정 관리를 더 잘하면 될 일”이라며 재판부가 실형선고에서 전제한 일종의 ‘여론조작죄’가 그 자체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김경수 지사 실형선고에서 언론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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