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이 청년정당으로 재창당을 공언했다. 바른미래당 청년대안정당비전위원회(청년비전위) 위원장에 임명된 하태경 의원은 ‘워마드를 해부한다’는 주제로 연속 토론회 문을 열었다. 하 의원은 워마드가 청년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사회악이라며 이를 척결하겠다고 밝혀 왔다. 청년정당의 첫 목표는 왜 워마드였을까.

하태경 의원은 지난 23일 국회 토론회에서 “20~30세대 가장 큰 고민과 논란거리가 워마드이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물밑에 있다”며 “청년정당을 표방하는 바른미래당이 앞장서서 워마드 문제를 전면 해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극우 커뮤니티’로 표현되는 일간베스트(일베)보다 워마드 해악이 더 크다고 했다. 그는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워마드가 훨씬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라며 우리 사회에 위협이 될 소지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본인이 앞장선 덕에 일베는 이미 ‘불구(장애인 비하 표현)’ 상태가 됐다고도 덧붙였다.

▲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워마드를 해부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바른미래당 이준석 최고위원(왼쪽)과 하태경 최고위원. 사진=유튜브 '하태경TV' 갈무리
▲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워마드를 해부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바른미래당 이준석 최고위원(왼쪽)과 하태경 최고위원. 사진=유튜브 '하태경TV' 갈무리

국회 토론회에서 중점으로 다룬 워마드 해악은 디지털 성범죄였다. 토론회에 초청된 한 남성은 워마드 커뮤니티에 본인 얼굴 사진을 합성한 나체·성교 이미지가 공유되고 살해 협박 당하는 등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앞서 홍익대 누드 크로키 모델을 불법촬영한 워마드 회원은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호주 아동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성폭행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 회원은 호주 경찰에 체포됐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실재한다. 여성주의라는 워마드 태동의 의미도 불법적인 게시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문제는 디지털 성범죄를 논하면서 일베 위험성은 외면한 대목이다. 불과 지난 연말 이른바 ‘여친인증’ 불법촬영 게시물을 올린 일베 회원 15명이 입건됐고, 그 가운데 6명은 실제 여자친구 신체 사진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노인 여성을 성매수해 그 신체를 불법촬영한 사건이 있었고, 지난 수년 간 가족·친척 여성 신체를 불법촬영한 ‘인증’ 게시물들이 수없이 올라왔다. 하 의원 표현을 빌려 단지 ‘찌질함’, ‘열등감’ 발로라 보기엔 심각한 범죄들이다.

물론 워마드 문제가 단지 디지털 성범죄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일례로 생물학적 여성만을 여성으로 인정하는 워마드의 기조가 성소수자 혐오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워마드 전쟁’ 뿐 아니라 성평등 정당을 표방한 바른미래당이 혐오 척결에 앞장선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바른미래당 인사들은 ‘진정한 성평등 사회’를 외칠 뿐 소수자 혐오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 차별금지법 제정에 입장이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 토론회에서 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워마드를 비판하는 여성들이 왜 여기 오는 대신 소수인종·장애인·빈곤층·성소수자 여성들 인권까지 아우르는 ‘제3의 물결’,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포럼에서 페미니스트 인권 강연을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느냐”며 “차별 행위, 혐오에 대한 일률 처벌보다 교육이 실질적으로 차별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바른미래당에서는 어떤 의원들이 입법 절차를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바른미래당은 이 질문을 해소하지 못했다.

▲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청년비전위원회 주최로 '워마드를 해부한다'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청년비전위원회 주최로 '워마드를 해부한다'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바른미래당이 내놓은 해법은 이른바 ‘워마드 폐쇄법’이다. 하 의원은 “워마드는 성차별주의라는 이념에 기반하고 성차별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이론으로 무장해있다”며 “가칭 워마드 폐쇄법안으로 특정 이론과 이를 정당화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폐쇄하도록 하는 법안을 조만간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입법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특정 이념을 통제하겠다는 목적은 사상·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워마드 ‘이념’ 규정도 자의적이다. 하 의원은 워마드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미러링’을 모종의 이념이라 칭한 바 있다. 그렇다면 미러링 방식으로 성차별 문제를 공론화한 이들 모두 통제 대상인가. 바른미래당은 워마드 비판이 여성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는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바른미래당이 내건 목표는 명확하다. 문재인 정부로부터 이탈한 청년층을 20대 안팎의 남성으로 상정하고 이들의 지지율을 모으겠다는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일부 청년 남성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극단적 커뮤니티의 남성 비하 표현에 위협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청년세대의 아픔과 고민을 ‘워마드 퇴출’로 치환하는 정당이 실질적 청년 권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까.

서울 여의도역 '손다방 캠페인'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청년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바른미래당 제공
서울 여의도역 '손다방 캠페인'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청년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바른미래당 제공
바른미래당 청년 정책 기조가 ‘반 워마드’ 뿐은 아닐 것이다. 실제 정당 차원에서 국회의원 세비를 모아 청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청년층을 주 대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홍보를 위한 ‘손다방’을 운영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취업, 주거, 복지 등 청년이 고통을 호소하는 문제는 셀 수 없이 많다. 청년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바른미래당 ‘진정성’이 이념 갈등 프레임에 매몰되지는 않길 바란다.바른미래당은 ‘워마드와 전쟁’을 선포한 뒤 오히려 지지율이 하락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21~25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8일 발표한 정당 지지율(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바른정당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첫주 이후 두달만에 5%대로 하락했다. 리얼미터는 “20대와 학생층에서 상당 폭 (지지층이) 이탈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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