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PD가 정글로 가고, 다큐멘터리 PD가 수개월 간 고생해서 찍은 바닷속 영상도 유튜브 세계에선 삽으로 땅을 파고, 곱창을 쌓아놓고 ‘먹방’하는 것보다 인기가 없다.

이는 기존에 방송사에서 잘 훈련된 PD들이 배운 영상 문법이 아니다. 언론은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로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 25일 서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2019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GNI) 서울 포럼에서 두 번째 키노트 스피치를 한 김현정 CBS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PD)는 플랫폼이 범람하는 아노미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라디오 방송 기반인 CBS ‘김현정의 뉴스쇼’는 지난해 11월부터 정규 방송 시간이 끝나고도 패널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유튜브 방송 ‘김현정의 댓꿀쇼’를 시작했다.

▲ 리처드 깅그라스(Richard Gingras·왼쪽에서 두 번째) 구글 뉴스 총괄 부사장이 지난 25일 서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2019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Google News Initiative) 서울 포럼’ 키노트 스피커로 나와 GNI의 비전과 전략을 설명한 후 질의응답과 토론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깅그라스 부사장, 케이트 베도 GNI 아태지역 리드, 정김경숙 구글코리아 전무. 사진=이소현 대학생 기자
리처드 깅그라스(Richard Gingras·왼쪽에서 두 번째) 구글 뉴스 총괄 부사장이 지난 25일 서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2019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Google News Initiative) 서울 포럼’ 키노트 스피커로 나와 GNI의 비전과 전략을 설명한 후 질의응답과 토론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깅그라스 부사장, 케이트 베도 GNI 아태지역 리드, 정김경숙 구글코리아 전무. 사진=이소현 대학생 기자
본방송에서 시간 제약으로 전하지 못한 청취자 의견들을 유튜브를 통해 소개하면서 청취자들과 직접 소통도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해 지금은 본방송과 ‘댓꿀쇼’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댓꿀쇼’ 동시접속자 수가 5000명이 넘으면 김현정 앵커가 ‘물안개’ 노래를 부르겠다는 공약도 달성돼 지난 14일 방송되기도 했다.

김 앵커는 새로운 플랫폼에선 새로운 문법으로의 유연한 적응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수용자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저널리즘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앵커는 “언론은 신뢰를 얻기까지 참 어렵다. 하지만 잃는 건 한순간”이라며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제 사람들은 그 기사나 콘텐츠를 전하는 매체와 언론인밖에 믿지 못하게 됐다. 결국 믿음을 주는 미디어가 이길 수밖에 없다. 내가 그 미디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언론인은 가져야 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뉴스의 신뢰 회복과 저널리즘 생태계’라는 주제로 한국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아무도 아무를 믿지 않는 현실에서 언론은 독자를 믿고 타락한 권력을 고발해야 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언론은 공중에게 누구를 믿으면 안 되는지 알려주는 사회적 신뢰의 제도”라며 “권력을 고발하면 시민들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언론은 누가 타락했는지, 누가 위험한지, 누가 괴물인지 얘기해 줘야 하고 제도적 악행을 이야기로 풀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왼쪽부터) 지난 25일 GNI 서울 포럼에서 키노트 스피치를 한 김현정 CBS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와 ‘허위 조작 정보와 공론장의 위기’를 주제로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박권일 시사평론가, 김준일 뉴스톱 대표. 사진=이소현 대학생 기자
(왼쪽부터) 지난 25일 GNI 서울 포럼에서 키노트 스피치를 한 김현정 CBS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와 ‘허위 조작 정보와 공론장의 위기’를 주제로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박권일 시사평론가, 김준일 뉴스톱 대표. 사진=이소현 대학생 기자
허위 조작 정보와 공론장의 위기와 관련한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박권일 시사평론가는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있다는 얘기를 누구나 하는데 생산자 문제뿐 아니라 소비자 문제도 깊이 있게 봐야 한다 생각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박 평론가는 “사림들이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아 게이트 키핑(gate keeping·뉴스 결정권자의 취사선택)이 없는 루머를 믿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음모론이 과잉으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미디어는 어떤 식으로 대처할 것인지 같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디지털 플랫폼이 공존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걷잡을 수 없이 변하는 독자의 반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 언론인도 기존의 제작 관행과 감수성을 되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독자를 믿는 건 좋은데 변덕스러운 것도 알아야 한다. 최근 SBS의 손혜원 사건 보도가 삼성 부동산 보도와 무엇이 다른지, 왜 사람들이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이제 뉴스 수용자들은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꼬투리잡기식 언론보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언론은 ‘한 명을 잡으면 날려야 한다’는 게 언론사의 힘을 보여주는 권력의 작동 방식이어서 그런 식으로 보도했는데 이제 그렇지 않게 된 것”이라며 “페미니즘 관련 기사나 ‘미투(Me Too)’ 보도도 마찬가지로 특히 구독자 기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언론일수록 독자가 항상 변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감수성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 평론가는 가짜뉴스(fake news) 혹은 허위조작정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3가지 기준도 제시했다. 가짜뉴스의 규제나 제한이 가능하더라도 △국가가 직접 나서 자발적 제재는 최대한 피하고 △공인과 권력자를 향한 가짜뉴스 규제는 최대한 헐겁게 △공인이 아닌 소수자, 약자에 대한 가짜뉴스는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거나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 평론가는 “국가나 정부가 직접 자발적으로 가짜뉴스 대응에 나서는 건 적극적으로 피해야 할 가장 큰 전제”라며 “공인은 공적인 활동 관련 현격한 권한과 큰 사회적 책임 때문에 비판을 최대한 보장하고 명예훼손 소송도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짜뉴스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시민이 스스로 담론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유통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너무 소극적인 방법으로 보이고, 음모론이 지나치게 과잉된 상황에선 언론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탐사보도와 깊이 있는 보도를 통해 어떻게 독자를 끌어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상규 셜록 대표가 지난 25일 GNI 서울 포럼 연사로 나와 ‘탐사보도 독립언론 셜록의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소현 대학생 기자
박상규 셜록 대표가 지난 25일 GNI 서울 포럼 연사로 나와 ‘탐사보도 독립언론 셜록의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소현 대학생 기자
구글 측은 현재 유튜브의 동영상 추천 기능이 개인화된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의 편향적인 생각과 쏠림 현상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에 “유튜브는 추천되는 영상을 포함해 플랫폼에 공신력 있는 콘텐츠가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처드 깅그라스 구글 뉴스 총괄 부사장은 “그런 위험 있다는 걸 우리도 인지하고 있어 구글 뉴스든 유튜브든 맞춤 뉴스 제공이 극단적인 콘텐츠가 퍼지는 경로가 되길 원치 않고,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더 주자는 판단은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깅그라스 부사장은 “시민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콘텐츠 정보를 제공하는 게 구글의 역할”이라며 “허위 정보임을 알 수 있도록 팩트체크하는 쪽으로 유튜브에서도 동영상의 맥락을 짚어주는 우량 언론사 콘텐츠를 함께 추천하는 방향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 측은 불법 콘텐츠나 혐오 표현과 관련해서도 해당 국가에서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 한도 내에서 검색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식별 알고리즘 기술도 계속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불법·허위 정보가 확산하는 것을 막고 악의적인 정보 생산자를 차단해 이용자에게 더 유효하고 권위 있는 진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구글 검색을 신뢰하게 만드는 기반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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