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그 친구를 삼십대 초반이 되어 만났다. 교류 없이 지낸 십여 년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물었다. 친구는 대학의 디자인과를 졸업했고, 그 이후 국내 유수 자동차 업체의 디자인팀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친구의 집에 놀러가면 자동차 사진들로 도배된 그의 방을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었다. “꿈을 이뤘구나! 어때?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니 좋아?”라고 별 생각 없이 던진 이 질문에 친구는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나둘 설명했다.

“지난 한 달간 온전히 쉰 날은 이틀뿐이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회사에 있는 게 일상적이고, 그렇다고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도 않아. 이렇게 저녁에 약속을 잡은 것도 오랜만이지만 무엇보다 하루라도 마음 편히 좀 쉬고 싶다.”

“일은 어때? 그래도 디자인팀은 분위기가 좀 다르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친구는 “전형적인 한국 기업이랑 똑같아. 같은 보고여도 결재 라인 올라갈 때마다 지시 사항 달라지고, 결국 최종 결과물은 처음 기획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우린 권한도 없고 그냥 부속품이야”라고 토로했다.

▲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사진=JTBC
▲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사진=JTBC

최근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면서 오륙년 전 자동차 디자이너가 된 친구를 만났던 자리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학벌에 집착하고 특정 직업을 욕망하느라 일그러진 삶과 교육의 현장을 실감나게 그렸다.

스카이캐슬 열풍에서 언론은 ‘사교육계 억대 연봉의 코디’라는 기존의 문법대로 뉴스를 뽑아내고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진정한 강점은 사건성이 약한 문제적 삶도 정면으로 다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엔 비슷한 또래를 만나는 자리마다 위계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업 문화에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쉽게 접했고, 특히 여성의 경우 지금의 직장에서 자신의 10년 뒤를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그 당시 필자는 ‘언론이 세상을 보는 창문이라는데, 왜 나는 이 이야기들을 기사로 다루지 못할까’로 고뇌했다. 취재를 하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의문은 더 커져갔다. 

자영업자 규모가 600만 명에 달한다는데 작은 카페나 빵집을 운영하는 점주와 일하는 직원들이 ‘오늘 나에게 의미 있는 소식’이라고 생각할 만한 뉴스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거리에서 마주치는 폐지 줍는 어르신, 뷰티용품점 앞에서 호객하는 직원이나, 식당이나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들이 ‘내 이야기’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가 언론 기사에 있을까. 이런 관점으로 언론이 생산하는 기사들을 바라봤을 때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스카이캐슬은 언론과는 다른 문법으로 교육 현장의 여러 단면들을 드러냈다. 물론 극히 일부의 단면을 지나치게 과장한 측면도 있지만, 학벌이 계급 재생산의 중요한 기제이고 이를 위해 사교육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주면서 한국 사회와 교육이 어떤 상황인지를 논의하는 공론장이 마련되고 있다.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이런 상황이 어색하진 않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다룬 기사들보다 공지영 작가의 르포 ‘의자놀이’가 해당 사안에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영화 ‘도가니’가 화제가 되자 광주 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숫자가 늘고 있고 처우가 열악하단 사실,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가 굉장히 지난하다는 것을 어떤 저널리즘의 시도보다 웹툰 ‘미생’과 ‘송곳’이 널리 알렸다.

결국 이런 고민은 두 가지 문제의식으로 요약된다. 언론의 취재 영역이 우리 사회를 총체적으로 포괄하면서 각 영역에 적절한 비중으로 취재 자원이 배분되고 있을까. 또한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사안을 다뤄야 중요한 문제를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공감할까.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선 일하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일례로 교육 담당 기자라면 교육부의 관료들보다 학교 현장의 교사와 학생들을 더 자주 만나는 것이 시작일 수 있다. 또한 어느 분야든 기사가 될 만한 사건을 넘어 일상화된 문제적 삶을 보여주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작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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