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난 28일 MBC 정상화위원회 활동 일부를 제한하는 가처분을 인용했다. 서울서부지법 제21민사부는 이날 MBC 정상화위가 조사 대상자에게 출석, 답변, 자료제출을 요구할 권한과 조사 대상자가 이에 응해야 할 의무 등을 정지했다. 조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한 인사에 대한 징계 요구권도 제한됐다.

MBC 정상화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MBC에서 일어난 방송 독립성 침해 사안 등을 조사하는 노사 합의 기구다. 이번 효력정지 가처분은 제3노조 ‘MBC노동조합’ 소속인 허무호 전 부국장과 오정환 전 보도본부장이 지난해 10월 신청했다. 허 전 부국장은 정상화위 조사를 여러 차례 받았고 정상화위는 허 전 부국장을 인사위에 회부하기로 했었다. 오 전 본부장도 정상화위의 출석 요구를 받았다. 과거 경영진 체제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던 두 사람은 MBC 공정성을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원이 이번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MBC 과거사 청산 작업에 일부 차질이 예상된다.

▲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법원 결정문을 보면, 법원은 조사 대상자에 대한 MBC 정상화위의 출석·답변·자료제출·징계 요구 권한을 명시한 운영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이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1월 제정된 정상화위의 운영규정이 종전 취업규칙과 비교하면,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저하하거나 복무 규율을 강화하는 취업규칙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자 동의’가 필요하다.

먼저 법원은 언론노조 MBC본부의 동의에 관해 “MBC가 정상화위 규정을 제정하면서 제1노조(언론노조 MBC본부·과반 노조)와 사전에 협의했으며 제1노조 내부에서 공식적 의견 수렴 절차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 과반수 노조의 유효한 동의 자체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또 “과반수 노조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동의권을 갖는다 해도 동의권을 행사할 때는 소수 노조 또는 그 조합원 간에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해서는 안 된다”며 “소수 노조에 절차적 참여 권리가 부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테면 정상화위에 회사와 제1노조를 대표하는 인사들은 참여하고 있지만 제2·3노조(제2노조는 ‘MBC 공정방송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의 정상화위 참여가 완전히 배제됐다는 지적이다. 법원은 “MBC는 운영규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제2·3노조에 의견을 구하거나 아무 협의를 하지 않았다”며 “제2·3노조의 절차 참여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는데 오로지 제1노조 동의만으로 정상화위 운영규정이 제2·3노조 소속 근로자에게 효력이 미친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이 전체 근로자 가운데 64%가 가입한 과반 노조의 민주적 의견 수렴 절차를 무시한 처사라는 것이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29일 “정상화위 운영규정은 어느 노조 소속인지와 전혀 무관하게 MBC 소속 모든 근로자들에게 적용된다”며 “정상화위 조사 대상이 된 당시 간부들은 상당수가 세월호 사건, 대통령 선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에서 편파 왜곡 보도를 저지르고 MBC 방송 강령과 편성 규약, 보도 준칙을 위반한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당시 편파 왜곡 보도를 주도한 간부들은 이후 MBC 정상화를 위한 작업이 시작되자 3노조에 대거 가입했다”며 “애초부터 2·3노조 소속이어서 조사 대상이 된 것이 아니다. 편파 왜곡 보도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된 것이다. 재판부 결정은 인과 관계를 뒤집어 자의적으로 왜곡한 잘못된 판단이다. 2·3노조 소속 근로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방송 장악과 편파 왜곡 보도를 저지른 사람들이 2·3노조로 모인 것”이라고 밝혔다.

MBC 사측도 “정상화위는 노사 양측이 합의해 출범한 공식 기구”라며 “그 합의를 바탕으로 사용자 측과 소속 노동자 과반수 노조가 각각 2인씩 추천한 4인으로 구성됐다. 법원은 이런 사정에도 과반 노조의 유효한 동의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며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고 지적했다. 사측은 “노사 합의로 설치된 공식기구인 정상화위가 활동 만료 시한까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해당 가처분 결정에 이의 신청을 하는 등 법적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법원 결정문을 보면 지난해 1월 기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은 1187명으로 총 근로자 대비 64%다. 제2노조인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에는 13명(0.7%)이, 제3노조인 MBC노동조합에는 63명(3.5%)이 소속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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