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를 선고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같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법원이 정반대의 판결을 내려 화제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은 지난해 8월 안 전 지사와 같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혐의로 조아무개 전 평택대 명예총장에게 징역 8개월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조 전 총장은 2016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학교 직원 A씨를 2차례 성추행한 혐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다. 항소심 재판부도 지난달 같은 선고를 내렸다.

피해자 A씨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여년 동안 이 대학에 근무하면서 조 전 총장으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했다. 검찰은 이 가운데 공소시효가 남아있고 범행 날짜와 장소가 특정되는 2건만 기소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이 판결을 ‘2018년 여성인권 보장을 위한 디딤돌 판결’로 뽑았다. 박윤숙 성폭력위기센터 소장은 “‘위력’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한 판결”이라며 “이 판결을 안 전 지사 사건 1심 재판부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징역 8개월 등을 선고받은 전 평택대 명예총장. 사진=유튜브 갈무리
▲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징역 8개월 등을 선고받은 전 평택대 명예총장. 사진=유튜브 갈무리

법원, ‘성인지 감수성’ 개념을 판결로 강조

두 판결문엔 토씨까지 같은 문장이 나온다. 대법원 판례를 들어 ‘성인지 감수성’ 개념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평택지원은 조 전 총장 성추행 사건에서 이 법리를 실제 적용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일부 사실을 혼돈했지만 핵심 피해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한 데 집중했다. 반면 안 전 지사 사건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출장 당시 가져간 평상복, 간음 당시 입었던 의상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쟁점 삼은 것과 대조된다. 

두 재판부, ‘피해자다움’도 서로 달리 해석

두 사건 재판에선 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했다’는 가해자측 주장이 등장했다. 평택지원은 조 전 총장의 이런 주장을 인용하지 않았지만, 안 전 지사 1심 재판부는 이를 핵심으로 인용했다.

조 전 총장 측은 “피해자는 피해를 당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밝은 모습이었고 피고인을 칭찬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평택지원은 “성폭력 당하는 고통보다 일자리‧사회관계망 등 더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을까봐 두려워서, 또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떨치려고 정상적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더욱 애쓸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안 전 지사 사건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폭력 뒤 일을 정상 수행하고, 3자에게 안 전 지사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점을 들며 성폭력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진=노컷뉴스
▲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진=노컷뉴스

위력은 존재만으로도 행사된다

안 전 지사 1심 재판부는 ‘위력이 존재하나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재판부가 위력 개념을 법리 그대로 해석했다면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평택지원은 ‘위력’의 개념을 “폭행·협박뿐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것까지 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평택지원은 무형의 위력에 눌려 피해 순간 거부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경우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봤다. 즉 ‘명시적 동의가 없다면 합의된 성관계가 아니다’라고 봤다. 

반면 안 전 지사 사건 재판부는 ‘유형의 위력’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김지은씨 측은 고개를 가로젓거나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김씨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절의사 표현이었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위력적 분위기를 만들었거나 물리력을 행사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의 근거로 삼았다.

안희정 재판부는 “성적 자기결정권 왜 안 지켰나”를 피해자에 물어

평택지원은 “가해자가 위력을 이용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명시했다. 반면 안 전 지사 사건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피해자가 보호받아야 할 인격권이지, 거부당하거나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고 지켜야 할 것은 아니다. 

한편 안 전 지사 사건은 다음달 1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은 지난 9일 결심 공판에서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