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삼단논법(암적존재-암세포-격리필요)으로 쓴 구속영장청구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노동자들 구속영장청구서를 받아본 변호인들은 손을 부르르 떨고 몸서리를 쳤다. 불구속수사 원칙은 언감생심이었다. 구속영장청구서는 노조 혐오와 이명박·박근혜 정부나 재벌 비호 의지로 가득 찼다. 그래도 그 보수정부 아래 경찰과 검찰조차도 자신들 속내를 노골적으로 문자화하진 않았다.

지난 10일 새벽 3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을 구속하려고 법원에 접수한 구속영장청구서는 법률적 삼단논법이 아니라 정치적 삼단논법으로 이뤄져 있었다. 민주노총은 암적인 존재다(대전제) - 민주노총 조합원은 암세포다(소전제) - 암세포는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결론). 경찰과 검찰은 암세포 감별사가 돼 있었다.

검·경은 대통령-정부-정치권이 민주노총에 선입관을 가졌다고 인정

구속영장 신청서를 검찰에 낸 경찰은 사회적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정치권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했고, 검찰은 경찰의 신청을 존중해 그대로 제출하면서 걸러내지 못했을 뿐이라며 민주노총에 선입관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검찰은 구속영장청구서에 민주노총에 대한 선입관이 들어간 표현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자신들 입장은 아니라고 부인한 셈이다. 그런데 문제가 된 단락의 문장은 분명하다. 지시하는 자와 그 생각, 지시의 내용, 지시 받는 자가 명확히 구분돼 있다.

▲ 지난 18일 청와대 앞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다 연행되는 김수억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장(앞줄 오른쪽 두번째).  사진=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 지난 18일 청와대 앞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다 연행되는 김수억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장(앞줄 오른쪽 두번째). 사진=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이에 대해서 대통령과 정부 및 정치권에서도 (…)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민주노총은 대한민국의 법치와 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 (…) 민노총이기 때문에 손을 못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 경찰도 집회와 시위를 보장하되 그것이 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지도하고 단속해달라. 민주노총의 불법행위에 대해 앞으로 엄단하도록 검찰에 지시하는 등 노동계의 불법행위에 대해 앞으로 엄단한 처벌을 지시 당부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019-134호 구속영장청구서의 구속을 필요로 하는 이유 소결 부분

경찰과 검찰은 구속영장청구서가 논란이 되자 자신들이 아니라 대통령-정부-정치권이 민주노총에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자신들은 대통령-정부-정치권이 합의한 대전제(암적 존재)에 따라 소전제(암세포)와 결론(격리 필요성)이라는 논리를 전개한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구속영장청구서에서 말의 출처를 불분명하게 한 것은 대통령-정부-정치권이 민주노총에 공통의 대전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사법부에 보여주려고 의도한 전략이었다.

형사소송법과 법원의 구속 여부 판단 기준

형사소송법과 사법연수원의 형사실무강의라는 책에 나오는 구속 여부 판단 기준은 아래와 같다. 형사소송법이 정한 구속사유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이에 더해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어야 할 때다.

구속사유를 심사할 때는 범죄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을 위해할 우려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이는 독립적인 구속사유가 아니다. 범죄의 중대성은 구속사유 중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라는 사유를 심사하는 경우에 고려할 사항이다. 재범 위험성은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라는 사유를 심사할 때 굳이 연결해 심사할 수는 있으나, 장래의 일에 불확실한 예측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구속사유 심사 때 특정유형의 범죄에는 일반범죄와 다르게 형사정책적 필요성을 심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인신구속의 대원칙인 비례의 원칙에 비추어볼 때 법률에 명시되지도 않은 형사정책적 필요성을 고려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노련한 전문가는 쉽고 편한 방법을 알기에 원칙을 무시하기 쉽다. 서울중앙지검과 종로경찰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나고 촉망받는 검사와 경찰관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이들은 수십여 년간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 노동자, 대학생 관련사건을 다루면서 축적한 기술을 가졌다. 권력 동향에 민감해 권력이 원하는 것을 가장 빨리 파악하고 움직이는 곳이기도 하다. 노련한 전문가들이 공안의 유혹에 빠지면서 무죄추정과 불구속 수사 원칙을 거추장스럽게 느낀다면 기본을 가르쳐주는 교과서로 돌아가야 한다.

기아차 비정규직 김수억 구속영장청구서의 문제점

김수억 구속영장청구서는 정치적 삼단논법(암적 존재-암세포-격리 필요성)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단 기준에 맞지 않는 주장들로 가득하다. 도망할 염려는 종전 생활 중심지에서 이탈해 그 소재지가 불분명해 수사기관이 소환하기 불가능하거나 그럴 염려가 있는 때를 뜻하는데, 김수억은 이미 지난해 11월과 12월에 세 차례나 남대문경찰서에 출석해 관련사건 조사를 마쳤다. 수사일정 조율을 위해 담당 경찰과 수시로 연락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수억은 2015년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등을 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서 지난 7일 수원지검에 출석해 고발인 조사도 받았고, 이 사건의 수사지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담당검사를 직무유기로 고발한 사건에서도 지난 10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도저히 도망할 우려 있는 사람의 태도로 볼 수 없다. 그런데도 검·경은 이런 사정들을 모두 생략한 채 박근혜 정부 시절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 등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던 사건을 상기시키며 김수억도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경은 김수억의 집회시위 참여 전력과 비정규직 공동투쟁에서의 역할로 봤을 때, 집회·시위대 선두에 서서 불법행위를 저지를 위험성이 크다며 재범 위험성을 주장했다. 교과서는 재범의 위험성은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와 연결시켜서 고려할 수 있으나 예측이 틀린 경우가 많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정책적 필요성은 심사시 고려해선 안된다고 봤는데, 검·경은 비정규직 문제해결과 故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제할 정책적 필요 때문에 도망할 염려가 없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재범 위험성을 무리하게 예측했다.

노조 적대화와 길들이기 전략, 그리고 촛불집회에 공안적 해석

검·경이 대통령-정부-정치권의 말을 임의로 해석해 지시와 당부로 포장했을까. 그렇지 않다. 민주노총 혐오발언을 한 임종석, 하태경, 김부겸은 학생운동, 통일운동, 노동운동을 하면서 체포, 구속된 경험이 있는 정치인들이다. 공안기관이 정권의 안전을 위한 충성경쟁과 자신들 조직강화를 위해 어떻게 해왔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들이다. 정권과 정치권이 인권과 노동존중을 강조해도 정부기관이 인권과 노동존중을 이해하고 법집행을 할까말까한 판에, 노조혐오라니! 문재인 정부의 검·경이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그러려면 당장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검·경은 구속영장청구서에서 “소위 ‘촛불집회’로 대표되는 평화로운 집회 문화”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했다.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던 촛불집회와 그 촛불집회를 예비했던 수많은 집회를 가로막기 위해 광장에 차벽을 설치하고 물대포를 쏘고 체포·구속했던 집단이 누구였던가. 대통령-정부-정치권으로부터 지시와 당부를 받았다는 검·경의 태도를 교정하지 않는 것은 촛불집회를 공안적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의 용인이고 역사에 대한 범죄다.

노동존중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의 검·경이 작성한 구속영장청구서에 노조혐오 표현이 등장한 것은 단순한 실수나 해프닝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지지율 하락과 보수세력의 공세 속에서 취하는 노조 적대화와 길들이기라는 양면 전략에 정세파악 빠른 공안기관이 적극 호응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노조혐오 표현의 최종책임자는 검·경이 민주노총에 엄중한 처벌을 지시받고 당부받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 암세포 감별사처럼 행동하게 만든 대통령-정부-정치권이다. 직접 지시와 당부를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지 마라. 잘못된 시그널을 줬으면 교정해야 한다.

민주정부를 자처한다면, 촛불집회를 노조할 권리 앞에서 멈춰 세우려 해서는 안된다. 촛불집회와 노조혐오를 수렴시키려는 시도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제라도 노조혐오가 아니라 노조할 권리에 분명한 시그널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촛불집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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