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은지 한 달이 다 됐지만, 아직도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한창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작년 대비 10.9% 오른 시급 8350원이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따질 때 주휴수당과 주휴시간이 포함되자 인상된 최저임금에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측과 주휴수당을 포함하지 않으면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은 무용지물이라는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지난해 25일 동아일보 기사 “30년 함께한 숙련기술자 내보내…정부 눈귀 있는지 묻고 싶어”는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 이 기사는 지난 2일 유시민 작가가 JTBC 뉴스룸 신년특집 대토론 ‘2019년, 한국 어디로 가나’에 출연해 “30년 숙련공이 최저임금도 못 받았다니 내가 다 눈물이 난다”라고 다시 언급해 재조명 받기도 했다.

기사에 소개된 김아무개씨는 서울 중랑구에서 대기업이 디자인한 의류의 봉제와 가공을 담당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를 운영한다. 45년간 봉제업에 종사한 김씨는 직원들 월급과 납품비를 맞추려고 가족 명의로 대출을 받고 사채까지 쓴 상태며 최근에는 개인파산까지 신청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직원 23명 가운데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은 30, 40년 호흡을 맞춰온 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며 현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또 오르면 도저히 월급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스포츠의류를 제작하는 또다른 김아무개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해 직원 20명 가운데 수십 년 경력의 재단사와 커팅사 4명을 내보냈다”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힘들어하는 사업주들 이야기는 연일 보도됐다. 조선일보는 지난 14일자 1면 “가족 같은 직원들 20년 만에 내보내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게 가장 두렵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선 연간 4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의류 회사의 대표 A씨도 최저임금 인상 부담으로 창업 후 첫 정리해고로 20여년 근무한 숙련공 30명을 내보냈다고 전했다. 봉제 노동자들은 이들 기사를 어떻게 바라볼까. 

봉제 노동자들 “일이 없는데 무슨 최저임금, 시장 상황 더 심각”

연일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워진 봉제시장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봉제 노동자들 이야기는 없었다. 정말로 최저임금이 문제일까? 미디어오늘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봉제 노동자 3명을 만났다. 


봉제업에서 일한지 33년 된 이정기씨는 보문동에서 아내와 함께 외주 하청을 받아 일한다. 홍은희씨는 숙녀복을, 박만복씨는 남성복 마무리 작업을 담당하는데 두 사람 모두 34년차 미싱사다. 세 사람은 봉제시장에서 만나 30년째 인연을 이어온 동료다. 

▲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봉제 노동자들(왼쪽부터 이정기,홍은희,박만복)
▲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봉제 노동자들(왼쪽부터 이정기,홍은희,박만복)

세 사람은 모두 입을 모아 “봉제시장이 어렵지만, 최저임금 때문에 어려운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정기씨는 “사업주들 사정은 이해한다. 누구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내가 화가 난 것은 전체 상황은 돌아보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30년 숙련공을 내보냈다고 기사화되는 것”이라며 동아일보 기사에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박만복씨는 최저임금 보도에 기자들이 왜 더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기사를 쓰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30년 넘은 숙련공이지만 받는 임금과 일한 시간을 계산해 보면 30년 동안 최저임금에 준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봉제시장 전체에 일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로 일감이 없어서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지 최저임금이 올라서 사람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 사람은 동대문과 인터넷에 물건을 납품하는 이른바 ‘시장’ 쪽에서 일하는 봉제 노동자다. 시장 쪽은 객공 시스템으로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받는 게 아니라 옷 한 장마다 공임을 계산하는 구조다. 이정기씨는 동아일보 기사에 나온 사업주들은 월급제로 운영되는 곳이기에 임금 체계에서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30년 숙련공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준다는 것은 그 정도로 낮은 임가공비를 받아온다는 뜻이다. 시장 쪽도 20년째 오르지 않는 공임이 문제인데 언론은 이걸 문제 삼아야지 최저임금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봉제시장이 어려운 이유는 뭘까? 세 사람은 현재 봉제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해외로 나가는 일감과 20년째 변함없는 공임을 들었다. 이씨는 현재 백화점, 인터넷, 홈쇼핑으로 유통되는 옷의 90%는 동남아에서 만든 옷이라고 했다. 모든 구매 통로들이 동남아에서 들어온 옷으로 팔리다 보니 얼마 남지 않은 일감 속에서 국내 업체들끼리 경쟁하면서 일감이 줄어들고 단가는 자꾸만 더 낮게 측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1999년에 남성 자켓 한 장을 7300원에 제작했는데 지금도 8500원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물가를 계산하면 단가가 크게 떨어진 셈이다. 2015년에는 가장 싼 남방 공임이었던 1100원으로 최근에도 작업한 적도 있다고 했다.

홍은희씨도 “1년에 6개월은 비수기로 거의 일이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일이 들어오면 무리해서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기씨도 “원래 시장 쪽은 명절 때부터 12월까지 성수기라고 했는데 올해는 일이 없어서 반 정도를 놀면서 보냈다. 그 정도로 일감이 많이 줄었다”고 보탰다.

박만복씨는 “요즘 일이 없어서 사장이 대출하거나 돈을 빌려서 월급주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사업주, 노동자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든 봉제시장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이정기씨도 “사업주가 놀고 있는 공장은 거의 없다. 재단하던 미싱을 하던 시약을 하든 어떤 일이든 하나씩은 맡아서 겨우겨우 공장을 운영 한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봉제노동자만 9만명 “30년 숙련공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봉제시장은 사양사업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러나 세 사람은 모두 봉제업이 사라질 리는 없다고 했다. 홍은희씨는 “동남아에서 많은 물량이 들어와도 메이드인 코리아를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봉제시장의 실력이 높다. 다만 아쉬운 건 점점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만복씨도 “우리 일은 로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원단에 따라 작업하는 것이 다 다를 만큼 섬세하다. 충분히 숙련공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일할 직업인데 계속 최저임금을 언급하는 게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정기씨는 현재 서울봉제인노조 지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봉제인노조는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직후 청계천 노동자들이 첫 노조를 만든 지 꼭 48년 만의 재출범이었다. 이정기씨는 봉제시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와 사업자, 서울시 등이 함께 대화를 시작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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