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동이 학대나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출생신고 의무 대상자를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은 24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가족관계등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명 ‘투명인간 방지법’이다. 

이찬열 의원 등은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죽은 뒤에야 존재가 밝혀진 이른바 ‘투명인간’ 아이들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출생신고 미비로 인해 예방접종 등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영아 유기, 불법·탈법적인 입양 등 아동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받는 실정”이라며 “뿐만 아니라 비혼·동거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이 늘어나면서 혼인 외 출생자가 증가함에 따라 출생 신고 시 혼인 중·혼인 외 출생 구별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최근 동아일보는 생후 2개월 만에 사망한 영아의 존재가 7년여 만에 확인된 사건을 보도했다. 아이는 아빠 김아무개씨의 잦은 폭행에 시달렸지만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병원에 데려갈 수 없었다. 2010년 아이를 떠나보낸 조씨는 지난 2017년 죄책감에 시달려 왔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지난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김씨를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 휴대전화에선 ‘시체 유기’를 검색한 사실이 확인됐다.

▲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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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출생신고는 부모의 의무다. 혼인 중 출생은 부 또는 모가, 혼인 외 출생은 모가 신고하도록 돼 있다. 지난 2016년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아동 복리가 위태롭게 될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검사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으나, 이는 아동이 발견됐을 경우 취하는 사후조치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개정안은 의사·조산사나 분만에 관여한 사람은 30일 이내에 출생증명서를 작성해 관할 지자체장에게 송부하도록 했다. 출생증명서를 받은 지자체장은 출생신고 여부를 확인한 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의무자에게 30일 이내 신고를 독촉하도록 통지해야 한다. 혼인 여부에 따른 신고의무자 구분은 없앴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에 대한 과태료는 현행 10만원 이하에서 20만원 이하로 상향 조정했다. 출생증명서를 송부하지 않은 의사·조산사 등 분만 관여자에게도 2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처벌 조항이 포함됐다.

출생신고 제도개선 필요성은 이미 수년 간 이어져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5년 아동인권 모니터링 결과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아동학대 위기에 놓인 사례들을 발견한 뒤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을 권고했다. 앞서 2011년 UN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에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권고했다. 2012년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와 UN 인권이사회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2017년 UN 사회권규약위원회도 동일한 권고를 했다.

유럽·영미권 국가들은 의료기관 등 제3자에게 출생 신고 또는 정보 제공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영국은 아동 출생 시 병원 등록시스템을 통해 의료보장번호가 발급된다. 미국의 상당수 주(state)와 캐나다는 병원 등 아등이 출생한 기관이 출생증명서를 지역신분등록담당관에게 제출하며, 담당관이 출생등록을 행한다. 호주 병원은 아동이 태어나면 출생 후 7일 이내에 담당공무원에게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 독일에선 양육권을 가진 부모와 더불어 출생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신분청에 출생을 신고해야 한다.

국회에도 이미 2개 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2017년 6월 자유한국당 함진규 의원안, 같은해 8월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안 등이다. ‘권미혁안’의 경우 분만에 관여한 의사·조산사 등이 지자체장이 아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출생 후 14일 이내 출생사실을 통보하도록 했다. 출생신고 기간 내 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관할 지자체장은 신고를 독촉하거나 직접 신고에 나서야 한다.

다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출산 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의료기관에서의 출산을 기피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 등이다. 

▲ 동아일보 1월23일자 1면(위)과 12면
▲ 동아일보 1월23일자 1면(위)과 12면

인권위는 지난 2017년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출생신고 제도개선 권고’ 결정문에서 “이러한 문제는 궁극적으로 이들의 임신, 출산, 양육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정책과 사회 인식개선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정책적 방안을 마련해 해결할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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