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는 계속해서 부인하는데도 언론은 거짓말하지 마라고 훈계하는 이상한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자 조선일보 “그렇게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라는 제목의 최보식 선임기자가 쓴 칼럼을 두고 한 말이다.

최보식 기자는 해당 칼럼에서 9·19 남북 군사 합의 후속 조치로 동‧서해 북방한계선 및 한강 하구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해병대가 반대 의견을 밝혔다는 조선일보 보도 이후 보수단체가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을 구국의 영웅으로 추켜세웠지만 정작 전진구 사령관은 부인하고 있다고 썼다.

최 기자는 “그(전진구 사령관)는 김포 해병사단을 방문해 ‘내가 전혀 언급한 바 없는 NLL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반대한다는 ’가짜 뉴스‘가 유포되고 있는데 절대 사실 아니다. 해병대는 남북 군사 합의를 적극 이행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토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부대 장병 훈시를 하는 형식이었지만 사실은 국방부와 청와대를 향해 들으라는 소리였다. 그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반대하지 않았다면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부하들의 눈을 보면서 그런 공개 부인을 하는 그가 놀라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기자는 “자기 예하 병력이 작전과 훈련을 할 수 없고 거기서 문제가 생기면 수도권이 뚫리게 되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내세우는 해병대 사령관이라니…. 그가 과연 누구를 위한 사령관인지 혼란스러웠다”며 “그와 함께 근무한 선배 예비역 장성은 ‘외압에 의해 자신의 뜻과 다르게 면피용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 논리로 그 고충을 백번 이해하려고 해도, 군(軍) 최고 지휘관은 재벌 회사의 봉급쟁이 사장과는 다르다”고 비난했다.

전진구 사령관은 공식석상에서 보수단체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 언론보도는 ‘가짜뉴스’라며 자신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최 기자는 전진구 사령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서 예비역 장성의 말을 빌려와 외압에 굴복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해버린 것이다.

전진구 사령관이 최보식 기자의 칼럼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우선 보수단체가 자신을 구국의 영웅으로 치켜세웠다고 보도한 매체가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4일자 기사에서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이 최근 일부 해병대 예비역들로부터 유례없는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일부는 전 사령관을 ‘구국(救國)의 영웅’이라고 표현했다. 해병대가 서해북방한계선(NLL)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반대하고 있다는 취지의 본지 보도가 나온 후 나타난 현상이다”라고 보도했다.

해병대 전우 전국총연맹이 기자회견을 통해 “해병대 사령관 전진구 중장은 불법 부당한 지시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정당 행위로서 이번 9·19 남북 군사합의서를 따를 수 없다고 선언했다”며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의 원초적 본분에 어긋나기 때문에 안보를 무너트리는 9·19 남북 군사합의서는 무효”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해병대사령관이 NLL 비행 금지 추진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식·비공식적으로 표명한 사실이 없다”는 해병대 관계자의 반론을 실어놓고 “실제로 해병대가 NLL 일대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반대했다는 본지 기사에는 해병대사령관 관련 내용은 없었다”고 썼다.

해병대가 비행금지설정에 반대했다는 조선일보 자사의 기사 때문에 보수단체가 전진구 사령관을 치켜세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면서도 해병대사령관 얘기를 하지 않았기에 진위 여부의 책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최보식 선임기자는 다시 한번 전진구 사령관을 불러세워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반대해 보수단체로부터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해서 전 사령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몰아가버린 것이다.

▲ 18일자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칼럼.
▲ 18일자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 칼럼.

최 기자는 “그가 말없이 전역서를 냈으면 비록 나라를 구하지는 못해도 전통 있는 조직의 명예는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전진구 사령관을 신념을 지키지 못한 군인이라고 비꼬았다.

국방부도 해병대도, 그리고 당사자인 진전구 사령관도 조선일보 보도 내용을 부인했지만 최보식 기자는 전진구 사령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부끄럽지 않느냐’는 훈계조의 기사를 쓴 것이다.

전진구 사령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최소한 그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특정 자리에서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반대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정황을 제시해야 한다.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만 가지고 기사를 쓴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수단체로부터 전진구 사령관이 구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과정을 추적해봐도 전 사령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해병대, 해군은 NLL 비행금지 사항은 이행하지 못하겠다”는 글귀 위에 전진구 사령관의 얼굴 사진을 합성한 게시물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최초 게시물을 올린 블로거는 지난 2017년 10월7일 전 사령관이 연평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는 뉴스 링크를 함께 걸었다. 하지만 부대 방문 장병 격려 자리에서 전진구 사령관이 한 말은 “만약 적이 도발한다면 과감하게 적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라”라는 내용뿐이다.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적 8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한 전진구 사령관의 발언을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발언 출처로 지목한 인터넷 게시글도 있다. 정작 그 자리에서 전진구 사령관이 발언한 내용은 “진정한 평화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지는 것이다. 해병대는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감히 넘보지 못할 강한 힘으로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켜나갈 것”이라는 원론적인 내용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최보식 기자의 논리에 따르면 ‘군인들은 당연히 남북군사합의에 반대하고 항의의 뜻으로 조용히 옷을 벗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정치권력에 알아서 기는 자존심 없는 정치군인’이 된다”며 “하지만 그것은 최보식 기자의 생각일 뿐이지 해병대 사령관이 사실관계조차 확정되지 않은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고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퇴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해병대 예비역’들이 정치논리에 해병대 사령관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면 해병대 사령관은 이를 적극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두고 자존심 없다고 하는 것은 그냥 해병대 사령관이 조선일보 마음대로 행동해 주지 않으니까 인신공격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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