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KBS 뉴스 좋았어.” “단독 기사 아주 좋았어.”

KBS 보도본부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KBS 기자들이 서로를 칭찬하고 평가하는 입말,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도 그리 생각할까. 보도 평가가 KBS 사옥에서만 맴도는 건 아닐까. KBS 팟캐스트·유튜브 콘텐츠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작진의 문제의식이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진행까지 하는 김기화 KBS 기자는 KBS 기사에 달린 댓글에 ‘가내 수공업’식으로 다시 댓글을 단다. 그 댓글 여론을 방송으로 가져와 신랄하게 자사 보도를 비평한다. 자아비판인 셈이다.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문제적’ 보도를 한 KBS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기존 KBS에서 볼 수 없던 콘텐츠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서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을 직접 만났다.

▲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유튜브 콘텐츠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KBS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왼쪽부터 홍성희, 김기화, 옥유정, 강병수 기자. 사진=‘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공
▲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유튜브 콘텐츠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KBS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왼쪽부터 홍성희, 김기화, 옥유정, 강병수 기자. 사진=‘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공
현재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김기화·홍성희·옥유정·강병수 기자가 진행하고 있다. 오귀나 KBS 라디오PD는 제작 총괄을 맡고 있다. 박은진 작가가 이를 뒷받침한다. 중간에 합류한 선상원 촬영기자는 유튜브를 만든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였나, 궁금했다.

옥 기자는 “지난해 파업이 끝나고 초여름 김기화 기자와 오 PD로부터 기획안을 받았다. 파업 끝나고 일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약속한 KBS 변화가 더디게 느껴졌던 찰나였다. ‘뉴스9’ 중심 제작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덥석 수락했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시청자들과 정말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기획·진행자인 김 기자는 “절박해서 시작했다. 2040세대는 TV 앞에서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다. 취재원이나 기자들은 서로들 ‘기사 잘봤다’고 말하지만 지금 시청자들은 어디에서 뉴스를 보도했는지 관심없다. 파업 당시 ‘뉴스9’ 중심 시스템을 변화시키겠다고 시청자들에게 약속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 모습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KBS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사진=‘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공
▲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KBS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사진=‘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공
“맨땅에 헤딩하는 마인드로 만든”(선상원 기자) 유튜브 콘텐츠 반응은 나쁘지 않다. 현재 유튜브 구독자 수는 8000여명. 당초 목표였던 1000명을 훌쩍 넘은 수치다. 지난 16일 최경영 KBS 기자가 출연한 방송분에는 댓글이 500개 이상 달렸다. 최 기자가 한국 언론이 쏟아내는 경제 보도의 편향성을 짚자 누리꾼들은 “기레기들이 재벌 걱정하니까 언론이 노예를 양성한다”, “이 방송 20분 보는 것이 9시뉴스 20번 보는 것보다 더 가치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반응은 다시 김 기자의 대댓글로 방송 소재가 된다. 

우스개 소리로 댓글 달다 건초염에 걸렸다는 김 기자는 “댓글은 소통하기 가장 좋은 도구다. 이른바 ‘보도하면 끝’인 시대는 지나갔다. KBS 보도를 바라보는 분들의 생각은 각기 다르다. 수신료를 받는 KBS 기자들은 마땅히 궁금한 것을 풀어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악플’이 반가웠던 건 아니다. 옥 기자는 “처음에는 인신공격성 악플에 잠도 안 왔다. 회사에서 잘리는 꿈도 꿨다.(웃음) 그러나 쓴 약이 몸에도 좋다는 생각이다.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다는 김기화 기자의 정신 건강이 우려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소통하면 댓글 다시는 분들도 변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우리가 잘못 방송했을 때 느낀 건, 사과는 진심을 담아서 빠르게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야 보는 분들이 진심을 느낀다. 예전에는 기자들이 사과하는 데 인색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잘못을 빠르고 정확하게 인정할수록 신뢰와 호감도는 높아진다. 댓글 다는 분들이 기자에게 보이는 혐오는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기자 집단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에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 반성한다. 기자 월급에는 욕먹는 값이 포함돼 있다. 다른 사람 인생을 비판하는 게 업이라서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시청자도 그에 맞는 호응을 해준다”고 말했다.

▲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KBS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사진=‘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공
▲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KBS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사진=‘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공
콘텐츠 성공에 회사는 ‘정규 편성’으로 응답했다.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내달 KBS 1라디오에 정규 편성될 전망이다. 매주 일요일 밤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앞서 업로드된 콘텐츠를 합쳐 재방송하는 식이다.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팀은 이마저도 유튜브 설문조사로 댓글 여론을 물었다. “방송 심의 때문에 눈치 보며 고치고 다듬는 방송보다 날것의 신선함이 가득한 방송을 계속 해달라”, “기자들 업무 환경을 위해서라면 찬성한다” 등 의견은 분분하다.

KBS 젊은 연차 기자들이 의기투합한 콘텐츠지만 ‘자발적 제작’이다보니 회사 차원의 지원은 아직 부족하다. 업무 마친 기자·PD들이 목요일 오후 10시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자발적으로 촬영한다. 옥 기자는 “선배들이 우리를 돕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 아직 어려워하는 면이 있다. 본업을 소홀히 하지 않길 바라는 분위기도 있는데 우리 본업이 무엇인가 자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오 PD는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가욋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라디오와 보도 협업은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잘돼야 질 좋은 유튜브 콘텐츠가 KBS에서 생산될 수 있다”고 했다. 선 기자도 “누군가는 시작했어야 할 일이었다. 내부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시도해 경직된 분위기를 깨봐야 미디어 환경이 얼마만큼 변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극단의 재미’를 추구하고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를 의미하는 신조어)을 한껏 뺀 방송이지만 마냥 가볍진 않다. 저널리즘 원칙은 고수한다. 김 기자는 “이른바 ‘개판 치는 콘텐츠’를 표방하지만 팩트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프로그램을 이끌 수 없다. 그래야 정파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KBS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사진=‘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공
▲ 지난해 8월 첫 선을 보인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KBS 기자들이 직접 출연해 취재 뒷이야기를 구독자들에게 전하고 댓글로 소통한다. 사진=‘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공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을 묻자 김 기자는 ‘너희 또 파업한다고 거리로 나오기만 해봐’를 꼽았다. KBS가 지난 세월 권력 편향 보도로 ‘사회적 흉기’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기도 했다. 김 기자는 “만화 슬램덩크 명대사를 인용하면 ‘이번엔 진짜라구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댓글 중에 ‘한 번 더 배신하면 얄짤없다’는 말씀이 있었다. 우리 출연진과 제작진은 진심이다. 진심을 담아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아군이니까 사격 중지를…(웃음)”이라고 전했다. 

선 기자는 “우리 방송이 KBS 신뢰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또 한국 언론 신뢰도도 함께 높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말했다.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의 클로징 멘트는 “KBS 뉴스 좋았어”다. 젊은 KBS 기자들이 KBS 변화를 이끌고 추동할지 그래서 KBS가 정말 좋아질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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