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유튜브 폭로 국면에서 한겨레가 시종일관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논란이 가라앉은 뒤에야 ‘뒷북 보도’를 했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왔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KT&G 사장 인사에 개입하고 적자 국채 추가 발행을 강요했다는 주장을 각각 지난해 12월29일과 30일 유튜브에서 꺼냈다. MBC는 지난 1일 신 전 사무관을 단독 인터뷰하기도 했다.

신 전 사무관 폭로의 진의와 의도를 의심하는 여론이 있었지만 전직 기재부 사무관 신분인데다 진술 내용이 주목할 만해 종합일간지는 모두 12월31일치 지면에서 신 전 사무관의 유튜브 방송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31일치에서 보도하지 않았다.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지부장 정남구)는 지난 17일 노보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한겨레신문지부는 “언론사 성향에 따라 보도 비중은 달랐지만 중도·진보 성향 신문들도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라는 전제를 달고 비교적 담백하게 폭로 내용을 기사로 옮겼다”며 “이날치 종합일간지 가운데 한겨레는 유일하게 신 전 사무관의 유튜브 폭로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신 한겨레는 2018년 12월31일 기재부가 신 전 사무관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다음날인 2019년 1월1일치 5면에 기사를 실었다.

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는 “신 전 사무관의 폭로 발생 당시 기본적인 주장 내용을 담은 스트레이트를 쓰지 않았던 탓에 이날(1월1일) 기사는 신 전 사무관의 주장(기사 분량의 절반가량)을 먼저 써준 뒤 기재부 설명을 붙이는 구성으로 작성됐다”며 “한겨레 독자 입장에서는 신 전 사무관이 유튜브 폭로를 한 지 2~3일 지나 그의 주장을 접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노보에 따르면, 한겨레 편집국의 한 조합원은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을 끄는 사건은 발생과 동시에 짧게라도 우선 스트레이트를 써줘야 한다”며 “사건이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실제 그렇게 되면 전개되는 상황을 언젠가는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주장에 불과하다면 주장 그대로 써주고 진위는 취재로 검증하는 과정을 보도하면 되지 않나. 기본을 왜 안 지키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3일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가 경찰에 발견됐다. 이어 그의 부모가 사과문을 발표하며 갈등이 봉합되는 국면이 만들어졌다. 논란은 다소 잠재워졌다. 노조는 지난 7일자 ‘신재민 논란 쟁점 뜯어보니’라는 이름으로 쟁점을 정리한 자사 보도가 타이밍을 놓쳤다는 판단이다.

노보를 보면 편집국의 한 조합원은 “정부·여당을 옹호하려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최소한 쟁점이 무엇이고 논란이 어떤 지점에 있는지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기본도 지키지 않고 기껏 쓴 기사도 지면에서 뺐다가 논란이 다 정리된 뒤 팩트체크로 기획하라며 뒷북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국 다른 조합원은 “최근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보면 현안에 대한 한겨레 보도가 힘이 빠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건이 발생하고 스트레이트 상황이 벌어질 때 현안을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한겨레 2019년 1월1일자 5면.
▲ 한겨레 2019년 1월1일자 5면.
노조는 이 밖에도 통계청의 소득격차 및 고용동향 발표 관련 보도에서 한겨레가 지나치게 이슈를 부풀리거나 축소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를 테면 정부·여당에 불리한 통계청의 ‘소득 양극화 2007년 이후 최악’ 발표의 경우 다른 언론사와 비교해 축소 보도했고, 취업자 수 증가폭이 호전된 지난해 11월 고용동향은 다른 언론사에 비해 크게 부각하고 정부·여당에 유리한 제목을 뽑았다는 주장이다. 편집국의 한 조합원은 “한국일보 정도의 균형 감각만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여당에 지나치게 저자세 아니냐는 노조 지적에 박용현 한겨레 편집국장은 노보 인터뷰에서 “우리는 MBC와 달리 여현호 전 한겨레 선임기자의 청와대 이직에 청와대 행태를 비판한 입장을 내고 지면에도 실었다”며 “정부·여당에 대해서도 비판할 대목을 비판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거대 양당의 부정적, 소극적 태도를 맹렬히 비판한 것도 우리였다”고 반박했다.

박 국장은 “우리가 어떤 이슈를 다른 언론사에 비해 더 많이 썼다고 해서 그것을 틀렸다고 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며 “어떤 사안의 보도 비중을 결정하는 것은 판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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