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궁지로 몰리고 있다. 지난 14일 검찰이 김성태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 딸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KT 본사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경찰은 17일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황 회장과 KT 전·현직 임원 7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황 회장 등은 상품권을 대량 구매 후 현금으로 바꾸는 이른바 ‘상품권 깡’ 수법으로 11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 99명에게 4억4190만원의 불법 정치후원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 횡령)를 받고 있다.
이들은 정치자금법상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후원금을 낼 수 없고, 1인당 국회의원 후원액 한도가 500만원이기 때문에 KT 임직원과 가족·지인 등 총 37명의 개인 명의를 이용하는 ‘쪼개기 후원’ 수법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후원 금액은 의원 한 명당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1400만원까지로,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간사 등은 최대 1000만원대 후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해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황 회장을 비롯해 KT 구현모 사장과 맹수호 전 사장, 최아무개 전 전무 등 3명에 대해 검찰에 신청한 구속영장이 조사 부족 등의 사유로 모두 기각되면서 구체적 대가성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99개 국회의원실 보좌관, 회계 책임자를 전수 조사했지만, 국회의원에 대한 직접 조사는 하지 못했다”며 “국회와 원활한 관계 유지를 위해 후원했다는 진술도 확보했지만, 대가성이 뚜렷하게 입증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황 회장 측은 경찰 조사에서 “국회 후원은 관행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그러한 내용을 보고받은 사실이나 기억도 없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 등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황 회장은 수사 과정에서 쪼개기 후원은 부하 직원들이 한 짓이며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며 “그는 이 수사를 대비하기 위해 유명 로펌에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지불했는데 그 비용을 회삿돈으로 지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의 낙하산인 황 회장은 통신시설 관리는 소홀히 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보전을 위해서는 온갖 불법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아 왔다”면서 “박근혜 국정농단 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이사회 승인도 없이 18억원을 갖다 바치고, 최순실 측근(이동수)을 임원으로 영입해 68억의 광고비를 몰아줬던 부역 행위는 박근혜 파면 헌재 판결문에도 또렷이 적혀 있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변호사비 횡령 의혹에 대해 이날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김 의원의 질의에 “변호인은 개인 비용으로 선임했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한겨레는 ‘김 의원의 딸이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KT 고위직의 지시에 따라 KT 산하 스포츠단에 특혜 채용됐고, 이후 KT 정규직으로 입사한 공채 과정도 비정상적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김 의원은 “내 딸은 100% 공채시험을 통해 합격했다”고 반박했다.
한겨레 보도 후 KT 새노조와 시민단체인 ‘약탈경제반대행동’, 청년민중당은 검찰에 김 전 원내대표를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에 필요한 자료 확보를 위해 KT 본사 등 여러 곳을 압수수색했다”며 “김 의원이나 딸의 소환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 회장 본인을 비롯해 다수의 KT 임직원들의 피의자로 검·경 조사를 받는 판국에 지난해 11월 발생한 KT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로 KT는 국회 청문회까지 받게 생겼다.
16일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T 화재 관련 “청문회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여야 간사 간 협의를 통해 청문회 개최에 합의했다. 노웅래 위원장은 “(정부와 KT 측의) 답변을 보면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청문회를 열 수밖에 없다”며 다음 전체회의에서 청문회 개최를 의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