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과거 청산기구 진실과미래위원회(이하 진미위)가 오는 4월 1차 활동을 끝낸다. 진미위는 지난해 10월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법원은 KBS 공영노동조합이 진미위를 상대로 낸 효력정지 등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해 징계 등 인사조치 권고(제10조 제1항 제3호), 조사 방해자 징계요구(제13조)를 규정한 조항은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진미위 출범과 활동은 적법하지만 조사 대상자에게 징계와 같은 인사조치를 권고할 수 없다는 판결이다. 진미위는 곧바로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석달이 지나도록 법원의 판단은 미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미위 조사에서 드러난 ‘KBS 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모임’(정상화 모임)의 직장질서 문란 등 행위에 당사자들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징적으로 KBS 간판 프로그램인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 패널로 출연 중인 송수진 기자는 정상화 모임에 이름을 올린 129명 중 한명이었다. KBS 구성원 사이엔 KBS 공영방송 회복을 외쳤던 기자협회를 비난했던 모임에 속했던 송 기자가 아무런 입장 표명 없이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 언론의 문제점을 취재하고 비평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송 기자가 언론 자유를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상화 모임은 2016년 3월11일 등장했다. 이들은 모임의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KBS 기자협회를 정면 비난했다. 당시 성명에서 이들은 기자협회를 “방법도 레토릭도 정치적이고 편향적이다. 민주노총 산하 특정노조의 2중대라는 비판을 꼽씹어봐야 한다”며 “특정 목적을 위해 KBS 기자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언론자유나 공정보도 등의 명분으로 포장해온 세력들은 KBS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대다수 조직원들과 시청자들의 가장 큰 적이다”라고 맹비난했다.

정권과 유착해 KBS 공정성을 훼손시켰다고 평가받는 고대영 사장 때  정상화모임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연수와 희망부서 배치, 보직 획득과 앵커 기용, 특파원 임명 등의 기회를 얻었다”(전국언론노조 KBS본부 백서 ‘장악과 부역, 저항의 10년’)는 게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의 분석이다. 반면 공영방송 훼손을 막으려고 앞장선 기자들은 정직과 감봉 등 징계를 당했다.

정상화모임은 2016년 3월 11일부터 4월 8일까지 8개의 성명을 발표했다. 정상화모임은 한국기자협회보가 △광고 매출 감소에 따른 KBS 경영위기 △정부‧여당 관점의 편향적 보도 △보도 감시 활동으로 징계를 받은 KBS 기자들의 소식을 전하는 내용을 보도하자 “기자협회보가 문제의 기사를 내리고 정정 보도를 하지 않는다면 한국기자협회에 바치는 KBS 회비 납부를 당장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당시 KBS 기자협회는 자사 KBS 총선보도를 감시하면서 고대영 사장 체제의 정치적 편향보도를 고발했는데 이를 폄훼하고 “특정 정치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치적 낙인을 찍었던 단체가 바로 정상화 모임이었다.

과거 청산기구인 진실과미래위원회는 KBS 보도에 비판적이었던 기자협회의 기능을 무력화하려고 보도본부 국·부장단 주도로 성명서를 발표했다며 정상화모임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직장질서 문란 및 편성규약 등을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상화모임 가입을 거부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반대로 가입자들에게 보직 등을 준 정황도 확인됐다. 정상화모임 가입자들을 별도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도 나왔다. 정연욱 기자는 한국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 보도국엔 ‘정상화’ 망령”이라는 글을 기고해 정상화모임을 비판하자 이틀 만에 제주총국으로 전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상화모임은 고대영 사장 때 KBS 보도를 비판하며 공영방송 회복을 주장했던 KBS 기자들에게 악몽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정상화모임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현재 아무런 입장이 없다. 진미위가 이들을 조사했지만 징계 청구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 책임을 묻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KBS 내부에선 최소 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사과 혹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송수진 기자의 경우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 패널로 출연 중인데 자격이 있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 KBS 기자는 “송 기자가 방송에서 언론 자유를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프로그램 초반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프로그램에 합류한 걸로 알지만 송 기자가 정상화모임에서 올렸던 성명 내용을 생각하면 언론을 비평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공개적 입장 표명이나 사과는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송수진 기자는 과거 정치 편향적 리포트를 작성했다는 지적도 내부에서 나온다. 2017년 3월 11일 송 기자는 “뉴욕타임스는 문재인 전 대표의 대북관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비슷하다면서 그 결과는 북한 핵실험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원문은 햇볕정책이 한반도에 ‘전례 없는 평화(unprecedented détente)를 가져왔지만 이후 북한 핵실험 등이 진행됐다’라고 서술돼 있다. 햇볕정책이 곧 북한 핵실험으로 이어졌다는 송 기자의 리포트는 인과 관계를 잘못 연결해 사실상 오역이라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왔다.

과거 정상화모임에 이름을 올렸고, 정치 편향으로 해석할 리포팅을 했던 송 기자가 언론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비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KBS 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모임 명단.
▲ KBS 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모임 명단.

▲ KBS 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모임 명단.
▲ KBS 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모임 명단.

이에 대해 송 기자는 “당시 경제부였는데 부 선배들이 정상화모임에 이름을 올려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며칠 고민하다 어떤 내용의 모임인지 어떤 활동을 할 건지 물어봐서 구체적으로 들어간 것은 없다는 답변을 듣고 알겠다고 했다”며 “정상화모임에 대해 왜 간부들이 앞장서서 기자협회 활동에 반대하는지 내부 성토가 많았고 저 역시 부담스러운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제가 의식적으로 저항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해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기자는 “제 주변에서도 많은 기자들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에 반대해 올리지 않았고 각종 회유도 있었다고 들었다”며 “그런데 그때 거부하지 못했고 결정을 한 상태에서 번복하는 것에 대해 또 다른 부담이 작용했던 것 같다. 성명은 공람하는 과정이 일절 없었고 저 역시 게시판에 올라온 뒤에 확인했다”고 말했다.

송 기자는 저널리즘 토크쇼J에서 언론을 비평할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에 “KBS 정상화를 말하는 프로그램에 정상화를 막았던 모임에 이름을 올린 기자가 나오는 게 맞느냐는 얘기인데 미디어비평 포맷 자체가 없었던 지난해 4월 우리가 만들어서 구현해야 된다고 공감해 합류했다”며 “정상화 모임에 이름 올린 부분에 대해서 의지적으로 막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반성하는 상황이었고, 이런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정상화 모임에 이름을 올린 행위에 대한 만회라고 개인적으로 정의를 내렸다”고 말했다.

송 기자는 “적폐청산 문제는 구조의 문제이다. 제가 저항하지 못한 것이긴 한데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모임을 만든 사람이 있고 주도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의사결정을 한 사람이 누군지 명확하게 나오고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이 채워져야 반복하지 않고 제대로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BS 다른 한 기자는 “정상화모임에 가입해서 이름을 올린 게 잘못된 일인데 거기에 대해서 내부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사과한 사람은 129명 중 딱 한 사람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상화모임에 이름을 올렸던 조아무개 기자는 2017년 7월 KBS 내부 게시판에 사과문을 올렸다. 조 기자는 “‘선배들을 중심으로 성명을 발표할 계획인데, 중요한 사안이니 참여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몇몇 선배들로부터 받았다. 구체적 성명 내용은 몰랐지만, 평소 믿고 지내던 선배들의 제안이었기에 참여했다”며 “성명이 계속 이어지면서, 내용이 제 생각과 달라 모임에서 탈퇴하겠다는 문자를 성명 게시자에게 보냈다. 모임이 결성된다는 사실도, 성명 내용도 몰랐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름을 빌려준 셈이 됐으니, 성명 이후 일어난 일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들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 잘못된 일이었다. 미안하다”고 밝혔다.

정상화모임에 이름을 올린 기자들은 입장을 묻는 요청을 대부분 거부했다. 한 기자는 “정확히 정상화 모임을 잘 몰랐다. 어떤 상황이고 어떤 사람이 모여 있는지 그 취지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런 부분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다”라며 “어떤 형태로든 여기에 대해 거론되고 싶지 않다. 사과는 지금 해야 될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사과를 올렸던 사람의 행위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 그런 행동을 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병도 기자(2016년 당시 기자협회장)는 “법원이 진미위의 징계 요구 규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아들이면서 진미위가 이의신청을 했지만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홀딩이 된 상황을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반드시 책임지는 형태가 돼야 한다. 정상화모임 문제 역시 징계나 이런 차원이 아니라 잘못된 행위에 책임을 묻고 결과를 발표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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