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도하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둘러싸고 민주노총의 참여 여부가 주된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경사노위만을 ‘사회적 대화’로 전제하는 프레임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은 “사회적 대화가 여러 채널로 가능한데도 기울어진 운동장인 경사노위만이 유일한 테이블인 듯이 정부와 기업, 언론이 민주노총의 참여를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학술단체협의회 등은 17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사회적 대화와 노동’ 토론회를 열었다.

경사노위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로,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발전시킨 모델이다. 기존에 참여하던 주요 노·사단체 대표뿐 아니라 청년·여성·비정규직·중소기업·영세소상공인 대표가 새로 들어간다. 노동자와 사용자 대표 각각 5인과 정부·공익·전문가 위원 7인으로 구성된다.

경사노위는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지난해 11월22일 공식 출범했다. 당시 언론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사설을 내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불발을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28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 여부를 결정한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의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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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이 17일 오후 ‘사회적 대화와 노동’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이 17일 오후 ‘사회적 대화와 노동’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날 토론자들은 ‘사회적 대화’ 개념이 오용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경사노위를 둘러싸고 오가는 담론과 언론보도가 ‘경사노위만이 사회적 대화이며, 경사노위가 곧 사회적 대화’라는 전제 위에 이뤄진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대화는 중앙 단위의 사회적 대화기구뿐 아니라, 노사간 대화도 포함한다’고 강조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적 대화를 “노동자와 사용자와 정부 사이의 정보 공유를 포함하여 공통된 이해가 걸린 사안에 관련된 교섭과 협의”로 정의한다. 넓게는 노사 2자 형태도 포함한다. 손영우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은 “ILO는 정부가 참여하는 노사정 3자 형태와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 노사 2자 형태가 모두 사회적 대화에 들어간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경사노위 외 다양한 사회적 대화 요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은 “철저히 무시해왔다”고 말했다. “이번에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님이 사망한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발전5개사가 나와 함께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자고 요구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는 한편 경사노위라는 특정한 틀을 강요하고 있다.”

▲ 충남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가 지난달 11일 숨진 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노동자대표 100인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대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충남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가 지난달 11일 숨진 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노동자대표 100인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대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혜진 집행위원은 경사노위 안에서도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봤다. 경사노위를 주도하는 정부가 노동계가 반대하는 의제를 일방 설정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탓이다.

김 집행위원은 “현재 경사노위에는 기업이 요구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 확대와 직무급제 등이 의제로 올라와있다”고 했다.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면 사업장에 따라 주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된다. 직무급제는 근속연수가 아니라 일의 성격과 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제도로, 노동계는 직무급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설계돼 저임금을 고착한다고 우려한다. 경사노위는 출범 첫날 탄력근로제를 논의할 ‘노동시간 제도개선 위원회’ 설치를 첫 안건으로 처리했다.

정부가 경사노위를 가동하는 와중에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을 일방으로 발표한 점도 모순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다른 어느 안건보다도 경사노위에서 다룰 만한 첨예한 사안을 정부가 양대노총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방 처리했다는 것이다. 김 집행위원은 “경사노위는 실제 사회적 대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명분 확보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 민주주의법학연구회·비정규직권리연구소·참세상연구소·학술단체협의회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사회적 대화와 노동’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주의법학연구회·비정규직권리연구소·참세상연구소·학술단체협의회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사회적 대화와 노동’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노동자를 대표해 목소리를 관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집행위원은 민주노총이 ‘대중을 향한 말하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봤다. “노동계는 지금까지 정부를 향해서만 요구해왔다. 경총을 비롯한 기업들은 대중을 향해 말한다. ‘경제 위기’라며 기업이 사회 전체를 대표하듯 말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이 대중에 직접 ‘노동자를 대표하니 함께하자’고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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