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재심사건 중 하나로 관심을 받아 온 제주 4·3사건 수형인 18인의 무죄 판결을 두고 대부분 종합지가 1면 보도·기획 보도 등으로 비중있게 보도할 때 조선일보·중앙일보는 단신으로 처리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제주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 선고 공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공소기각은 유·무죄 선고와 달리 공소절차에 문제가 있어 재판을 종결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일관되게 ‘어떤 범죄로 재판받았는지 모른다’고 진술했고, 어떤 자료에서도 예심과 소장 자료를 찾을 수 없다”면서 “단기간에 그 많은 사람들을 군법회의에 넘겨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수형인 명부와 군집행지휘서 등 수형 관련 문서 등에는 피고인들의 죄명과 적용 법조항만 기록돼 있을 뿐 공소장이나 판결문 등 구체적인 공소사실로 군법회의에 이르게 된 것인지를 확인할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 18일 서울신문 1면
▲ 18일 서울신문 1면
▲ 18일 경향신문 사설
▲ 18일 경향신문 사설
▲ 18일 한국일보 2면
▲ 18일 한국일보 2면

제주 4·3 당시 군사재판이 불법이며 이로 인해 수감된 수형인들이 무죄라고 확인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향신문·한겨레·국민일보·서울신문 등은 “공권력에 의해 타지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수형인들이 70년 만에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았다”며 환영했다.

동아일보 관점은 이들과 달랐다. 국민일보는 공소기각에 “당시 군사재판이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진 것이었으므로 당시의 재판 자체가 ‘무효’라는 의미”라 분석했으나 동아일보는 “4·3사건 당시 군사재판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인정한 것으로 ‘죄가 없다’는 청구인들 주장을 온전히 반영한 것은 아니”라 강조했다.

서울신문·한겨레 보도 비중이 가장 높았다. 서울신문은 1·3면에 걸쳐 제주 4·3 재심 사건을 조명하며 생존 수형인 3인 양근방씨(86)·부원휴씨(90)·김순화씨(86)의 인터뷰를 기획 보도했다. 모두 4·3사건 당시 영문을 모른채 계엄군에 체포돼 군사재판에 회부된 뒤 ‘내란죄’ 선고를 받고 전주, 인천 등 형무소에 갇혔다.

이들은 여전히 과거 억울한 옥살이 기억에 고통받고 있었다. 양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출소 후 아버지 사망 사실을 안 것이 “지금까지도 가장 한이 맺힌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의 부친은 그가 1960년 10월 출소해 고향에 돌아가기 7개월 전 숨졌다. 부친은 당시 양씨를 면회하고 일주일 뒤 숨졌다. 양씨는 출소 후에도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감시를 받았다. 양씨는 이후 제주도를 떠나 연고도 없는 경기도 파주로 옮겨 목장 일을 하며 20년을 살면서 본적도 바꿨다.

▲ 18일 서울신문 3면
▲ 18일 서울신문 3면
▲ 18일 한겨레 4면
▲ 18일 한겨레 4면

한겨레도 1·4면을 같은 보도에 할애했다. 한겨레는 수형인 명예회복을 담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군사재판 결과 일괄 무효화 △특별사면과 복권 건의 △수형인 명예회복 △추가 진상조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 △생존자와 유족을 위한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4·3 왜곡 시도 처벌 등을 담은 개정안은 2017년 12월 발의됐으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 심사소위에 계류돼있다.

이에 비해 조선일보는 10면 1단 기사로 단신처리했고 중앙일보는 지면에 기사를 싣지 않았다.

▲ 18일 조선일보 10면
▲ 18일 조선일보 10면

지난 17일 무죄 선고를 받은 재심청구인 18명은 김경인(87·여)·김순화(86·여)·김평국(89·여)·박내은(88·여)·박순석(91·여)·부원휴(90)·양근방(86)·양일화(90)·오계춘(94·여)·오영종(89)·오희춘(86·여)·임창의(98·여)·정기성(97)·조병태(90)·박동수(86)·한신화(97·여)·현우룡(94)·현창용(87)씨 등이다.

제주 4·3사건 수형인 명부엔 2530명이 기록돼있지만 대부분 행방불명이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생존자는 현재 32명으로 파악된다.

이 사건 재심이 시작될 수 있어썬 계기는 1999년 추미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 처음 발견한 ‘수형인 명부’다. 이후 진상조사위가 꾸려지고 진상보고서가 작성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대통령 최초로 제주 4·3사건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가까스로 생존한 수형인들은 2017년 4월19일 재심을 청구했다. 제주지법은 2018년 9월3일 생존자 18명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고 같은 해 10월29일부터 12월17일까지 네 차례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지난달 열린 마지막 구형공판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공소 사실을 특정하지 못했다”면서 “피고인들 전원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구한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생존자 부씨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만시지탄”이라며 “험하고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 오늘에 왔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야”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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