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료원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유가족과 노동조합은 언론과 서울의료원, 대한간호협회에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일부 언론이 병원·간호협회 측 허위사실을 그대로 보도하자 나온 호소다.

서울의료원 5년차 간호사 서지윤씨는 지난 5일 숨졌다. 병동에서 간호행정 부서로 옮겨진 뒤 12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씨는 ‘병원 사람들의 조문은 받지 말아 달라’고 유서에 남겨, 직장내 괴롭힘 의혹이 제기됐다. 

유가족이 생전 서씨와 나눈 메시지에는 ‘오늘 물 한 모금도 못 먹었다’ ‘커피 타다가 넘쳐서 또 혼났다’ ‘신발 끄는 소리를 가지고 앞담화 뒷담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사실은 지난 10일 언론 보도로 뒤늦게 드러났다.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유가족 참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유가족 참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일부 언론은 고인의 유서 내용과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사화했다. 온라인 의료전문매체 ‘헬스코리아뉴스’는 지난 15일 익명의 간호협회 관계자 말을 인용해 “그 간호사가 결혼도 했었다더라. 이건 소문일 뿐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유서에) 시댁도 조문 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도 있더라,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서씨는 결혼한 적이 없다.

기사에서 해당 부분은 지난 16일 삭제됐다. 언론사는 기사 페이지에 수정 경위를 밝히지도 않았다. 공공운수노조 새서울의료분회는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연다는 취재요청서를 내자 기사가 수정됐다”고 했다.

▲ 보건의료전문매체 헬스코리아뉴스의 지난 15일 기사에는 고 서지윤씨가 유서에 시댁도 조문을 오지 말라고 했다는 유언비어와 함께 사망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실렸다. 현재 기사는 해명 없이 수정됐다. 사진=김예리 기자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제공
▲ 보건의료전문매체 헬스코리아뉴스의 지난 15일 기사에는 고 서지윤씨가 유서에 시댁도 조문을 오지 말라고 했다는 유언비어와 함께 사망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실렸다. 현재 기사는 해명 없이 수정됐다. 사진=김예리 기자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제공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새서울의료원분회와 고 서지윤 간호사의 유가족은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사건과 관련한 확인되지 않은 명예훼손성 보도가 배포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분회는 이같이 오보가 난 상황을 두고 병원이 서씨의 사망 원인을 가리려는 의도라고 봤다. 김경희 분회장은 “서 간호사가 미혼이라는 사실은 서울의료원 직원들은 다 안다. 서씨가 ‘병원 사람은 조문 오지 말라’ 쓴 건 서울의료원 직원들이 지긋지긋해서일 텐데, 병원이 책임지는 상황이 올까봐 ‘시댁’ 이야기까지 거짓으로 끌어오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분회장은 기사 말미에 자신이 ‘입장표명을 꺼렸다’고 언급된 부분을 두고서도 “헬스코리아 측 문의를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했다.

해당 기사를 쓴 헬스코리아뉴스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취재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유족분들께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 앞으로 취재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유가족 참여를 보장하라’고 서울시에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유가족 참여를 보장하라’고 서울시에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노조와 유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시가 진상조사위원회를 제대로 구성하지 않는 동안 확인되지 않은 뉴스들이 퍼지고 있다”며 우려했다. 이들은 서울시가 노조와 유가족이 추천하는 의료전문가, 관련 경험이 있는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이날 조사관 4명을 서울의료원에 보내 진상조사에 착수했지만 노조는 “공무원들만 참여해서는 진상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경희 분회장은 “시가 정기 감사를 하는데도 직장내 괴롭힘 관행이 멈추지 않았다. 조사 주체가 그대로인데 어떤 내부자가 입을 열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씨의 어머니는 이날 기자회견에 나와 “딸아이가 12월29일 집에 내려와 저녁을 먹으며 ‘나 이제 태움이 뭔지 알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 부서를 옮기고서 불과 며칠 사이 그런 얘기를 했다. 거기서 얼마나 많은 괴롭힘이 있었을지 모르겠다”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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