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거사 위원회(이하 위원회)가 ‘KBS 정연주 배임 사건’ 조사결과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서 보고 받아 심의하고 “적법한 공소권 행사의 범위를 일탈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검찰이 무리하게 정연주 사장을 기소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해 비판이 예상된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2003~2008년까지 재임한 정연주 사장이 KBS와 과세관청의 소송 중 1심에서 승소했는데도 2심에서 법원 조정으로 1심 승소금액보다 불리하게 합의해 특검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류위반으로 기소됐지만 최종 무죄가 확정된 사건에 정부가 언론 장악을 위해 기소 자체가 불가능했는데도 무리하게 기소해 검찰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조사했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사건 당시 담당검사와 검찰지휘부, 법무부장관, 당사자인 정연주 사장의 진술을 듣고 사건 수사기록, 재판기록, 검찰 정보보고, 무죄등사건 평정서 등을 들여다봤다.

조사단의 최종 보고를 받은 검찰 과거사 위원회는 17일 “이 사건의 공소는 유죄판결의 가능성이 없음에도 제기된 것으로 적법한 공소권 행사의 범위를 일탈한 공소제기이고, 검사에게 현저한 주의의무 위반의 과오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심의 결론을 내렸다, 사실상 검찰권 남용 의혹을 인정한 것이다.

위원회는 정연주 사장 사건의 1심과 2심 재판부가 “KBS의 승소가능성을 단정할 수 없고, 과세관청의 법인세 등 재부과 가능성도 있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했고 특히 “기소 당시 검사도 KBS가 항소심에서 승소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설사 최종 승소하더라도 과세관청이 재부과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이 정연주 사장을 기소하기 전 KBS가 과세관청과의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법원 판결뿐 아니라 승소하더라도 과세관청의 재부과 가능성이 있다는 검사 진술조서 내용이 나온 것이다.

KBS와 경아무개 변호사와의 수임료 재판의 판결문에는 “이 사건 소송의 항소심(KBS와 과세관청 소송)에서 제1심과 다른 판결이 선고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소송이 제1심과 같은 결과로 종료되더라도 과세관청은 1995 사업연도 법인세 등을 다시 부과할 수 있다고 할 것”이라는 대목이 나와 있다.

또한 이아무개 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1과 1계장이 2008년 6월 3일 검사 작성 진술서에서 “추계조사방법 등에 의해 새로운 세액을 결정하는 방법이 어렵지만 그대로 과세관청으로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서라도 새로운 부과처분을 하였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왔다.

▲ 정연주 전 KBS 사장. 사진=김도연 기자
▲ 정연주 전 KBS 사장. 사진=김도연 기자

위원회는 사건 당시 검찰총장,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1차장검사, 조사 부장 등을 진술해 종합 검토한 결과 “이 사건 공소제기 결정에 관여한 검사들 모두 이 사건 배임죄의 혐의 인정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일례로 사건 당시 검찰총장은 지난해 10월 29일 진상조사단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이 건 범죄 혐의 인정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법원의 조정에 응한 것이 어떻게 배임으로 될 수 있는가, 기업주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KBS의 이익을 위한 조치였다고 변명한다면 회사에 손해를 가한다는 범의를 인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건 당시 명아무개 서울중앙지검장도 “본인이라고 왜 법원에서 조정한 사건을 기소한다는 거에 의문에 없었겠는가. 다른 사람들도 이 사건을 보면 같은 의문을 가졌을 것”이라고 진술했고, 최아무개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는 “검사장과 본인은 죄가 될지 다소 의문스럽고 자신이 없었으나”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공소권을 가진 검찰조차도 정연주 사장의 배임죄가 성립하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데 무슨 이유 때문에 무리하게 기소를 했는지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원회는 정연주 사장에 대한 고발과 수사 과정과 기소에서 외압을 정부가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는 판단 불능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조아무개씨는 퇴직 후 4년 뒤, KBS가 조정을 통해 조세소송을 모두 취하한지 약 2년 6개월 뒤에 정연주 사장을 고발했다. 우연치 않게 당시 보수단체들은 감사원에 KBS 특별감사를 청구하는 등 정연주 사장 퇴진을 압박했던 시점이었다.

위원회는 “본건 고발이 고발인의 자발적인 의사가 아닌 정부 등 배후 세력의 기획 조종에 의하여 제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면서도 정연주 사장과 검찰총장의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정부의 기획 조종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넘어 이를 뒷받침할 진술이나 자료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이 의혹의 진위 여부는 판단 불능”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수사과정과 기소 경위에 부당한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당시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서울중앙지검장, 1차장검사, 조사부장, 담당검사 등이 ‘이 사건에 관하여 법무부 등 정부로부터의 외압은 없었다’는 취지의 공통된 진술을 하고 있는 점, 위와 같은 가능성을 넘어 이를 확인할 진술이나 자료를 발견하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이 의혹의 진위 여부는 판단 불능”이라고 밝혔다.

결국 위원회는 “정연주에 대한 공소는 유죄판결의 가능성에 대한 상당한 이유가 없음에도 제기된 것으로 적법한 공소권 행사의 범위를 일탈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누가 어떤 이유로 공소권을 남용했는지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못한 꼴이 됐다.

정연주 사장을 기소한 행위에 대해서는 잘못됐다면서도 왜 무리하게 기소를 시키고 수사를 했는지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해 한계가 분명한 심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정연주 사장에게 검찰총장의 사과를 권고했다, 이와 함께 검사의 위법 부당한 공소제기에 대한 통제 방안과 법률사건과 재판에서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하면 처벌하는 ‘법왜곡죄’의 도입 검토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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