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인데 처음 받는 재판이었다. 뭘 잘못했는지,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른 채 옥에 갇혔다. 제주 4·3 당시 판결문과 같은 재판기록도 없이 군법회의(계엄 군사재판)로 투옥된 4·3 수형인 18명이 재심에서 명예를 회복했다. 70년 만이다.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재판장 제갈창)는 오늘 4·3 수형인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에서 검찰의 공소를 기각했다. 검찰이 지난해 12월 결심공판에서 공소기각을 재판부에 요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검찰의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해 무효일 때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할 수 있다. 이론상 검찰이 유·무죄를 판단한 건 아니며 법률상 하자를 보완해 공소를 제기할 순 있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이 4·3 수형인을 무죄로 본 것이다.

제주4·3 특별법을 보면 4·3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4·3 수형인은 1948년 12월, 1949년 7월 두 차례 고등군법회의에서 과거 형법 제77조 내란죄, 국방경비법 제32조 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죄, 제33조 간첩죄 등으로 징역형을 받아 형무소에 갇힌 이들을 말한다. 이번에 재심을 청구한 18명은 전주(9명), 인천(6명), 대구(2명), 서울 마포형무소(1명)에 수감됐다. 이들은 대부분 경찰·군인에게 끌려갔고, 인솔자에게 형량을 들었다.

▲ 제주 4.3 희생자와 도민 2000여 명이 지난해 10월 제주시청에서 관덕정까지 행진하며 배보상을 주요 내용으로 한 4.3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제주 4.3 희생자와 도민 2000여 명이 지난해 10월 제주시청에서 관덕정까지 행진하며 배보상을 주요 내용으로 한 4.3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군법회의 희생자로 확인된 인원은 2530명이다. 이들에겐 수형인 명부가 유일한 기록이다. 이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99년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찾은 문서다. 여기 이들의 이름·본적·판결·언도 일자·복형 장소 등이 남아있다. ‘제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를 중심으로 생존자 30여명을 확인한 뒤 이 중 18명이 지난 2017년 4월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약 1년6개월만인 지난해 9월3일 재심을 열기로 했다. 제주 4·3 관련 형사재판에서 재심 결정은 처음이다. 재판부는 4·3 수형인들 중 불법구금이나 조사과정에서 고문을 당한 사실을 확인하고 당시 제헌헌법과 과거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사안으로 봤다. 4·3 수형인에겐 사실상 첫 정식재판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17일 재판부에 ‘공소기각 판결’을 요청했다. 지난해 2월부터 재심 개시를 위해 심문기일 5번, 재심 개시 뒤 공판 4번을 거친 뒤 검찰이 국가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번 선고는 제주 4·3의 수많은 희생자 중 일부의 명예가 회복됐다는 점에선 의미 있지만 4·3진상조사나 희생자 명예회복 등에 많은 과제를 보여준다. 지난해가 4·3 70년으로 곳곳에서 행사를 열었지만 실질적 진상조사나 대책마련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 4.3 생존 수형인 김평국씨가 지난해 12월17일 제주지법 수형인 재심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사실상 무죄 구형을 하자 기뻐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4.3 생존 수형인 김평국씨가 지난해 12월17일 제주지법 수형인 재심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사실상 무죄 취지로 구형을 하자 기뻐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이번 재심을 대리한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미디어오늘에 “제주 4·3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 이루어져 역사적 의미가 큰 사건”이라고 밝힌 뒤 “지난해가 4·3 70년이었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얘기했는데 과연 그러한 진전이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4·3 행사는 많았지만 정작 실질적 해결책인 4·3 특별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고, 언론은 재심 사건을 조명하지 않았다는 게 임 변호사 뿐 아니라 4·3유족회, 4·3평화재단 관계자들 지적이다. 임 변호사에 따르면 제주지역 언론을 제외하곤 한겨레신문 정도만 재심사건을 관심 있게 보도했다.

제주 출신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20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한 4·3 특별법 개정안에는 ‘군법회의 일괄무효 조항’이 담겨 있다. 다수 재심사건이 독재정권 시절 위헌·위법한 조항을 근거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 많다. 이때 해당 조항이 부당하다는 결론이 나거나 일부 피해자가 재심으로 구제를 받더라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구제받지 못한다.

역시 이번 재심판결로 당시 군법회의가 문제였다고 증명됐더라도 현행 법률에선 재심신청을 한 18명을 뺀 나머지는 법적으로 구제받지 못한다. 임 변호사는 “입법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사법부 판단까지 나온 이상 입법 동력이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에 재심을 신청한 18명은 1933년생(87)부터 1921년생(99)까지 고령이다. 임 변호사는 나머지 생존자 중에서 신청을 받아 추가로 재심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 한국 언론의 불행한 출발은 제주 4·3 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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