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JTBC는 커피숍의 머그컵 위생 상태에 관한 보도를 내보냈다. 기사 제목은 ‘입 닿는 커피숍 머그컵, 관리는?...변기보다 더러운 컵도’였다. 이에 한 누리꾼은 ‘이쯤 되면 이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것은 변기일지도’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 변기에다 커피 타먹으면 되겠네’, ‘위생관련 기사가 나오면 변기랑 많이 비교하는데 아무 의미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변기보다 더럽다’는 식의 기사는 반복되고 있다. 2006~2018년까지 보도된 위생 상태에 관한 기사 중 ‘변기보다 더럽다’는 내용이 제목에 들어간 기사는 69건이었다. 이 중 일부 기사 제목만 꼽아보면 이렇다.

“책상이 변기 시트보다 더 더럽다?” (SBS 2006년 5월4일자)
“키보드가 화장실 좌변기보다 더럽다고?” (SBS 2008년 5월6일자)
“휴대전화, 화장실 변기보다 더럽다? 세균 우글우글” (헤럴드POP 2010년 10월19일자)
“교복·베개, 변기보다 더럽다...세균수 100배 육박” (쿠키뉴스 2011년 4월12일자)
“자동차 핸들, 화장실 변기보다 더럽다” (내일신문 2011년 4월26일자)
“칫솔, 화장실 변기보다 더럽다!?” (세계일보 2011년 8월18일자)
“세균 득실 신용카드, 변기보다 더럽다” (KBS 2012년 5월4일자)
“냉장고가 변기보다 10배 더러워 ‘깜짝’” (파이낸셜뉴스 2013년 2월10일자)
“인천공항 수유실, 변기보다 더럽다” (경기신문 2014년 9월14일자)
“공중화장실 손 건조기, 변기보다 더럽다” (쿠키뉴스 2014년 12월22일자)
“세균덩어리 스마트폰...변기보다 더럽다?” (이투데이 2015년 1월16일자)
“‘턱수염, 변기보다 더럽다’ 충격 연구결과” (헤럴드경제 2015년 5월5일자)
“기내 테이블, 변기보다 더럽다” (YTN 2015년 9월4일자)
“헬스장 러닝머신이 변기보다 더럽다” (세계일보 2016년 4월11일자)
“변기보다 더러워요, 손에 쥔 ‘그것’” (머니투데이 2018년 3월4일자)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과연 변기는 더러운 것일까.

‘변기보다 더럽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상의 비위생적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자 할 때 사용되는 익숙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 표현은 변기가 다른 대상들보다 더러울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상투적인 말이기도 하다. 변기보다 더럽다던 대상은 책상, 키보드, 부엌 수도꼭지, 휴대전화, 냉장고, 교복, 베개, 인형, 자동차 핸들, 칫솔, 머그컵, 심지어 턱수염까지 다양했다. 변기보다 더럽다는 것은 정말 ‘더럽다’는 뜻일까.

우선 정부기관에서 정한 화장실 변기 청결도 기준은 없다. 만약 세균이 많은 것이 더러운 것이라면 변기는 세균이 많아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사이트 RISS에 ‘변기가 세균이 많고 비위생적’이라는 연구결과나 학술지는 없었다. 설령 세균이 많이 발견되더라도 무조건 위생에 문제가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세균 종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생 청결도 조사는 거의 대부분 동일 면적에서 채취한 세균 수의 많고 적음을 비교해 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은주 한국화장실협회 사무처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금까지 변기보다 더럽다는 기사들에서 연구결과의 정확한 조건을 제시해주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전하며 “세균의 오염도는 물체의 사용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동일한 조건의 환경에서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조사를 위해) 똑같은 조건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2017년 10월14일자 “맨날 세균오염 비교당하는...변기는 억울하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컴퓨터, 이어폰, TV리모컨, 자동차 핸들, 식당 메뉴판, 오래된 화장품, 핸드백 등 변기보다 더럽다고 알려진 것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보도했다. 뉴스웨이는 2017년 5월6일자 “변기가 그렇게 깨끗하다면서요?”라는 카드뉴스를 통해 스마트폰, 지폐, 1회용 교통카드 등에 변기보다 최소 5배에서 최대 25배 많은 세균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변기는 우리의 편견보다 훨씬 깨끗하다.

2004년 미국 애리조나대학 환경미생물학과의 찰스 거버 박사는 주택과 사무실, 공공장소 등에 대한 세균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사람들이 가장 더럽다고 생각하는 변기보다 전화기, 싱크대, 키보드, 엘리베이터 버튼 등에 세균이 훨씬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손을 씻으면서도, 전화기를 만진 후 손을 씻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편견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변기는 여전히 더러운 물체일 수 있다. 과학적 근거와 상관없이 위생에 대한 판단은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변기보다 더럽다’는 식의 보도가 부실할뿐만 아니라 기존의 편견을 확대하는 언론의 낡은 클리셰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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