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달 공약을 뒤집고 설립 허가한 제주영리병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제주영리병원이 사업요건을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공공의료체계를 뒤흔들 것이라며 개원 철회 범국민운동본부를 출범했다.

제주도민운동본부와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99개 시민단체는 16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때 활동했던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를 재가동한다고 밝혔다.

영리병원이란 한마디로 환자 치료가 아닌 수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다. 비영리병원이 이윤을 외부로 빼낼 수 없어 병원에 재투자하는 반면, 영리병원은 투자자에게 이익을 배분할 수 있다.

현행법은 최소한의 의료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내에 비영리법인만을 허용하지만, ‘국제자유도시’인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 7곳만은 외국자본의 영리병원을 허용한다. 국내 1호 영리병원이라 불리는 제주 국제녹지병원도 이를 전제로 설립이 허가됐다.

▲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16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재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녹지병원 허가 철회를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16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재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녹지병원 허가 철회를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날 범국민운동본부는 원희룡 지사가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한 데 “전면적 의료민영화의 포문을 연 반민주적 폭거”라고 비판했다. 

원 지사는 지난해 6‧13 지방선거 후보 시절부터 영리병원 추진을 두고 제주도민 공론조사 결과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원 지사가 취임한 뒤 제주도는 제주도민이 참여한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숙의 결과 위원회는 찬성 비율보다 20%p 높은 58.9% 비율로 ‘불허’를 권고했고, 원 지사는 당시 ‘결과를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달 뒤 ‘외국인 전용’이라는 조건을 붙여 병원 설립을 허가했다.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녹지국제병원이 법적 사업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도 지적했다. 녹지국제병원이 법적 요건인 ‘병원사업 경험’을 갖추지 못했을 뿐더러, 국내 의료기관이 실질적 운영권을 쥐고 있다는 정황이 속속 나온다는 주장이다.

녹지국제병원을 설립하는 녹지그룹은 중국 부동산회사다. 병원 사업경험이 전무하다. 녹지그룹 홀로는 영리병원 사업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녹지그룹은 사업계획서에 사업 경험이 있는 중국‧일본 의료기관을 파트너로 제시했다. 중국의 의료기관 연합체 BCC(비시시)와 일본 의료 운영지원회사 IDEA(이데아)다. 범국민운동본부는 “문제는 중국 BCC와 일본 IDEA에는 한국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핵심적으로 포함됐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 강호진 제주도민운동본부 상임대표가 16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재출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강호진 제주도민운동본부 상임대표가 16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재출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범국민운동본부는 ‘국내의료기관 우회진출 의혹’의 핵심 인물로 홍성범 BK성형외과 전 원장을 지목했다. BCC에 속한 병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BCC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곳이 ‘상해 서울리거병원’인데, 이 병원의 총원장이 홍성범 전 원장이라는 것이다. 또 녹지병원의 환자알선과 사후관리 등을 맡는 일본의 IDEA는 ‘상해서울리거병원’의 일본 지점(동경미용외과)과 거래를 맺고 있다고 했다. 범국민운동본부는 “결국 국내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영리병원의 핵심 실체”라고 밝혔다.

녹지그룹은 앞서 한 차례 BCC와 IDEA가 국제녹지병원 사업에 투자한다는 사업계획서를 냈다가 ‘국내자본 우회투자’ 문제가 일자 2015년 이를 철회했다. 같은 해 녹지그룹은 100% 투자하는 사업계획서를 다시 제출했고, 지난해 사업 허가를 받았다.

범국민운동본부는 “녹지국제병원은 (우회진출 의혹 관련) 사실을 가리려고 사업계획서 원본 공개를 거부해왔다”며 사업계획서 공개를 촉구했다. 이들은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주민소환을 추진하고 직무유기로 고발하겠다고 밝혔으며 사업계획을 승인한 전·현직 보건복지부 장관도 직무유기로 고발할 계획이라며 언론의 관심을 당부했다. 

한편 이날 조선일보에는 맨 뒷면에 국제녹지병원을 내세운 부동산 전면광고가 실렸다. 강호진 제주도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오늘 기자회견에 오는데 맨 뒷면에 ‘제주도에서 영리병원을 세우니 빨리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광고를 봤다”며 “논쟁 중인 데다 여러 문제가 제기되는 사안을 원희룡 지사 사진까지 붙여 부추기더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16일자 A32면 전면광고
▲ 조선일보 16일자 A32면 전면광고

조선일보의 해당 A32면은 ‘제주 단독형 타운하우스’를 선전했다. 이 광고는 ‘프리미엄 헬스케어타운(공사중) 10분’ ‘헬스케어타운_영리병원(2019년 1월 개원 예정)’ ‘제주 헬스케어타운, 약 1530000㎥ 의료관광단지’ 등 제주영리병원과 접근성을 거듭 강조하는 문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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