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어글리 코리안이 문제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관광 1번지는 ‘타멜’거리다. 몇 년 전만 해도 타멜 거리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하는 선량한 등산객들이 오지에서 쓸 생필품을 사는 곳이었다.

타멜 거리는 지금도 낮에는 그런 용도로 소비된다. 그러나 밤만 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온갖 유흥업소가 늘어서 점차 세기말의 홍등가로 변모하고 있다. 드물지 않게 성매매 업소도 생겼다. 야간 고객의 절반이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언론보도는 네팔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동남아에서 시작한 한국인의 성매매 관광은 하늘 아래 첫 동네인 네팔까지 뻗쳤다.

여행객들 눈엔 인도와 네팔을 묶어서 하나의 관광지로 생각하지만 두 나라는 엄청 다르다. 인도는 오랜 기간 영국 식민지를 겪었고 지금도 식민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인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영미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네팔은 역사상 단 한 번도 남의 나라 지배를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자존심도 강하다. 지리적 조건도 한몫 했다. 북으론 히말라야 산맥이 버티고 있고 아래 인도와는 뱅갈 호랑이가 출몰하는 밀림지대가 가로막아 재래식 군사력으로 네팔을 침략하기란 쉽지 않았다.

네팔에선 2000년대초 마오주의자들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혁명까지 성공했으니 자존심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네팔은 고립된 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부터 아리안족에서 몽골리안까지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다문화국가였다. 68혁명의 쓰라린 패배를 안고 70년대초부터 이주해온 서양 사람들도 꽤 많이 네팔에 들어와 산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10여년 전까지 네팔엔 웬만한 마약은 합법이었다. 과거 우리도 대마는 시골 할머니들이 가정의 상비약으로 사용해왔다.

간질의 일종인 소아 뇌전증을 앓는 아들을 둔 40대 의사가 2년전 뇌전증 치료에 효과가 많은 대마 성분의 카나비디올 오일을 미국에서 반입했다가 마약사범으로 검찰수사까지 받는 고초를 겪었다. 같은 처지의 환자 가족과 시민단체는 몇 년 동안 카나비디올 같은 대마 추출물이 미국의 일부 주와 캐나다 일본 중국 등에선 건강보조식품으로 분류돼 영양제처럼 인터넷으로도 쉽게 살 수 있다며 법 개정을 요구한 끝에 지난해 11월 겨우 마약류관리법을 바꿔냈다. 이 법은 오는 3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환자 가족들은 여전히 울상이다.

▲ 지난해 11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의료용 대마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환자 가족이 조속한 합법화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11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의료용 대마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환자 가족이 조속한 합법화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법을 개정했지만 식약처가 딱 4종의 대마성분 의약품만 허용한데다가 그나마 허용된 4종마저 서울 강남구에 딱 하나 뿐인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공급 받도록 해서다. 여기에 환자 가족들은 최소 12가지나 되는 신청절차 간소화도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고 애를 태운다. 현재의 속도로는 신청 후 심사를 거쳐 약을 받기까지 두 달 가까이 걸린다. 날마다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이런 문제가 몇몇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야 식약처는 절차를 간소화해 1~2주 안에 공급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부가 대선 캠프 출신을 식약처장에 앉혀 이런저런 헤프닝을 빚은 게 그리 오래지 않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정작 국민 피부에 잘 와닿지 않고 있다.

의료용 대마 허용은 관련 환자들에겐 오랜 숙원인데도 식약처는 “오남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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