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0주기, 개발사업에서 끊이지 않는 반인권적 강제집행을 개선하려면 ‘강제퇴거 금지법’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진압작전을 지휘한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소관 상임위인 국토위원회에 자유한국당 위원으로 소속돼 있다. 유가족은 현직 의원들에게 법 통과를 촉구했다.

‘용산참사10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권미혁·박주민, 정의당 윤소하,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은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20일 새벽 경찰특공대가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을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사건이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기존 법개정에 기대서는 강제퇴거 근절이 요원하다고 했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한국만큼 개발사업 관련 법이 복잡한 곳이 없다. 집행을 두고는 현행 경비업법과 민사집행법, 집행관법, 행정대집행법 등을 개선해야 한다. 개발사업 관련 법인 도시정비법과 도시재정비촉진법(도촉법), 토지보상법 개정도 필수”라고 했다. 철거민들이 폭력으로 터전에서 밀려나는 방식은 같은데, 개발사업은 각기 다른 법 적용을 받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이 탓에 “용산참사 이후 정부와 서울시, 정치권 모두 제도 개선을 약속했고 실제 몇몇 법은 개정됐지만 쫓겨나는 이들은 이를 실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호 사무국장이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이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국장은 “무엇보다 강제퇴거 자체가 불법이 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발의한 ‘강제퇴거 금지에 관한 법률’은 UN 등 국제인권규약과 사회권규약을 국내법적으로 정리했다. △개발사업 때 강제퇴거 금지 원칙 △사업 과정과 이후 거주민이 최소한 동등한 수준으로 살아갈 권리 △계획 수립 때 인권영향평가제도 실시 등을 명시하고 있다.

법안이 소개된지 오래지만 제정은 요원하다. 같은 법률안이 18‧19대 국회에 발의됐지만 논의되지 않았다. 20대 국회에서도 현재 관할 상임위원회인 국토위원회에서 논의하지 않고 있다. 이 국장은 “더구나 용산참사 진압지휘를 맡은 책임자인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경북 경주시)이 현재 국토위원회 소속으로 있어 암담하다”고 했다.

이날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 김영덕(고 양회성씨 아내)씨와 전재숙(고 이상림씨 아내)씨는 법 통과를 촉구하면서도 용산참사 책임자인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국회의원으로 재임하는 상황에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해 9월 용산참사 조사결과 김석기 의원이 당시 책임자로 조기 과잉진압과 여론조작을 주도했다고 했다. 그러나 관련 죄목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수사는 권고하지 않았다.

전재숙씨는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인데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고, 정부에게 사과만 받았다. 사과로는 부족하다. 아직 철거민들이 터전에서 내몰리고 쫓겨나고 죽어가고 있다”며 “법안이 꼭 통과해 철거민들도 동등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덕씨는 “김석기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회에 활보하는 걸 봐줄 수 있는지, 여기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고 했다. “지난주 MBC에서 김석기가 하는 인터뷰를 들었다. 현 경찰청장도 그 상황이라면 똑같이 했을 거라고 발언하는 걸 듣고 뜬눈으로 밤을 샜다”고 김씨는 말했다.

철거민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백채현 전국철거민연합 청량리위원장은 “용산참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느냐”고 반문했다. 백 위원장은 “용산참사도 진상규명을 안 하는데 어떻게 강제퇴거 금지법이 통과되느냐”며 “용산 참사가 남긴 건 ‘이제 죽이지는 않는다’는 선 뿐”이라고 했다.

▲ 용산참사 희생자 고 이상림씨 유가족 전재숙씨가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용산참사 희생자 고 이상림씨 유가족 전재숙씨가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원호 사무국장은 “강제철거를 자행하는 이들은 ‘우리는 절차대로 수행하기 위해 불법으로 버티는 사람들을 끌어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 절차법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통해 용산참사 철거민이 아니라 강제퇴거가 테러라는 걸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청량리4구역과 노량진수산시장, 토란 월계인덕마을과 임차상인 강제퇴거 피해자들이 강제퇴거 경험을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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