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세력인 노동계가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총파업을 무기로 자신들의 몫을 챙기는 데 급급하다면 우리 사회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은행 노조가 전날(8일) 성과급 등을 더 달라며 파업하자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국민이 외면하는 강경투쟁을 접고 경사노위 복귀를 위해 대의원부터 설득하기 바란다.”(지난 9일 서울경제 사설)

이 사설의 주 내용은 민주노총 비판이지만 여기에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지부장 박홍배, KB국민은행지부)의 파업소식을 끼워 넣었다. 게다가 KB국민은행 노사는 파업 전 성과급 이슈를 이미 합의했다. 파업하는 노조를 비판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왜곡한 언론보도의 단면이다.

▲ KB국민은행 노조 파업 관련 기사들. 사진=연합뉴스 편집=이우림 기자
▲ KB국민은행 노조 파업 관련 기사들. 사진=연합뉴스 편집=이우림 기자

‘돈 밝히느라 국민에게 불편을 끼치는 귀족노조’라는 언론 프레임은 지난 8일 KB국민은행지부 파업 전후에도 작동했다. “고객불편 아랑곳 않고 성과급 더 달라며 파업하는 국민銀 노조”(6일자 서울경제) “‘성과급 300% 지급’ 양보했는데…끝내 파업하겠다는 국민銀 노조”(7일자 서울경제) “연봉 상위 10%, 성과급 더 달라고 ‘분노’의 파업한 국민은행”(8일자 머니투데이) “KB국민은행 노조의 ‘배부른 파업’”(9일 이데일리 사설) “‘이참에 직원수 줄여라’ 역풍 맞은 파업”(10일자 동아일보 기자칼럼)

KB국민은행지부의 파업을 비판하는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를 두고 박홍배 지부장은 “(은행이) 언론계에서 손에 꼽히는 큰 광고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경제매체 기자도 “산업부와 금융부는 (광고 매출의) 양대 산맥”이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3분기 당기순이익 1위를 달성하는 등 ‘리딩뱅크’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지난 연말 다수 언론에 실린 KB국민은행 광고
▲ 지난 연말 다수 언론에 실린 KB국민은행 광고

어떤 조직의 절대 다수가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며 싸움에 나서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보수적인 사내문화에서 파업 참가를 자신의 인사기록에 남기겠다는 사측의 압박 등을 감수하며 9000명(노조 추산) 넘는 직원들이 무노동·무임금을 자처했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19년 전 주택은행과 합병문제로 파업한 이후 KB국민은행지부의 파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KB국민은행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걸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은행노동자들 최후의 선택

KB국민은행에선 지난해만 구성원 10명이 사망했다. 박홍배 지부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사무직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노동재해)는 뇌혈관·심혈관 계통 질환이나 돌연사가 대다수”라며 “보통 과도한 업무 압박·누적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지난해 5월 은행장 표창을 1년에 세 번이나 받았던 구성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의 메모나 동료에게 남긴 말에서 상사와의 갈등·업무 압박이 발견됐다. 노조는 “실적압박에 의한 자살”로 봤지만 사측은 “직접 가해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큰 재해 전에는 29번의 작은 사고가 있었고 300번의 잠재적 피해가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생각해보면 다른 직원들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은행 노동자의 노동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박 지부장은 “스마트폰으로 업무가 가능해져 실제 창구에 오는 고객 수 자체는 줄었지만 한 지점 당 직원 수도 함께 줄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까지 2만명이 넘던 직원 수는 2017년 초 3000명 가까이 희망퇴직을 받으며 1만7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박 지부장은 “오후 4시에 셔터내린 후에 하는 마감 업무는 그대로 있기 때문에 인원이 줄어든 만큼 업무강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탐욕’을 이번 파업의 근본 이유나 동력으로 보긴 어렵다. 노동조건을 목표로만 파업할 수 있는 한국 노동법 현실에서 임단협 쟁점은 주로 소위 ‘돈 문제’다. 언론은 이를 악용해 파업의 원인을 돈으로 환원한다. 파업에서 드러난 쟁점들은 노사균열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한 조합원은 “인간다움을 찾기 위해 파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노동경시 분위기와 은행 경영진의 적대적인 태도도 파업의 주 원인이다.

▲ KB국민은행 로고
▲ KB국민은행 로고

박근혜정부, 저성과자 퇴출·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도

지난 정부는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하고, 취업규칙을 노동자 동의 없이 변경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 노동계 등의 반발로 정부는 이 지침들을 폐기했지만 성과지상주의의 부산물들이 은행권에 스며들었다.

윤종규 KB금융지주회장이 KB국민은행장을 겸하던 지난 2014년부터 KB국민은행은 박근혜 정부 시책에 맞춰 페이밴드를 도입했다. 이는 직급별로 기본급 상한을 정해 연차가 찼는데도 승진을 하지 못하면 임금을 제한하는 제도다. 노조가 반대하자 은행 측은 조합원이 아닌 신입 행원부터 이를 적용했다. 정부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취지를 반영한 결과다. 이번 임단협 때 사측은 페이밴드를 전 직원으로 확대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지난 2016년 3월 KB국민은행 측은 직원 연봉의 절반까지 성과급으로 주는 방안을 검토하며 점포장 이상 간부급에게만 적용하던 후선보임을 일반 팀원에게 확대하려 했다. ‘점포장(지점장) 후선보임’이란 사실상 저성과제 퇴출제로 점포장 3년째가 되면 소속지점과 고객 없이 개인이 영업을 해야 하는 제도다. 후선보임 통보를 받으면 사실상 영업이 불가능해 거의 다 희망퇴직을 신청하게 된다.

지점장들은 살아남기 위해 부하직원들에게 압력을 넣게 된다. 한 조합원은 “기업대출은 덩어리가 커서 빠져나가면 KPi(핵심성과지표)가 매우 나빠지는데 국민은행 금리가 (타 은행에 비해) 높은 편이라 여신이탈을 방어하기 어렵다”며 “이걸 영업으로 잡느라 고충이 많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실적압박에 못 이겨 ‘불완전판매(투자 위험성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판매)’를 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간다. 노조는 현 20%인 점포장 후선보임 비율을 줄이자고 했지만 사측은 이를 거절했다.

KB국민은행지부 관계자는 “이렇게 야금야금 시행한 제도들이 고착화된다면 노동존중 분위기로 갈 수 없다는 생각들이 있다”며 “페이밴드나 임금피크제 등에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직원들도 지난 정부 당시 쌓인 적폐를 깨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파업에 참여했고, 다른 은행 노조에서도 파업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결합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윤종규 회장 체제에 대한 불신이 그들을 거리로 이끌었다 

업무 스트레스가 커진다고 모두가 파업에 나서진 않는다. 파업의 큰 동력은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다. KB국민은행지부 관계자는 “파업을 하면 인사상으로나 금전적으론 손해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참여한 건 자존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취임 이후 ‘종손녀 채용비리’, ‘노조 선거 개입’ ‘셀프 연임’ 등으로 직원들의 신뢰를 잃었다.

▲ 윤종규 KB금융국민지주회장. 사진=KB금융지주 홈페이지
▲ 윤종규 KB금융국민지주회장. 사진=KB금융지주 홈페이지

윤 회장의 종손녀가 서류와 1차 면접 하위권이었지만 2차 면접에서 최고등급을 받아 120명 중 4등으로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인사팀장이 KB국민은행 사외이사 자녀의 이름이 적힌 메모를 받았는데 이를 윤 회장 지시로 인식한 사실도 드러났다. 성적 조작 등 혐의가 드러나 실무진들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윤 회장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승격 시즌이 되면 경영진이 우리에겐 메일로 ‘청탁하지 말라’고 해놓고 채용비리가 있었다”며 분노했다.

노조 선거개입 역시 윤 회장은 처벌받지 않았다. 박 지부장은 “노조 선거할 때 사측에서 선거개입을 했는데 당시 행장을 겸임하던 윤 회장은 부당노동행위를 직접 지시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노동부가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은행장(윤 회장)이 몰랐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부행장·본부장은 물러나라는 노조 요구를 수용했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 은행 채용 비리 수사 결과 “CEO에 면죄부 줬다”]

윤 회장은 셀프 연임으로도 비판받았다. 자신이 선임한 사외이사들이 KB금융지주회사의 계열사 대표 2명과 윤 회장을 최종후보로 발표했고, 두 대표가 사임하면서 2017년 11월 윤 회장이 연임했다. 구성원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비민주적인 모습이었다.

윤 회장 사퇴 주장까지 나오자 사측은 직원들에게 ‘최고의 보상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해 3분기 KB국민은행은 영업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충당금적립전영업이익(충전이익)’ 9800억원을 넘기며 분기 사상 최대 수치로 다른 은행을 따돌렸다.

한 조합원은 “노조가 성과급 300%를 제시했는데 사측은 성과급 70~100%를 얘기했다”며 “(경영진은) 스톡옵션 받아가고 외부에 기부도 많이 하면서 직원들에겐 성과급 100%도 벌벌 떨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보다 실적이 낮은 신한은행은 성과급 300%를 먼저 약속했다. 

▲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장. 사진=KB국민은행지부 제공
▲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장. 사진=KB국민은행지부 제공

박 지부장은 “사측이 임단협에서 냈던 안건이 26건인데 급여삭감, 복지 없애기 등 노동조건을 후퇴시키거나 노조 활동을 제약하는 안이 많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노조 관계자는 “‘구조조정이나 M&A 이슈도 아닌데 감히 파업할 수 있겠어’라는 식으로 회사가 노조를 몰아붙여 기를 꺾으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협상 과정을 공개하며 지역순회 집회를 열자 쌓였던 불만이 모였다. 전체조합원 1만4000여명 중 1만2000여명이 투표해 96% 찬성으로 파업이 가결됐다.

그럼에도 사측의 태도는 강경하다. 은행장 외 경영진은 지난 4일 사직서를 내며 직원들을 압박했다. 은행 측은 “노조가 파업의 명분이 될 수 없는 과도한 요구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상식과 원칙을 훼손해가면서까지 노조의 반복적인 관행과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사의표명 이유를 밝혔다.

또한 은행 측은 지난 3일 ‘근태 관련’ 공지에 파업 참가 직원의 근태를 “파업 참가”로 등록하겠다며 “무노동무임금원칙 적용 목적”이라 밝혔다. 또한 지난 5일 “2016년 9월23일 (산별노조) 파업 근태기록은 블라인드 처리만 하기로 합의해 은행은 어떠한 인사전산기록도 삭제한 적 없다”고 밝혔다. 과거의 파업기록까지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블랙리스트”라고 이해한 조합원들이 많았다. 노조는 “인권침해”라며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할 예정이다.

성과지상주의, 제동걸 수 있을까

이번 파업을 두고서는 헌법상 기본권인 파업을 비난하는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 지난 8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가 총파업을 하고 있다. 사진=KB국민은행지부 제공
▲ 지난 8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전국금융산업노조 KB국민은행지부가 총파업을 하고 있다. KB국민은행 측은 5500명이 모였다고 했고, KB국민은행지부는 9000여명이 모였다고 했다. 사진=KB국민은행지부 제공

그 결과 파업의 파급력은 적었다. 관중석이 7700석이고 코트에 2000개 가까운 의자를 놓은 체육관이 꽉 찼음에도 5500명 모였다고 발표한 은행 측의 언론플레이가 이겼다는 뜻이 아니다. 언론 뿐 아니라 직원들이 미리 고객에게 파업 사실을 알렸고 대다수 직원은 꼭 필요한 업무를 미리 처리한 뒤 파업에 참여했다는 게 노조 집행부와 직원들의 설명이다. 정말 고객 불편을 볼모로 협상을 하고 싶다면 명절 직전에 무기한으로 파업하는 방법도 있다.

경영진 내부에는 노조의 합리적인 안건조차 ‘왜 KB가 먼저 이런 요구들을 받아야 하느냐’는 시각이 있다. 게다가 강경파로 평가받는 윤 회장이 2014년 11월 취임한 뒤 지난 4년간 조직 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파업 이후 노사는 주말 없이 협상을 벌였지만 신입 페이밴드 폐지·L0(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 전환한 직급)경력 인정·임금피크제 1년 연장 등 노조의 요구는 결렬됐다. 합의한 사안은 ‘희망퇴직’ 뿐이다. “고객 기분만 상하게 하고 브랜드 충성도 낮춘 것밖에 없다”(14일자 이코노미조선) “노조 지도부의 불도저식 행보”, “지도부가 조합원 3분의 2를 파업에 동원해 정치력 과시”(15일자 데일리안) 등에서 보듯 언론의 편향된 공격에 노조는 협상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14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사후조정신청을 접수했다.

이번 파업의 사회적 의미는 현재 리딩뱅크 지위에 있는 KB국민은행이 가장 먼저 은행권 성과지상주의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 있다. 사내 적폐청산의 요구는 거세졌지만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정권을 교체해도 노동조건이나 노사관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은행과 같은 금융업은 소유와 경영으로 보면 민간기업이지만 사업의 속성으로 보면 사실상 공공산업이다. KB국민은행의 갈등은 머지않아 다른 은행에서도 터질 일이다. 이 사태의 결말을 주의깊게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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