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노동자가 지난해 12월20일 자결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오 모 조합원은 지난해 9월 퇴사하고 3개월 만에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광호 열사 이후 두 번째 노조파괴 희생자다.

급하게 유성기업지회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취재원에게 짧은 메시지가 왔다. “마음이 붕 떠 있는 것 같아요…” 평소 어떤 난관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그였다. 사측의 노동자 괴롭힘, 검찰과 경찰의 편파수사, 사법부 판결지연에도 이성적인 대응을 모색하던 그였다. 그런데 동료의 죽음 앞에서는 어떤 이성도, 판단도 허락되지 않았다.

▲ 지난 1월4일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의 늦장대응을 규탄했다. 사진=노컷뉴스
▲ 지난 1월4일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의 늦장대응을 규탄했다. 사진=노컷뉴스
쌍용자동차를 생각했다. 9년 투쟁에 노동자와 가족 30명이 세상을 떠났다. 노조파괴, 투쟁사업장에서 죽음은 도미노다.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을 찾기 위해 파업을 선택(쌍용자동차의 경우 구조조정 저지, 유성기업의 경우 주간연속2교대제)하고 임금을 포기한다. 싸움이 길어지면 생계 문제가 뒤따른다. 최근 사망한 유성기업 노동자의 월급은 100만원이 채 안 됐다. 생계 문제뿐일까. 가정에도 균열이 난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이혼율은 상당하다. 노조가 공식·비공식적으로 확인한 이혼 가정만 수십 쌍이다. 우울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 맥락 속에 기업 임원을 향한 노동자의 우발적인 폭력, 연쇄 자살이 벌어진 것이다.

노조가 동료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날, 언론은 조용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어도 언론은 침묵했다. 지난해 11월 유성기업 노동자가 김 모 상무를 다치게 한 사건을 두고 야단법석을 떤 언론들이었다. 금속노조가 김 상무 부상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도 50명에 달하는 기자들이 대거 모인 바 있다. 이번 노동자의 죽음에 달려온 기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지금도 언론들은 김 상무 부상 사건을 거론하며 노조 때리기에 열중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4일 ‘좌파단체 “임원 폭행 노조원도 양심수”’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매일경제는 지난 13일 ‘법 위에 군림하는 노동계, 경제 발목 잡아’라는 기사에 유성기업 김 상무 부상 사진을 첨부했다. 지금도 언론은 김 상무 부상 사건으로 노동자가 구속된 사실을 보도하기 바쁘다.

▲ 조선일보 1월14일자 보도
▲ 조선일보 1월14일자 보도
언론은 기사를 통해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 아젠다를 만들고 낙인 여론을 셋팅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고립된다. 그 결과는 노동자의 연쇄 자살이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는 동안 사측이 입은 피해는 무엇인가.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지금도 위험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부터 ‘묵혀 놨던’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이제야 발표했다. 지난 11일 발표한 인권위 발표에 따르면 유성기업 노동자 62%가 일상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21%는 우울증 징후(59명)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징후를 보였다. 우울 장애를 보인 노동자의 대다수는 민주노조(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 김한주 참세상 기자
▲ 김한주 참세상 기자
“마음이 붕 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 유성기업 노동자는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겉으로 폭발하면 김 상무 사건 같은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내적으로 폭발하면 자살로 이어지는 문제지요.” 노동자들은 더 물러설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지금 언론은 이 운동장을 더 기울이고 있다. 결국 운동장은 무너져 노동자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기울이다 못해 무너진 운동장을 다시 세울 언론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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